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서 뛰어 내리면 어떻게 될까?
……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우리 집은 1층 짜리 주택이었으니까. 대신 다른 생각은 많이 했다. 손목을 그으면 어떻게 될까? 목을 찌르면 어떻게 될까? 높은 빌딩을 찾아가 뛰어 내리면? 피가 아주 많이 나겠지. 어딘가 부러지겠지. 하지만 여전히 숨쉴지도 모르니 확실하게 죽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 뭐, 그런 생각을. 잔뜩 했더랬다. 아주 많이 많이.
유년시절부터 함께했던 우울은 죽음을 쉽게 불러 들였고 난 창문을 통해 내 방에 그를 들였다. 어떻게 힘들었는지 구구절절 떠벌리고 싶진 않다. 그때의 난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는 게 중요한 거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그리 멋있지 않으니까. 돌이켜보면 그럴 만한 일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지금 기준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당시의 내게는 모두 죽을만한 일이었다. 친구들이 내가 입은 옷을 촌스럽다고 해서 죽고 싶었고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잘 써지지 않아 죽고 싶었고 왕따가 된 것만 같아서 또 죽고 싶었다. 이유는 아주 많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그렇게 나를 먹어 치운다. 제정신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언행을 하게 만들고 자꾸 비틀거리게 몸을 밀어 낸다. 내가 단단한 사람이었으면 달랐겠지만 나는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에도 휘청거리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내게 찾아 오는 음울한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상투적이지만 마치…… 깊은 물에 잠긴 것 같았다. 아무리 나가려고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빠진 것처럼. 그런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길은 보이지 않고 누가 날 구하러 오지도 않을 것 같은데 계속 절망하며 있어서야 되겠나, 그냥 죽는게 낫지. 그게 고통을 끝내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죽음이 쉬운 건 아니었다. 이러면 죽을까? 저러면 죽어야지! 하고 개복치처럼 쉽게도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자고 생각하자니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누구나 원하는, 한 번에 고통없이 깔끔하게 죽기. 난 그렇게 하는 법을 몰랐다. 흔히 알고 있는 목 매달기, 손목 긋기, 떨어지기, 뭐 그런 것들은 다 어렵고 무섭고…… 아픈 것이잖아. 그래서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얄팍하게 가위로 종아리를 찌르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누군가에게 ‘나 이만큼 아프니 봐줘요’하고 시위라도 하는 것에 불과한.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매일 죽어야지, 하면서도 내가 죽지 못할 걸 알았다. 죽음은 내게 무기였음을, 아주 손쉽게 휘두르며 내 아픔을 하나로 퉁치고 표현할 무기임을 알았다. 내가 죽어 버려야지! 하고 얘기를 할 때 상대방이 그러지 말라며 걱정하는 표정을 보는 게 좋았고 나도 그 말을 한 순간은 어쩐지 자유로워질 수가 있었다. 그래! 난 이대로 죽어서 모든 고통과 힘듦을 다 벗어던지고 편안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지 마! 하고. 난 그렇게 죽음을 이용한 거다. 내가 좋을대로, 마음대로, 지난 십 수년 동안, 계속해서.
제멋대로 굴며 죽음을 이용했다고 하니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지만 난 별 거 아닌 보통의 사람이다. 나같은 사람은 아주 많을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죽음을 여럿 택한 사람이 말이다. 난 실제로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만약 만나게 된다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상상해 봤어요?
- 머리가 으깨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피가 아스팔트를 적시는 것까지 상상해 봤어요.
-와우! 나돈데! 나같은 사람 처음 봐요.
뭐 그런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음, 써놓고 보니 어쩐지 시시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아니고. 난 죽음을 내 좋을 대로 이용해 먹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멋대로 위로를 받고 지금 느끼는 잠깐의 고통을 상쇄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 너무 심각한 시선으로 날 보지 말기를. 오늘도 알차게 사용했으니,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오늘의 메뉴는 꽈배기와 우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