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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Jun 10. 2020

나는 매일 스타벅스에 간다

소소한 어느 하루가 모여 이 장소가 특별해졌다

# 스타벅스에 가는 이유


나는 매일 스타벅스에 간다. 스타벅스는 평일 아침 간신히 몸을 이끌고 나오는 출근길의 유일한 안식처이며 주말 오전 늦은 첫 끼를 도와주는 고마운 곳이다. 다른 커피전문점도 많지만 내가 스타벅스를 매일 가는 이유는 '안정감' 때문이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메뉴를 정독해야 하고 맛을 보장할 수 없으며 새로운 주문 시스템이나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졌다. 스타벅스 커피가 가장 맛있지는 않아도, 내 기준에서 가장 보편화된 커피라고 생각해서 맛이나 향에 대한 리스크가 없다. 심지어 낯선 이국 땅 여행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다리가 아플 때에도 스타벅스를 발견하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인양 반가운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가곤 한다. 이게 바로 내가 스타벅스에서 느끼는 '안정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사이렌오더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스타벅스 카드는 두둑하게 미리 충전해둔다. 어느 날부턴가가 카페인에 너무 민감해져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찾는 게 일상이 되었고 가끔 달달한 음료가 생각날 땐 망고바나나 블렌디드 혹은 더블샷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한다. 


내가 대학생일 때에 스타벅스는 (그 당시 생겨난 신조어 중 하나였던) '된장녀' 소비패턴의 전형이었다. 커피값이 웬만한 식사보다 비싸다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 당시만 해도 자판기 커피나 편의점 캔커피가 사랑받던 때였기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의 가격대는, 외부에 목소리를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주요 언론의 먹잇감이 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상황이 매우 다르다. 회사 근처 식당에 가면 하루 점심값은 저렴하면 8천 원, 비싸면 1만 원이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흑당 음료 혹은 기타 달달한 음료를 마시러 가면 6천 원이 훌쩍 넘는다. 나는 흑당 음료도 싫어하고 달달한 음료나 과일주스도 싫어하며 카페인에는 쥐약이어서 늘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그래서 인스턴트 디카페인 커피도 종종 사무실에 쟁여놓고 먹지만, 그란데 사이즈 컵에 누군가 맛있는 비율로 제조해 준 음료를 마시는 건 하루 중 내가 느끼는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이다. '된장녀'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고, 그렇게 된장녀와 스타벅스를 비난하던 때에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스타벅스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공부를 하거나 개인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랬던 우리가 30대가 되어 소비의 주체가 되자 스타벅스 카드에 몇 십만 원씩 충전해두고 간편하게 커피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고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혹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개인의 취향이자 범용화 된 일상의 단편일 뿐이다. 


# 기억에 남는 스타벅스

화창한 4월의 어느 주말. 회사에서 부르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주말 출근을 해야 했다. 그 날 나는 딱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나 출근했다. 바로 전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밤새 펑펑 울며 나를 자책했기 때문이다. 그 날이 주말인지 평일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의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사무실에 들어가 출근 도장을 찍었고, 정작 나를 출근시켰던 내 사수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출근하지 않아 나는 오전 시간을 특별한 일 없이 보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배는 고팠고, 밥을 야무지게 먹을 자신이 없던 나는 스타벅스 소공동점으로 향했다. 그 날은 달달한 음식이 당겼는지 아메리카노에 초코 케익을 함께 주문했다. 주말이지만 생각보다 손님이 많지 않아 주문한 음료와 케익은 꽤 빨리 나왔다. 나는 서울 시청 잔디밭이 보이는 유리창 앞 1인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창 밖을 바라봤다. 어쩜 날씨가 이리도 좋은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주말을 맞이해 데이트 나온 연인들과 한 없이 밝아 보이는 어린 아이들을 보고 있는 와중에 유리창 너머 초라한 내 모습이 갑자기 비쳤다. 그리고 동시에 바로 전 날 있었던, 구 남자 친구와의 찌질한 연애 마지막 날이 떠올랐다.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던 터라 마음을 단단히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강력한 후유증을 불러왔나 보다. 커피를 두 모금 정도 마셨을까. 갑자기 나는 자리에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오열했다. 처음엔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휴지로 급히 닦아 진정하려 했지만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갑자기 폭발했던 것 같다. 꺼이꺼이 소리 내며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지나가던 누군가가 내 자리 옆에 냅킨을 잔뜩 놓아두고 갔다. 눈물이 앞을 가려 스타벅스 직원 분인지 아니면 일반 고객이었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최대한 소리를 낮춰가며 울음을 참아보려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 날의 눈물은 내겐 이별의 아픔이었지만 제 3자에게는 민폐의 끝, 궁상맞음의 끝판왕이었을 거다. 그 날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 날, 직원들과 주변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렇다고 찾아가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할만한 상황도 아닌 듯하여 넘어갔더란다. 




나는 지금 이걸 쓰면서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있다. 회사에서는 주로 회사 카페테리아를 찾아 저렴한 커피를 마실 때도 많지만 디카페인이 필요하거나 혹은 아주 소소한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회사 근처 스타벅스까지 슬슬 마실을 다녀온다. 누군가는 요즘 유행하는 여름 프로모션 상품을 받기 위해 가는 거냐고 묻지만, 매일 가는 김에 받아도 좋고, 또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프로모션 상품에 비할 바가 안될 정도로 그 동안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시간을 만들어 준 공간이기 때문이다. 


비록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벅스는 눈물 질질 짜던 장소라고 밝혔지만, 취업 소식을 가장 처음 접했던 대학교 앞 스타벅스도, 우산 없이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을 때 따뜻한 라떼와 함께 잠깐 비를 피할 수 있게 해 줬던 테헤란로 스타벅스도, 길을 잃고 한참을 뱅뱅 걷다가 지쳐 울고 싶을 때쯤 구원같이 나타났던 신주쿠의 스타벅스도 내겐 여전히 생생하다. 


별거 아닌 소소한 기억들이 모여 스타벅스라는 공간이 내겐 특별해진 것 같다. 앞으로 또 더 재미있고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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