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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Feb 09. 2022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나?

외모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나? - 외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느꼈던 건 외모의 힘은 세다는 것이었다. 그 나이 때는 너무 순수하게 잔인해서 단순히 외모만으로도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나는 그래도 왕따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학창 시절을 이어나갔다.


치마 한 단, 머리 1cm, 바지통에 예민한 촉을 세우고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주는 선크림과, 색깔 있는 립밤 같은 것들로 어설프게 외모를 가꾼다. TV에 나오는 아이돌들의 붙지 않는 허벅지와 앉아도 나오지 않는 뱃살을 보며 더 마르고 싶어 한다.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밸런타인데이와 같은 기념일에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인기가 분명하게 눈으로 보이는 날이다. 복도에서 공중으로 스치기만 했던 눈빛들이 그런 날이 되면 달콤한 군것질로 모양을 갖춰 전해졌다. 그걸 받는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부러웠다. 


나의 그런 외로움 섞인 부러움을 달랠 수 있었던 건, 졸업하고 성인이 돼서 사복을 입고 나의 개성을 보여주면 나도 나름대로 봐줄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화장도 하고, 머리도 하고, 옷도 내 스타일로 입고 그러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하나 그건 쉽지 않았다. 화장을 하면 화장을 한 나였고, 염색이나 파마를 하면 염색이나 파마를 한 나였으며, 살을 빼면 그냥 전보다 좀 날씬한 나였다. 그래서 왠지 어떤 기대를 품고 간 술자리에서 아무 일 없이 허무하게 집에 돌아가는 날에는 초라한 기분이 들었고, 그건 왠지 내가 예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문에 동네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하나 둘 사랑을 찾은 친구들을 보면 왜인지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외롭다 못해 괴로웠다. SNS에는 지나치게 예쁜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사진이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건 누가 찍어줬을까. 예쁘니까 찍어주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나는 그 시절에 일종의 열패감 같은 것을 자주 느꼈다. 내 마음을 닮은 짧은 글귀를 빌리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 진다. -김세희 <항구의 사랑>


나는 꽤 오랫동안 컨실러, 파운데이션을 겹겹이 바르고, 반짝이는 펄 섀도를 이것저것 섞어 바르느라 약속 시간 한참 전에 일어나고, 한 순간도 망가지기 싫어 가방에는 늘 수정 화장을 위한 파우치를 들고 다녔다. 딱 봐도 예쁜 옷,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치고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왜냐면 집에 돌아오면 내 모습이 너무 달랐다. 목 늘어난 반팔티에 질끈 묶은 머리, 밋밋한 얼굴. 이 모습이 진짜 나인 것 같은데. 집 밖에서의 내 모습도 과연 진짜 나인가? 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파마하고 염색했던 머리를 다 풀고 원래의 검정머리로 바꿨으며, 화려한 액세서리를 빼고 타투로 바꿨다. 이게 어떻게 보면 내 첫 번째 발전이자 인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다음은 사진이었는데, 어느 날 찍은 셀카에 좁쌀 여드름, 사마귀 같은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진은 잘 나왔는데, 피부가 좀… 그랬다. 그래서 그걸 친구한테 어플로 지워달라고 연락을 하려다가, 귀찮아졌고, 한편으로 내가 한심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포토샵으로 피부를 좋게 만들어서 올리면 남들이 예쁘다고는 해줄지언정, 그게 진짜 나는 아닌데… 그렇게 해서 듣는 예쁘다는 소리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어서 생각했다. 아 얼굴에 뭐 좀 날 때도 있는 거지. 그래서 그냥 올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내 사진 중에 포토샵으로 건드린 사진은 없다. 그때쯤부터 내 외모를 인정하고, 나를 어느 정도 찾은 것 같다.


예쁜 옷이 내 삶의 전부이고, 이 옷이 내 삶을 바꿔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떤 착각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이제는 왠지 편하고 심심한 옷이 좋아졌다. 다이어트에 미친 듯이 목매던 때도 있었지만 그냥 이젠 무던하게 내 몸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살이 좀 붙었구나, 살이 좀 빠졌구나 하면서 체중계를 쳐다도 보지 않고 산 지도 오래됐다. 동시대적인 매력을 가진 외모가 아닌 것에 안달복달하던 나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 같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예쁘고 멋있는 것도 좋지만 자연스러운 걸 이길 게 있을까. 아무래도 이쯤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말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나는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느니, 나의 모습으로 미움받겠다.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loved for who I am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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