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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Apr 30. 2020

괜찮은 이별 같은 건 없다네

이별 잘하는 방법 어디 없나요

나이를 먹으면 예전보다 더 나은 이별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애초에 이별 자체도 덜 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했다. 지난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고, 같은 일로 후회하고 싶지 않아 노력하며 누군가를 만날 테니 헤어지게 될 확률도 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인 사이의 관계는 정리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헤어지게 되는 거라면 그걸 이겨내는 시간은 이 전보다 덜 힘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다.


하지만 역시 난 인생의 하수였다. 세상에 괜찮은 이별이라는 건 없었고,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았다. 독감처럼 강하게 앓고 지나갔던 과거 어느 날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건 분명했다.


#

"넌 너무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아"

첫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상대에게서 헤어지던 날 듣던 얘기다. 나는 그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항상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거나 잡지를 읽었다. 그의 일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어 대학교 때 듣던 '정보통신 경제학' 수업 필기 노트를 다시 열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게 그에게는 '아는 척'하는 것으로 보였었나 보다. 뭐든 척척 대답하고, 가끔은 그건 아닌 것 같다며 되묻기도 하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헤어지는 날이 되어서야 그는 고백했다. 미리 말해줬으면 고쳤을 수도 있었는데 이미 서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지쳐버린 시점이었다.


이렇게 지치도록 싸우고 시원하게 헤어진 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그를 다시 만났다.

"우리 다시 잘해보자"라는 그의 말을 듣고 3개월 전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유치하게 말싸움하던 그 날은 까맣게 잊어버린 거다. 하지만 그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나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났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는 한동안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괜찮은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연락했다.


"나 울어"

그러자 그는 너무도 태연하게 답변했다.

"울고 나면 괜찮을 거야"

"한참을 울었는데도 계속 울어"

"그럼 좀 더 울어. 그럼 정말 괜찮을 거야"


왜 그는 그렇게도 태연 했던 걸까. 속상함에 더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더 울어봤다. 눈물은 좀 그치는 것 같았는데 이젠 숨이 차기 시작했다. 하-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나보고 너무 아는 척한다더니, 그의 괜찮을 거라는 아는 척은 이 전의 나보다 더 별로였다. 너의 아는 척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며 다시 연락하고 싶었지만 참아보기로 했다. 이런 날을 며칠만 더 참고 참으면 그의 말처럼 되겠지 하고 참아보기로 했다.


#

그와의 연애를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그의 성격을 닮고 싶어 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참 잘했다. 웃는 모습도 자연스럽고 그가 건네는 친절은 어색함이라는 게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늘 그를 '좋은 사람'이라 불렀다. 나도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고민해봤는데, 나는 다른 사람과 편하게 얘기하는 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얘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포털 사이트도, 뉴스도, 잡지도 여럿 봤다. 아는 척을 한다는 말에 대한 핑계처럼 들리지만, 나는 그를 닮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와 같이 있으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연인 사이를 유지했던 것 같다. 만남이 곧 치유가 되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그와 함께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생각했던 연인과도 관계를 정리하는 날이 온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관계의 끝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쓸데없이 지저분해서 더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함께했던 그 시간을 부정하기는 싫었다. 그와 나는 함께 꿈을 꾸었고 미래를 그려봤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각자 원하는 자리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관계를 돌이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펑펑 울기도 했지만, 다시 만나더라도 그 아름다운 시간과 따뜻한 꿈을 꾸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후에 숨이 막혀왔던 것 같다. 어리고 조금은 불완전했던 그 당시 나에게 그의 존재는 생각보다 의미가 있었다. 내가 한참을 울었던 이유가 그와 데이트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헤어지고 한참 후에 알게 됐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며 벅차오르는 이별의 감정을 지워내는 연습에 들어갔다.


#

주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해줬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가장 힘든 것은 '일상의 공유'였다.

'이 시간쯤이면 퇴근했겠군, 월요일은 운동하러 갔겠군, 성당 사람들을 만나러 가겠군,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켰겠군'

그의 스케줄을 줄줄 꿰고 있는 사람처럼 그의 시계를 보며 생각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밖에서 돌아다니며 일하기 어렵겠다며 빗물에 스쳐 촉촉이 젖어있을 양복바지 밑단을 떠올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운 건 '장소, 공간'이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고 삼성역 옆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삼성역 7번 출구에서 나와 버스 환승하러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하나하나 살펴봤다. 혹시라도 보게 될까 봐. 뭐 이런 거.


시간이 해결해줄 때까지 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힘들 때마다 친구들을 만나 신세 한탄을 하거나 의미 없는 연예인 얘길 하면서 시간을 보내봤지만, 집에 들어와 씻고 침대에 누우면 잠 같은 건 오지 않는데 그 시간은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 걸까.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마냥 울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줄어들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건 맞다만, 이런 헤어짐의 경험은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면 어느 정도로 내 마음을 주고 만나야만 헤어지고 나서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지 않을지 생각해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군가와 처음 헤어진 사람처럼, 참 강렬하게도 이별을 맞이했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자며 아낌없이 표현하고 아낌없이 전달하리라던, 지난 내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던 밤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나는 나를 다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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