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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좋아하세요?소소한 작은 행복 문구수집

by 잇선


어린 시절부터 마흔이 된 지금까지 문구를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꼭 문구류 하나라도 사고 돌아오는 나만 아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문구에 대한 첫 번째 기억


문구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를 좋아했던 한 남자아이는 자신이 수집한 100개 정도의 지우개를 나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서 준 선물이었던 거 같다. 그때도 특이한 지우개가 많았는데 문구를 좋아했음에도 내 마음은 그 친구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새 학기가 되면 받는 새 교과서와 새 필통을 채우는 필기구에 관심이 많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새 교과서를 포장하거나 새 문제집을 사거나 새 필기구를 사는 것에는 진심이었다.


문구에 대한 두 번째 기억


두 번째, 추억은 나와 동갑인 친척과 매년 크리스마스에 주고받던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우리는 경쟁이라도 하듯 특이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서로에게 주곤 했다.

아직도 친척에게 ‘너 그때 되게 창의적인 아이였어. 너의 잠재력을 다시 꺼내 봐’라고 말하곤 한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었던 나는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어른이 되었다.


문구에 대한 세 번째 기억


세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한 친구들과 펜팔을 주고받으며 만든 기발한 편지였다. 공부보다 열심히 펜팔을 썼다. 카탈로그를 백화점에서 누가 더 많이 모으나 경쟁이라도 하듯 열심히 다녔다. 친구보다 더 멋진 편지지를 만드는 게 삶의 목적 같았다.

펜팔을 주고받았던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때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 교환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미술적 감각이 더 뛰어났는데 매일 새로운 그림을 그려 너무 예쁜 글씨로 나에게 편지를 써서 주곤 했다.

지금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친구들에게는 없었던 아날로그의 소중한 추억이다.


문구에 대한 네 번째 기억


네 번째, 기억은 중학교 때부터 생긴 남자친구에게 만든 러브장이었다. 가장 예쁜 노트나 다이어리에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관한 편지를 매일 써서 한 권이 채워지면 선물하곤 했다. 갑자기 헤어지자고 통보했던 남자친구의 집앞에 러브장을 던져놓고 왔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후로 러브장을 쓰지 않았다.


문구를 좋아하던 소녀는 미대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열정을 공부에 쏟았으면 좋았겠지만, 나의 성향은 어릴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쓸데없어 보이던 그 활동들은 결국, 디자인을 전공하는 미대생으로 나의 삶이 이끌어졌다.

20살 때부터 나의 아르바이트는 그래픽디자인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명함을 스스로 만들어온 지 20년이 지났다. 내가 만든 명함의 종류만 해도 100개가 넘을 것이다.

32살에 나의 향초 브랜드를 만들면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모든 디자인을 나의 일에 녹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었던 브랜드이미지는 고객을 불러모았다.

지류 하나에도 남들과 다르게 디자인했고, 향수 시향지조차 나답게 만들었다.


어른이 된 후로는 매년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어른이 된 후로는 매년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아직도 정착한 다이어리는 없을 정도로 다양한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사용해보고 있다.

최근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다이어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아무리 많은 다이어리를 사용해봐도 내가 필요한 나에게 딱 맞는 다이어리는 내가 만들어야 했다.

앞으로도 내가 그동안 좋아했던 취향의 문구류를 참고삼아 다양하게 만들어볼 생각이다.

미래에는 서점과 문구류가 함께 있는 ‘잇북’서점을 상상해본다.


도쿄 여행 이토야 문구백화점에 가다.


얼마 전 도쿄여행에서 이토야 문구백화점에 다녀왔다. 1층부터 8층까지 문구류가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와 편지지 볼펜을 고르면서 너무나 설레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의 엄마는 내가 고르는 편지지에 반해서 우리는 전철로 갔다가 다시 문구백화점에 가서 편지지를 다시 사러갔다. 엄마는 60이 넘은 나이에 문구류가 주는 행복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예쁜 편지지와 메모지에 악필은 안된다며 손글씨를 교정하자고 마음먹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기록하는 행위가 주는 행복


매일, 예쁜 다이어리와 편지지에 가장 마음에 드는 볼펜으로 나의 하루를 기록하는 행위는

하루를 충실히 살아냈음을 격려하고 나의 마음을 치유하며 매일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는 일이다.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나를 기록하며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며 서로의 사이를 돈독하게 맺었던 지난 10대의 교환일기를 쓰던 시간처럼 나와의 관계를 잘 맺어야 나와 평생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취향을 저격한 가장 좋은 다이어리와 필기감이 좋은 펜을 골라 오늘부터 나의 성장을 기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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