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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Nov 05. 2021

오늘 일기 01

짧은 픽션 07-1



*


다음 글을 클릭했다. 벌써 열두 번째 포스팅이었다. 세 번째 포스팅에선 ‘선화 님을 이웃 추가하고 새 글을 받아보세요’라는 알림 창이 떴고 나는 혹시나 잘못 누를까 눈을 똑바로 뜨고 정확히 ‘취소’라는 글자의 중앙을 눌렀다. 네이버에서는 일상 포스팅을 하는 유저들을 독려하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지급해 주는 이벤트를 했다. 일상 포스팅을 쭉 써오던 사람들보다 나같이 돈이 목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이 참여한 것 같긴 했지만, 아무튼. 나머지 포스팅은 내일 보기로 하고 우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 꿈엔 은하가 나왔다.


은하는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어깨 정도에서 삐죽삐죽 바깥으로 뻗은 머리를 하고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은하에게 다가가 어디로 가냐고 물었는데, 처음엔 듣지 못하다가 내가 어깨를 살짝 건드리니 그제야 나를 발견했다. 어디 가? 내가 물었고, 모르겠어,라고 은하가 대답했다. 정신을 차리니 지하철이 도착해있었고 은하가 거기에 탔다. 나는 타지 않았다. 아니 타지 못했다. 왠지 내가 탈 지하철이 아닌 것 같았다. 은하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사라졌다.


내 방은 유난히 해가 많이 들었다. 물론 장점이긴 했지만 방이 지나치게 더워졌고, 여름에는 그 빛 때문에 상당히 이른 시간부터 더러운 기분으로 깨는 날이 잦았다. 그래서 암막 커튼을 중고로 사서 방에 달았다. 내 방은 조금 시원해지고 많이 어두워졌다. 엄마는 그런 내 방을 싫어했다. 사내자식이 이렇게 살면 홀아비 냄새가 날 거라고 했고, 햇빛이 잘 드는 이 집을 사느라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곤 했다. 나는 그런 말들이 마치 반찬인 것처럼 밥과 함께 씹어 넘겼다.


나는 늦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왔고, 학교는 졸업을 유예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나는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돈도 친구들과 술을 몇 번 먹으니 금세 사라졌다. 어쩌면 그래서 암막 커튼이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아침이 다 돼서 들어와 낮까지 자는 한심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도 밥을 먹으며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다시 침대에 누워 선화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선화와는 중학생 때 알게 됐고 고등학교도 같았다. 근데 이 블로그가 정말 내가 아는 선화가 맞나?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 선화가 맞는 것 같은데, 얼굴 사진이 없었다. 여자들은 그래도 자기 사진이 한두 장 정도는 있던데 선화는 정말 얼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혹시 놓쳤나? 나는 스크롤을 내려 어제 봤던 글을 다시 눌렀다. 이번에도 하단에  ‘선화 님을 이웃 추가하고 새 글을 받아보세요’라는 메시지가 떴고, 나는 홀린 듯 취소가 아닌 ‘추가’의 정중앙을 눌렀다.


*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다가 동네 개천으로 산책을 나갔다. 걸으면서 그 블로그가 내가 아는 선화라고 짐작한 이유는 우선 동네였다. 잘은 모르지만 선화가 사는 동네가 그 동네쯤이었다. 그리고 어떤 게시물에 언뜻 밝힌 나이가 나와 같은 나이, 선화의 나이였다. 사실 이거만 가지고 확신하기도 애매했지만 그 나이에 ‘선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은 정말로 내가 아는 ‘선화’밖에 없을 확률이 높았다.


고요한 내 잠을 깨운 건 선화 님이 나에게도 이웃추가를 했다는 알림이었다. 나는 내가 벌린 일이면서도 괜스레 당황을 했다. 다급히 내 블로그를 살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사진들이 세 페이지 정도 있었고 가끔씩 허튼소리를 끄적인 게 한 페이지 정도 있었다. 카테고리 이름은 ‘1’, ‘2’로 단순했다. 다행히 흑역사로 취급되어 면 빠질 일은  없었다. 팝업창이 떴다. [선화 님이 ‘190504’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혹시 **고등학교 윤상원이 맞나요? ㅎㅎ 나 유선화인데 기억해? 혹시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바로 답글을 달았다. [맞아 ㅋㅋ 기억해 오랜만이다] 선화는 혹시 괜찮으면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내 아이디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옛날에 연애를 시작할 때 느꼈던 그런 기분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시간을 따져보니 벌써 2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은하와 했던 연애. 은하와 나는 3년 동안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 결국엔 헤어졌다. 은하는 스물두 살 때 국숫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다. 내가 8개월 차였고, 은하는 갓 들어온 신입이었다. 그때 나는 은하를 가르쳐야 했고, 은하는 나를 많이 따르고 작은 실수에도 어쩔 줄 몰라하며 여러 번씩 사과를 했다. 나는 서투른 은하를 챙겨주고 싶었고, 은하는 내가 든든해 기대고 싶다고 했다. 그러던 은하가 날 떠난 건, 내 실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이 끝날 때가 되니까 패배자의 마음으로 모든 것에 비관적이 된 나는 세상뿐만 아니라 은하에게도 시니컬하게 굴었다. 하루는 은하가 밥을 먹다가 ‘오빠 제발… 먹을 때만이라도 그냥 생각 없이 웃으면서 먹으면 안 돼?’라고  말했는데, 나는 거기다 대고 ‘너야 세상살이 불편한 거 하나 없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라고 말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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