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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 중에선 마취과 의사(이하 그)가 인턴 동기였던 외과 의사(이하 그녀)를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그녀가 수술 도중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는데, 그가 재빨리 팔로 받아냈다. 사람들은 그의 순발력을 칭찬했지만, 순발력이 아니었다. 계속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대가로 밥 약속을 얻게 된 그는 어쩐지 영화 약속까지 덩달아 얻게 됐다. 그가 그녀에게 혹시 데이트인 거냐고 물어보려 하는데 그녀가 선수 쳐 말해버렸다. 데이트 맞아요. 그는 어안이 벙벙하다 이내 깨달았다. 알고 있었어.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 인턴을 같이 한 건 고사하고, 마스크 너머 얼굴이나 알아볼까 싶었는데,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아마도, 눈만 보고.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봐야 하는 건 끔찍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데, 사람을 좋아하는 게 이렇게 눈에 잘 보이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걸 이미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너무 바보같이 보일까 봐 좋아하는 걸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건 어쩐지 시작하고 그만두는 일 따위가 아니라서 나는 결국 몇몇에게는 들켰고, 몇몇에게는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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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믿어야 하는 일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본 예능 프로그램에선 ‘술 마시고 클럽에 가겠다는 애인 괜찮다 / 괜찮지 않다’라는 주제로 각각의 입장을 말했는데, 크게 두 가지였다. ‘보내준다’와 ‘안 된다고 한다’. 안 된다는 입장의 이유는 다들 생각하다시피 가늠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날까 봐인데, 보내주는 입장에선 이렇게 말했다. 상대방을 믿어야 한다고. 그런가? 상대방을 믿어야 하나? 믿는 게 사랑인가? 그렇다면 난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다.
지난 연애 동안 난 끝없이 믿으려고 노력했다. 하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건 결국엔 믿지 못한 내 잘못이었을까? 실로 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 믿음이 부족해 관계를 망쳐버린 거라고. 그런가? 당시엔 관계가 끝나는 게 두렵고 서러워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면, 믿게끔 만들어주는 게 사랑에 더 가까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애인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는 행동을 하면서 사랑에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 틀린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쪽의 사랑이 부족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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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지난한 연애를 겪고 나서인지, 요즘 나를 포함해 주변엔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과거의 우리는 어땠나? 늦은 밤 전화로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다며 우는 얘기를 했거나 들었으며, 애인을 잊기 위해 혹은 잊는 걸 도와주기 위해 새벽까지 음악을 크게 들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그러다 일어난 아침엔 함께 해장하며 너털웃음을 나눴었는데 이제는 무던하게 일할 땐 일하고, 사랑할 땐 사랑하며 안정된 템포로 만나고 있다.
덕분에 얼굴 좋아 보인다, 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데 쑥스럽지만 맞는 말이다. 얼굴에 건드린 거 없고, 헤어스타일도 위아래 길이 말고는 딱히 달라진 것도 없고, 이제는 화장도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자꾸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처음엔 그런 말을 듣는 게 약간은 부끄러워서 대답은 못하고 멋쩍게 웃기만 했는데, 사진을 보니 사진 속 내가 사람들 말 그대로 행복해 보여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불안한 연애를 하는 동안에 내 얼굴은 어땠던 거지?
안정과 행복이 얼굴에 드러나듯, 불안도 얼굴에 드러난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웃는 사진도 물론 있지만, 어딘가 기운이 안 좋은 쪽으로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사람들에게 읽히진 않겠지만 사진을 보니 힘들었던 시간들, 힘들다 못해 지친 마음으로 살던 기억이 무수하게 떠올랐다. 더 보고 싶지 않아 다시 가장 최근 사진으로. 내가 분명하게 행복해 보이는 사진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다르다니. 이렇게 드러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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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끝에는 늘 영화 <클로저>가 생각난다. 반복해서 어그러지는 관계에 지치고 화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댄(주드 로)에게 소리친다. ‘어디 있어?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라고. 나도 앨리스처럼 나의 연인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고, 진짜 남은 사랑이 없는지, 숨어있는 마음이 없는지 구질구질하게 쳐다보고 뒤져봐도 없기에 헤어졌다. 그러곤 내가 찾지 못한 걸까, 섣부른 선택이었나 좀 더 믿었어야 했나 혹은 이해했어야 했나 하고 후회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 돌아본 그 자리엔 사랑이 없음을 정확하게 확신한다. 그렇게 찾기 힘든 마음은 사랑이 아니고, 찾게 만드는 마음 또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눈에 보인다. 그것도 아주 잘.
- 글의 제목은 안규철 작가님의 전시 타이틀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