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Jun 03. 2020

오늘도 이직 실패 중

나의 첫 번째 이직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젊은 꼰대가 되어 하는 말 같지만,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분위기의 조직과 조직장이 존재했다. 회사의 문화 또한 지금과 같지 않아 힘없는 사원의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곳이 없었다. 기껏 기대 봐야 동기들이었는데, 연차도 같고 그래 봐야 나보다 2~3년 인생 더 살아온 언니 오빠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울릴 리가 없었다.


그때 나는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이직을 결심했다. 하루 휴가 쓴다는 말 조차 눈치가 보여 꺼내기 힘들었던 그 당시, 이력서를 급히 만들어 구직 사이트에 올렸고 꽤 빠른 시간 안에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시 잡혔던 3건의 인터뷰 기회 중 2건은 휴가를 쓰지 못해 날아갔고 1건은 운명같이 성사시켰다. 그곳이 바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다. 이직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일사천리로 회사를 옮기는 데 성공한 거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이직의 고민에 빠졌다.


#

어느새 직장 생활 1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직급 체계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과장이라 불리고 있고, 어지간한 상사의 짜증과 괴롭힘은 내 계좌에 잠시 들어갔다 사라지는 월급처럼 금방 잊을 수 있는 정신력이 존재하는 시기다. (그만큼 회사 생활이 무기력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쯤 되면 젊은 조직에서는 팀장 또는 파트장을 해야 하는 연차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10여 명의 팀 안에서, 연차와 나이로 따져도 아래에서 세 번째다. 어떤 일을 리드해 본 적도 없고, 리드하려다가 되려 혼이 났던 경험도 있다. 아직까지도 팀 안에서 누군가의 서포트를 해줘야 할 때가 많고, 그나마 과장이라는 이유로 예전처럼 나를 포털사이트 지식인으로 부려먹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늙고 무거운 조직에서 나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대기업 치고는 젊은 조직을 보유하고 있던) 어느 소비재 회사의 인터뷰에서 면접관은 내게 물었다.


"우리 팀에 오면 팀 내에서 2인자로 일해야 해요. 9명 정도의 팀원을 팀장과 함께 이끌어나가 줘야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팀을 리드한 경험이 있나요? 이력서 상으로는 팀이나 팀원을 매니징 했던 경험은 전혀 없는 것 같아서요"


면접관은 정확하게 나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이렇게 당황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시선을 회피하다가 논점이 흐려진 답변으로 무장한 채 우물쭈물 대답하곤 한다. 이런 순간이 바로 면접에서 망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되니 다음 면접 전형으로 넘어갈 수가 없다.


내 직급이나 연차가 언제 이리 무거워졌는지, 나는 지금 이 나이와 연차를 먹도록 왜 나를 성장시키려 하지 않았는지, 이직을 원하는 이 시점 나는 지독하게도 셀프 디스를 하며 나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복기하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시간은 지금도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하지만, 나의 약점을 어떻게 커버해야 할지, 내 약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거짓말이라도 어떻게 예쁘게 해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나는 아직도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다.


#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올해 코로나 이슈로 인해 꽤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이 꽤 혼란스러웠던 2월부터 회사 사정은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글로벌 확산과 팬데믹이 오면서 회사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몸 담고 있는 조직인데 쉽게 무너지겠냐 생각했지만 그런 일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을 조금씩 온몸으로 체감 중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고, 예전엔 면접 기회가 와도 바쁘다며 거절했던 몇몇 회사들의 폭풍 성장을 보며 그 당시 나의 오판이 지금 여기까지 나를 몰고 왔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무릎을 쳤다.


국내 대기업이 주도하는 사업 중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최근에 정말 꽤 여럿 지켜보고 있다. 당장 나의 친언니가 다니는 국내 굴지의 회사도 이름만 화려할 뿐 속으로는 마땅한 먹거리가 없고 성장 동력을 한참 전에 잃어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에 빠져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다니는 회사 역시 5년 전만 해도 누구나 다니고 싶어 하던 회사에서 지금은 빨리 회사를 벗어나 다른 직장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하다며 내부 인원들끼리 이직 스터디를 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과 기업의 존폐 위기까지, 내가 이렇게까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지켜보며 회사를 걱정하고 이직을 고민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릴 때,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버리던 나의 오만한 태도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

나의 팀장이 나를 지적할 때에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넌 왜 이렇게 포장을 못하니"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포장을 잘해야 하는 건 기본 덕목 중에 덕목이라 생각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성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포장도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할 때에도 얼마나 필수 불가결하며 중요한 일인지를 경영진에게 보고해야 할 때에도 포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승진을 앞두고 있거나 좋은 고과를 받고 싶을 때에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포장이 내겐 참 어렵다. 나는 주로 업무 실무자들 사이에서 일 잘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지만, 경영진이나 조직장들에게는 내 이름이 아마 낯설거나 특별한 존재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전부터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포장하기는 아직까지도 내가 연마하지 못한, 내 사회생활에서의 가장 큰 약점이다.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정리하다 보니 그 약점은 여실히 드러났다. 보도자료를 쓰듯 사실만을 재미없게 열거해놓은 내 이력서를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내가 인사 담당자라도 내 이력서의 매력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왔던 일에 대해 조금 더 그럴듯하게 표현하고 내 성과를 디테일하고 자신감 있게 표현해도 모자랄 텐데 나의 이력서는 단순하고 담백하고 꾸밈이 없는 그 자체였다. 나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실망한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회사명이나 학교명 등 누군가가 원하는 타이틀이 아닌 이상 내게 면접 기회가 주어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 이 실타래는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할지 가슴이 턱턱 막힌다.




이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체감상 조금 힘든 시기에 도달한 것 같다. 알 수 없는 불안감부터 시작해서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도달하다 보니 이런 상태로 무엇인가를 제대로 시도하고 끝맺을 수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린 시절 어려움 없이 회사를 옮기고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으며 편히 연차를 까먹은 대가일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이직을 시도하겠지만, 오늘  순간까지도 이직에 실패하고 있는 나에게 셀프 디스보다는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다. '그동안 회사 생활 대충 해왔지만 괜찮아. 대충 해왔던  시간  자체로 지금 네가 배울  있는  있다면 그걸로도 잘한 거야.'






작가의 이전글 유니폼 잔혹사: 그들은 모두 떠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