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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Oct 11. 2021

스몰웨딩 하자고? 전지적 신부 시점

결혼식장에서 알바하던 소녀가 꿈꾸던 스몰웨딩 체험기

대학생 시절, 단기 알바 중에서 결혼식장 만한 꿀알바가 없었다. 일당 7만 원은 그 시절 나에게는 큰돈이었다. 사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식장 세팅부터 무거운 그릇들을 온종일 서빙하다 보면 다음날 팔이 욱신욱신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이 덕에 훗날 내가 스몰웨딩을 선택할 줄이야... 


화려한 강남 한복판에서 열리는 결혼식장의 뒷모습은 꽤나 볼만하다. 하루 2~3번 하는 예식에 꽃을 돌려쓰는 건 당연했고, 식탁보는 한번 쓰고 뒤집어서 재사용하기도 했다. 정신없이 서빙하는 와중에 손님이 여분의 포크를 달라고 할 때면 실수도 많이 했다. 포크 주는 일을 잊어버려 혼나기도 하고, 엉뚱하게 다른 손님에게 식어버린 수프를 제공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결혼식에 화려함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화려함보다는 진솔한 결혼식이 하고 싶었다. 평소에도 화장은 잘하지 않는 편이었고, 명품에는 문외한이었다. 신랑 또한 이런 부분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스몰웨딩을 하기로 의견을 맞춰가기에 오히려 수월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 우리 할 수 있는 선에서 작은 결혼식을 준비해보자


사실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마침 코로나였기에 작은 결혼식을 하는 것이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졌다. 작년 가을 기준으로 2단계로 격상할 때쯤이라 하객은 100명 제한이 최대라 생각할 때였는데, 우리는 더 보수적으로 생각하여 3단계인 49명 제한에 맞춰 결혼식장을 알아보았다. 음식을 우선순위에 두고 꾸미는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로 했고, 레스토랑에서 하는 결혼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레스토랑에서 하면 공간이라는 큰 제약이 생기긴다. 우리가 고른 레스토랑에는 한가운데 큰 기둥이 있었다. 입장할 때 기둥을 둘러서 걸어야 한다든지, 기둥에 가려 앞쪽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자리도 많았는데, 입장하는 길이 그리 중요할 필요 있나 싶었고, 기둥 뒤엔 무던한 친구들을 배치하면 되지 싶었기에 그리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 들었지만 결혼식 당일엔 오히려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보는 친구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꾸미는 비용은 최소한으로 했다. 꽃잎 하나하나에 여러 색이 담긴 섬세한 생화도 좋지만, 변함없이 깔끔한 조화를 선택했다. 조화가 사진에 더 밝게 나오기도 하고, 환경에도 이롭고, 적은 비용으로 훨씬 풍성하게 세팅할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꽃 정도만 생화를 할까 싶기도 했는데, 그 마저도 따로 알아본 꽃집에서 조화랑 생화를 섞어 쓰면 오히려 서로 비교돼서 안 좋다며 말리셨다. 결혼식 전날 레스토랑에 짐 두러 갔다가 레스토랑 사장님이 지금 테이블에 있는 하안 안개꽃을 그냥 둬도 되냐고 여쭤보셔서 다행이었다. 사장님 덕에 한 테이블에 3만 원씩 하는 세팅비용이 해결되었다.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에게 "부잣집 친구의 야외 결혼식에서 먹은 음식은 식어있어서 별로 였는데, 오히려 우리의 음식이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뷔페가 아니라서 누군가에겐 넉넉지 못할 것 같아 마음에 걸렸는데, 그래도 식사가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뿌듯했다.

한때 높은 층고에 놓인 샹들리에 아래,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앞으로 나아가는 빛나는 모습도 물론 멋있다. 하지만 인생의 하루뿐인 날을 최고의 모습으로 꾸미는 것은 내 허영심만 부풀리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작게 느껴졌다. 그래서 좀 더 욕심내어 나만의 길을 찾아보았다. 화려한 예식장, 드레스, 메이크업, 소품 등 공주님이 되기 위한 허영심은 내려놓고, 축하해주러 온 손님에게 마음을 쓰고 싶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던 레스토랑 결혼식은 공주님이 되는 화려한 결혼식보다 만족스럽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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