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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Jun 16. 2017

87년 체제를 이룩한 지 딱 25년째

2012년에 쓴 글입니다. 참고하시어 읽어 주세요.

집 근처 떡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4개월이 넘었다. 요즘은 날이 무더워서 아예 손님들 발길이 뜸해졌다. 더운 날이면 잘 나가던 팥빙수마저 파리만 날리고 있다. 이렇게 한가할 때면 ‘장사가 좀 되어야 하는데’라며 걱정도 하지만, 점주님과 매니저님의 수다를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지루할 틈은 없다. 아줌마들 수다야 언제나 아이들 교육, 남편 걱정 얘기다. 하지만 얘기가 좀 길어질라치면 역시 젊었을 적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점주님은 경찰서라면 치가 떨린다고 하신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점주님은 조달책으로 연대 개구멍을 들락날락하셨다. 조달책으로 의심을 안 받기 위해 ‘샤랄라’하게 차려입고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얼굴에 철판을 까셨다지만, 결국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셨단다.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딸이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소식에 점주님 부모님께서 어찌나 노발대발하셨는지, 경찰서에서 보낸 며칠 동안 우리 점주님 마음고생 참 많이 하셨다. 다행히 같이 잡혀 들어간 친구의 부모님이 경찰 쪽에 꽤나 힘쓰는 분이셔서 별일 없이 나오셨다지만, 아직도 경찰서에 배달이라도 갈라치면 그때 얘기를 하곤 하신다.


매니저님은 점주님 얘기에 맞장구는 잘 쳐주시지만 ‘대학교 벽돌이 남아나지 않았다’느니 ‘경찰서에 잡혀갔다’느니 하는 얘기는 안 하신다. 매니저님이 대학생이셨을 땐 정치 얘기는 뒷전으로 밀리고 밤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단다. 그래서 매니저님도 시위판보다는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나 신입생 때는 술 마시고 취해서 자동차 백미러 부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라고 자랑처럼 말씀하신 적도 있다. 한 번은 거나하게 취해서 친구들과 자동차 백미러 수십 개를 부셔놓으셨는데, 다음날 정신 차리고서 어찌나 후회하셨다는지. 다행히 점장님처럼 잡혀가시지는 않았지만, 이후로는 그때 친구들과 술자리라도 있을라치면 도망가기 바쁘셨단다. 그렇게 정치보단 술자리가 우선이었다고 말하는 매니저님이지만, 요즘도 선거철이면 선거 도우미 하느라 바쁘시고 나한테 누굴 뽑던 투표는 꼭 하라고 신신당부하시는 것을 보면 그 시절에는 아무리 술 먹고 놀러 다니기 바빠도 적어도 대학생이 정치를 모르지는 않았나 보다. 


난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지만, 어쩌다 한마디 하려 해도 나에게 저런 무용담이 있나 싶다. 물론 젊었을 적 무용담이라는 것이 다소 과장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착하게만 살았다. 촛불집회도 한번 참여해 본 적이 없고 요즘은 새벽부터 아르바이트하느라 친구들과 술자리도 자주 안 한다. 토익시험이 코앞이라 도서관에 가서 영어 공부하기 바쁘고, 꼴에 국문학 전공한다고 글쓰기도 배우러 다닌다. 내가 봐도 바른생활 사나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점주님은 어떻게 그렇게 바람직하게 사냐며 대견하다 하시지만, 고민이다. 이렇게 착해도 될까. 




나라고 세상에 불만이 없지는 않다. 우리 윗세대들이 대학교 4년을 민주화 운동만 하며 보내고도 대기업을 골라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억울하고, 아르바이트해서 혼자 힘으로 등록금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새벽부터 떡 쪄서 용돈 벌기도 바쁜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다. 몇 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는 친구 놈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본다고 한숨 쉴 때는 분통이 터진다.『정치의 몰락』에서 박성민 대표는 말했다. 



25년마다 젊은 세대가 역사의 중심에 섰다. 


올해가 바로 87년 체제를 이룩한 지 딱 25년째 되는 해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역사의 중심에 서기에는 너무 착하게만 보인다. 변화를 몰고 와야 할 20대의 목소리가 너무 작다. 투표율이 늘었다지만 지난 4.11총선에서 젊은 층의 투표율은 50%도 안 된다고 한다. 투표율이라기엔 부끄러운 숫자다. 연애할 때도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 착한 사람은 매력이 없다. 때로는 들어만 주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해달라고 졸라도 보고, 안 해주면 화도 내보자. 좀 까다롭게 굴어 보자. 사실 우리 20대 누구보다도 불만 많고 욕심 많은. 나쁜 놈들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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