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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17. 2021

인스타그램 : 다 이렇다는 건 아닙니다

짧은 생각 01



#1


인스타그램은 너무 간편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업을 하며,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타인에게 즉시 알려줄 수 있다. 매번 업데이트되는 초능력 명함을 가진 것 같다. 오프라인 스토어만 없지 나를 파는 가게 같기도 하고. 사람들은 나를 사고, 이따금은 연락을 한다. 만나보고 싶다고, 술 한잔하자고. 한 2-3년 전의 나는 그 모든 제안에 응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에 쉽게 응하지 못한다. 그건 무조건 ‘거절’이라기보다는 지나간 경험들을 통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쯤 된다고 설명해야 될 것 같다. 


#2


플러팅(Flirting)을 먼저 짧게 말해보자. 밤에 ‘좋아요’를 누르면 안 자냐고 물어보면서 시작되는 DM이 그렇고, 취향 겹치는 거 하나 올리거나, 얼굴이나 몸매가 끝내주게 나온 셀피를 올리면 도착하는 DM들. 갑자기 상대방의 피드를 정독하고서 어떤 사람으로서 접근해야 좋을지 계산을 한 후 그런 스타일로 대화를 하고, 말이 끊기지 않게 노력한다. 그리고 만나면, 술 마시고 어떻게 하다가 어떻게 되면 둘이 자고 어떻게 하다가 어떻게 되면 사귀고 그런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헤어지고 그런다. 헤어지면 팔로우 끊고 차단하고 그런다.


#3


플러팅(Flirting)의 달콤함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 봤던 나에겐 안 좋은 경험이 켜켜이 쌓였고, 결과적으로는 회의감에 신물이 났다. 이제는 친목 목적으로 말하는 것만 응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건 달랐을까? 나에게 앓는 소리를 하며 ‘만나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 ‘같이 술 마시고 싶다’라고 하기에 나는 만나자고 했다. 너무 좋다고 했다. 설렌다고. 그렇게 너무 좋다고 그랬는데, 약속을 늦는다. 한 번 아니고 매번. 그리고 만나면 미안함+잘 보이고 싶은 마음+사진을 올려서 친하다고 알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사진을 찍어주겠다’ 혹은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리고 나를 태그 해준다. 그리고선 아주 뿌듯해한다. 아마도 ‘당신을 자랑스러워한다’를 몸소 보여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한다. 스토리엔 서로의 사진+서로가 찍어준 사진+놀았던 사진+먹었던 음식 사진 등으로 잔뜩 채워진다. 그리고 헤어지면 연락이 없다. 그리고 내 연락에도 답장이 없다. 카카오톡에는 1이 안 사라졌는데 스토리는 추가된다. 


#4


클릭으로 얻은 인연이라 그런가? 나한테 서신을 보내고 말 타고 만나러 와야 됐으면 이렇게 약속을 쉽게 잡지 않았을 텐데. 나는 이런 지나치게 1차원적인 생각을 해본다. 생각해 보니 Instagram이라는 단어도 Instant + telegram의 합성어니까 Instant라는 뜻에 너무나도 부합하는 일이다. 정말이지 유통기한이 짧아도 너무 짧다. 김밥 같은 것에 붙어진 ‘구매 후 2시간 이내 드세요’라는 안내 멘트가 생각난다. 얻기도 쉽고, 헤어지기도 쉬우니 사람들이 무감해지고 가볍게 생각하기가 쉬워지는 것 같다. 이름은 모르는데 아이디는 알고, 성격은 모르는데 취향은 아는 관계들이 많아진다. 


#5


인스타그램은 너무 가벼워.라고 하지만 인스타그램이 가벼운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사용자가 가볍게 사용하는 거 아닌가. 사용자 수준이 별로인 거 아닌가. 나도 인스타그램 많이 하는데 아마 더 이상 사람들과의 만남을 잘 갖지 못하게 되는 건 이런 경험들로 인해서가 크다. 물론 여전히 마음속으로 응원도 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궁금해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 있지만 왠지 그러지 않게 된다. 그저 그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족된다. 무엇보다 꼭 나라는 사람과 연결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을 응원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마음이 신기하다. 이 글이 전하는 바가 fucking Instagram은 아니고, 그냥 대한민국에서 늘 존재하는 기술이 앞서고 문화가 지나치게 뒤떨어진다는 얘기였는데 그렇게 전달됐을지는 모르겠다. 허나 지난날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를 보며 ‘왜 남의 일이야? 인간은 서로 책임이 있어’라는 대사에 꽂혔던 이유를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만나자는 사람들이 싫다는 건 아니다. 그저 책임을 지지 않았던 관계와 경험들이 나에게 남아있어, 전같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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