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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Jun 02. 2020

유니폼 잔혹사: 그들은 모두 떠났다

영화 <머니볼>처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나는 전학을 가 본 적이 없다. 이사는 중학교 때 딱 한 번 가봤고, 그마저도 멀리 가지 않아 학교를 옮겨야 하거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없었다. 이렇게 나는 늘 내 자리를 지켜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변 환경이 바뀌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떠나가는 것을 매우 잘 참지 못한다. 초등학생 때 교생 선생님들이 우르르 왔다가 한 달 뒤 우르르 사라지면 그때 느껴지는 공허함이 너무 싫었다. 연인과의 헤어짐에도 내가 다른 이들보다 더 격렬하게 힘들어하고 이성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도 이 것과 연결된다. 나는 늘 내 자리에 있는 것 같았는데 주변의 환경과 사람이 바뀌면 나는 그 혼란 속에서 묘한 상실감을 발견하게 된다. 그 감정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야만 내 생활은 금방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만의 패턴이다.


이런  주변 환경에 대한 집착은 신기하게도 야구팀에게 까지 뻗어있다.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은 여러 차례 팀의 대표 선수들을  팀으로 보냈다. (일부러 보냈다가보다는 자유계약신분이  선수들에게  팀만큼 충분한 연봉을 제시하지 못해 생긴 이별이 많은 편이다.) 영화 <머니볼> 생각나는 순간이다.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구단으로 포지셔닝이 되면서 평소 응원하던 여러 선수들을 떠나보냈는데, 요즘 야구 경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년에  얼마나 많은 선수들을 떠나보낼까' 대한 걱정이다.  정도가 되면 야구를 응원하는 건지 집착하는 건지 헷갈리는 수준이다.


그 때문인지, 요즘 들어 경기가 별로 재미가 없고, 경기 중에 수 없이 많은 에러를 보고 있자니 저들도 나처럼 싱숭생숭한가 싶어 경기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야구가 없는 월요일, 나는 옷장 속 겹겹이 쌓인 옛날 옷가지를 들춰내 응원팀 유니폼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현재의 야구팀을 응원하면서 선수 이름과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세 번 구매했었다. 좋아하는 선수를 한 명씩은 정해놔야 팬으로서의 소속감이 더 생기는 것 같은 쾌감에 시작한 유니폼 구매였다.


첫 번째 유니폼은 39번이었다. 39번 선수는 발이 빠르고 수비 범위가 매우 넓으며 여심을 흔드는 다이빙 캐치와 주루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어린 시절 농구를 볼 때에도 3점 슛터 우지원보다는 컴퓨터가드 이상민을 좋아했던 것처럼, 나는 홈런타자보다 발 빠르고 섬세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에게 먼저 눈이 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2013년 시즌을 끝내고 팀을 떠났다. 야구장에 가면서 처음 샀던 유니폼이자, 응원팀 최애 선수 첫 픽의 주인공이었는데 생각보다 허무하게 팀을 떠났다. 그렇게 39번 유니폼은 창고 깊숙한 곳에 살짝 접어두었고 7년 간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39번 유니폼을 들고 다니면서 사실 나는 한 개의 유니폼을 추가로 구매했었다. 두 번째 유니폼은 50번이었다. 나는 평소 튀지 않는 사람들을 매우 좋아한다. 야구 선수라면 튀어야만 매력이고 그게 그들의 몸값일 것이다. 사실 두 번째 유니폼의 주인공은 야구 실력으로만 보면 매우 튀는 선수였다. 신인인데 마치 기계처럼 타격을 했다. 공이 배트에 맞기만 하면 안타가 되는 것 같은 시즌이 여럿 있었다. 통산 타율이 3할이 넘어갈 정도로 매 년 꾸준히 잘했고 그 때문에 몸값도 점점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 튀지 않았고 다른 선수들과 매우 융합이 잘 되는 사람이었다. 실력도 좋은데 주변도 잘 챙기고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회사 생활을 하는 내가 배우고 싶은 포지션이기도 했다. 그렇게 난 50번을 열렬히 응원하게 됐지만 그는 2015년 시즌을 끝내고 팀을 떠났다. (당시 메이저리그 도전으로 팀을 떠났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그의 높아진 몸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는지 역시나 내 응원팀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 멈출 수 없던 나는 2016 시즌을 앞두고 25번 유니폼을 구매했다. 응원팀 포수의 유니폼이었다. 사실 나는 포수라는 포지션엔 큰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25번 선수보다 다른 백업 포수의 볼배합을 당시 더 선호했었다. (야알못이지만.. 그 당시에는 백업 포수의 볼배합이 더 공격적이라고 느껴져서 좋아했더란다.) 하지만 2015년 응원팀의 우승에 포수의 역할이 진득하게 녹여져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팀이 서서히 강팀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것과 함께 개인의 커리어와 능력치도 서서히 강력하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투수와 합을 맞춰 가장 효과적인 작전을 쓰고,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구종을 선택하며 투수를 리드한다. 물론 포수의 역할이 어느 팀이나 다 똑같겠지만 25번 선수의 경기를 읽는 센스와 리드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견고해졌고, 공을 던지는 투수는 물론이며 이를 지켜보는 관중과 시청자들의 신뢰도 두텁게 쌓았다. 앞서 말했던 튀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 충분한 협업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심지어 포커페이스다. 그를 보면서 회사 안에서의 내 역할도 그의 모습처럼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가 천천히 성장한 것 처럼 나도 내 개인 커리어를 성장시키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운동선수지만,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포지션과 캐릭터를 보유한 그의 팬이 되는건 시간문제였고, 유니폼은 그 가치를 충분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2018년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어느새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어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적절한 대우를 받으며 떠났기 때문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지만 이 부분은 2020년 현재까지도 매우 마음이 쓰린 이별이다.




이렇게 세 번의 유니폼 구매를 끝내고 2019년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유니폼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니폼을 구매하고 특정 선수를 집중해서 응원하는 족족 모두 떠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아 떠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 이건만, 응원팀의 존재를 '1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처럼 여기는 나로서는 여간 서운하고 속상한 일이 아니다.


작년 이 맘때쯤 37번 유니폼을 구매할까 하다가 망설였다. 37번 선수가 내후년이 되어 그의 다른 선배들처럼 어디론가 떠나면 내 유니폼 잔혹사가 또 다시 시작될 거라는 두려움이 급습했기 때문이다. 다급히 인터넷 구매 창을 닫아버리고 나는 지금까지 새로운 유니폼을 구매하지 않고 있다.


비싼 선수들을 사서 팀을 우승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적은 자본으로 우승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자 했었던, 영화 <머니볼>의 바탕이 되었던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이야기는 영화의 명대사와 영화 엔딩의 "The Show" 노래에 맞춰 매우 감동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10년을 넘게 봐도 프로 세계의 스포츠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방구석 야구팬일 뿐인가 보다. 좋은 선수는 잘 지켜 우승도 여러 번 하고 상대팀에서 보기 얄미운 세리머니도 계속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시답잖은 미신 같은 걱정은 그만하고 37번 유니폼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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