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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15. 2021

성미의 개근상

짧은 픽션 06

성미가 10살 때의 일이었다. 성미 엉덩이에 종기가 났다. 어쩌다 얼굴에 하나씩 나는 여드름과는 달랐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로 엉덩이가 아파 엎드려서 자야 마땅했다. 성미 엄마는 종기를 면봉으로 짜줬는데, 일시적으로만 없어질 뿐 자고 일어나면 오히려 더 번져있었다. 상태는 더 심각해져서 걷는 자세도 어정쩡해졌다. 


월요일이 됐고, 성미는 오늘도 어김없이 잠을 설쳤다. 피곤하고 짜증 나고 슬픈 감정이 얼굴에 가득한 채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성미 엄마는 그런 성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수건을 들고 머리를 말려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책가방을 챙겨줬다. 


“엄마… 나 너무 아픈데 학교 안 가면 안 돼?”


성미 엄마는 마음이 아팠다. 성미 엄마는 성미를 끌어안고 말했다. 


“성미야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어린 성미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 실내화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엄마는 성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여전히 걸음이 어정쩡했다.


학교가 끝나고 성미는 피아노 학원에 갔다. 선생님의 지도가 끝나고 연습실에 들어가서 연습을 할 때, 엉덩이에서 탁- 하는 느낌이 들었다. 성미의 종기 하나가 터진 것이었다. 성미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성미는 연습 횟수를 다 까맣게 칠해버리고 연습실을 나왔다. 


“성미야 벌써 다 쳤어?”


“…”


고개를 푹 숙인 성미의 눈에서 말간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걸 보고 선생님은 어깨를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 가보라며 성미의 가방끈을 올려줬다. 성미는 고개를 푹 숙여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팬티에 노랗고 끈적한 고름이 묻어있었다. 성미는 속옷과 엉덩이를 휴지로 닦고, 물로 닦고, 거울을 보곤 눈물을 닦았다. 


“오늘 일찍 왔네?”


“… 엄마 나 연습하다가 엉덩이 이거.. 하나 터졌어”


성미 엄마는 성미를 침대에 눕혔다. 소독약을 갖고 와서 소독을 하고 성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성미는 종기가 난 부위를 치료하고 주사도 맞고 약을 처방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성미에게 성미가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그날, 성미는 곧은 자세로 잘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성미의 어제 결석했던 짝꿍 유리가 성미에게 저번 주 수학 숙제를 선생님이 걷어갔냐고 물었다. 성미는 그렇다고 했다. 성미는 유리에게 학교에 왜 오지 못했는지 물었다. 


“어제 열이 좀 나가지고, 엄마가 학교 가지 말라고 하셔서”


“아 감기였어?”


“감기인 줄 알았는데 좀 쉬니까 나았어”


성미는 신기했다.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하기도 하는구나. 심지어 아픈 게 아니라 아픈 걸까 봐… 그날 성미는 조금 건조한 마음으로 집으로 갔다. 성미 엄마는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성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답했다. 


성미는 개근상을 받았다. 상장을 받으며 성미는 어딘가 부끄러웠다. 얼마나 미련하게 학교를 다녔으면 이런 상장을 받아. 성미 눈에 그건 개근상이 아니라 미련상으로 보였다. 성미는 가방에 상장을 쑤셔 넣었다. 집에 돌아와 성미 엄마는 성미에게 개근상을 받았냐고 물었다. 성미는 상장을 꺼내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너는 상장을 곱게 들고 와야지 이렇게 모서리가 구겨지게 갖고 오면 어떡하냐고 일렀다. 성미는 듣지 못한 척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상장을 어디에 놓아야 좋을지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


하루는 성미가 고등학교 방학 때였는데 성미 엄마가 아팠다. 저녁부터 열이 나고 온몸이 당길 정도로 근육통이 있었으며 복부에 붉은 포진 같은 게 생겼다.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고통이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뒤척였고 성미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아침에 성미 엄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했다. 성미는 엄마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제야 자신의 배를 보여줬다. 성미는 놀라 병원에 가자고 했다. 엄마는 회사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성미는 자신의 엉덩이에 종기가 났던 때가 떠올랐다. 


“엄마 이렇게 아픈데 회사를 어떻게 가 회사 못 간다고 해”


“아니야… 가야지 엄마가 안 가면 누가 엄마 일을 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


성미는 엄마의 핸드폰을 들고 회사 연락처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성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성미라고 하는데요. 저희 엄마 성함은 윤미자인데 엄마가 오늘 아파서 아무래도 회사에 못 갈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말씀드릴게요. 성미가 통화를 끝냈다. 성미의 부축으로 성미 엄마는 병원에 갔다. 대상포진이었다. 약을 먹고 누워있는 성미 엄마가 성미에게 말했다. 


“엄마가… 엄마가… 우리 성미 엉덩이 종기 났을 때… 아직도 후회해 그때 학교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뒤뚱거리면서 가는 뒷모습을 보고 엄마가 참 나도 미련하다 생각했었어… 우리 딸은 똑똑하네. 엄마처럼 미련하지 않네”


성미는 듣지 못한 척하고 부엌에서 물을 떠 와 약을 건넸다. 성미는 엄마 옆에 앉아있었다. 방안엔 티브이 소리만 맴돌았고, 어느새 어두워져 성미가 거실 불을 켰다. 성미는 장식장에 있는 개근상을 바라봤다. 도대체 저런 게 뭐가 중요해. 


“엄마, 개근상 같은 거 안 중요해”


“에이… 그래도 중요하지”


성미는 순간 엄마가 불쌍했다. 어떤 게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이, 어떤 세상이 엄마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아니… 저런 거 안 중요해 엄마… 중요한 건 우리야”


성미 엄마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성미 엄마는 성미의 손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새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미는 빈 컵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될까. 성미는 어두운 부엌에서 컵을 씻으며 몰래 울었다. 조용히,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성미는 알고 있었다. 오래전, 피아노 학원에서 체득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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