날씨가 좋아서 그래

9월의 어느 날에

by 이 지음

발레 수업을 가지 않았다. 시작은 일종의 핑계였다. 일주일 내내 운동을 하다 보니 금요일에 발레 레슨을 가다가는 정말 다리가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근육이 찢어졌다가 다시 붙는 시간을 줘야 해, 그래야만 근육이 생겨’라는 어디서 주워들은 일말의 상식으로 오늘만큼은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사실 그건 날씨가 좋아서 땡땡이를 치고 싶었을 뿐인데.

외출하러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읽을 책을 골랐다. 많은 책들 중에 하필 사랑에 대해 쓴 책을 골랐다. 이유는 모르겠다. 평상시에 어두운 작품을 읽는 습성과 달리, 오늘은 꼭 사랑에 대한 이야기여야만 했다.
을지로 3가에서 지하철을 탔다. 2 정류장만큼 가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계속 앉아서 책을 읽고 싶었다. 자리를 뜨는 게 아쉬울 만큼 글이 좋았다. 얼마만큼 인간이 따뜻해질 수 있는지 굳이 각종 수식어를 빗대어 표현하는 그 마음이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저 날씨가 좋아서 그랬다.

미술관을 다녀와서는 근처 카페로 가서 글을 썼다. 요즘 체중 관리를 하고 있어서 액상과당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카페에만 오면 늘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오늘만큼은 이상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다분했다. 조금 들뜬 내 기분과, 나만큼이나 들떠있는 사람들, 나만큼이나 웃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 미소가 좋았다. 나도, 그 사람들도, 아마 웃고 있는 이유에 날씨가 좋았다는 사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카페에서는 안부를 묻는 한 전화가 왔다. 반가운 이의 전화였다. 또 나는 염치없이, 속절없이, 대뜸 안부를 묻는 전화가 그리도 반가웠다. 전화를 끊고서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안부를 물을 몇몇 이들을.


지하철 안에서 간단히 글을 쓰며 나 또한 그들의 안녕을 물었다. 끝에 날씨가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 날씨를 온전히 누리라고. 높고 투명한 이 하늘 아래에서 우리 함께 행복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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