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뀨 Oct 07. 2024

한창 좋을 때 나타난 불청객

유부녀의 스타벅스 캐나다 워홀 [7]

[7]


근무가 끝나면

항상 매장에 남아

팀원들은 어떻게 일하나 살펴봤다.


특히 손이 빠르고

손님들이랑 활발히 소통하는 팀원들을

많이 살펴봤다.


 ‘뭘 어떻게 다르게 일하길래

빠르게 일할 수 있을까..?’


아이스 라떼를 쪽쪽 빨며

음료 만드는 바에서 일하는

크리스를 지켜봤다.


프라푸치노 주문과

라떼 주문이 동시에 들어오자,

크리스가 프라푸치노 재료들을 블렌더에 넣었다.


블렌더가 돌아가는 동안

재빠르게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가서

라떼에 들어갈 우유를 스팀 하곤

에스프레소 샷을 추출 버튼을 눌렀다.


그다음 바로 다시 블렌더로 돌아가더니

프라푸치노를 완성했다.

크리스는 에스프레소바로 다시 돌아가

스팀 된 우유와 추출된 샷으로

라떼 완성시켰다.


짧은 시간 안에

크리스의 손에서

음료 2개가 거의 동시에 완성됐다.


 ‘아.. 저렇게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개를 만드는 거구나..’


종이빨대를 물어가며

크리스와 다른 팀원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종이 빨대가

입 안에서 맥을 못 추고 질겅댔다.


 ‘내일 똑같이 해봐야지’


 ‘아.. 안된다.. 안돼..’


나름 지켜보고

따라 한다고 따라 했는데,,

음료 만드는 바에만 있으면

눈앞이 하얘졌다.


일단 시럽 종류가 너무 많았다.

차근차근 음료 만드는 순서를 따라 하려 해도

시럽을 찾느라 시간이 느려졌다.


시럽 찾고 있다가

에스프레소 샷이 식어가고

당황한 나는 다시 헤매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

그냥 멘붕 그 자체였다.


그렇게 발전 없이

매장에 남기만 몇 번..


그러다 앨리스를 만났다.


앨리스는

우리 매장 직원은 아니었다.


앨리스의 매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느라

잠시 우리 매장에 파견 나온 것이었다.


앨리스는 처음 봤을 때도

에너지가 넘쳤다.


근무가 시작되자

앨리스는 음료 만드는 자리로,

나는 어김없이 주문받는 자리로 배치했다.


그날은 좀 여유 있는 날이어서,

주문받으면서

앨리스가 어떻게 음료를 만드는지

틈틈이 살펴봤다.


앨리스도 우리 매장은 처음이라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속도가 나와 비슷했다.


차이점은 단 하나

절대 당황하지 않는 거였다.


차분히 처리하니까

실수가 없었고, 

실수가 없으니까

전체적으로 빨랐다.


 ‘아..

내가 절대 느린 게 아니구나

그냥 당황하고 쫄아서

실수만 많이 하는구나..’


그걸 알아차리자

변화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천천히,

차근차근.


나는 잘 만들었으니까,

나는 잘 만들 수 있으니까.


마음을 가라앉혔다.

실수해도

당황하지 않고,

주문이 길게 밀렸을 때도

흥분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내가 느린 게 아니야, 주문이 많은 거야.’

스스로를 다독였다.


실수가 줄어들었음을 느꼈다.


 "꿈뀨! 너 이제 쉬는 시간이야!

고생했어! 15분 쉬다와!!"

바에서 열심히 음료 만들고 있다가

쉬는 시간이 다가왔다.


앞치마를 풀고

휴게 공간으로 가려던 때

이사벨이 슈퍼바이저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꿈뀨가 매장 제일 붐빌 때

실수 하나 없이! 당황하지 않고!

모든 음료 다 처리했어!!"


?!

그제야 매장을 둘러보았다.

뭔 손님들이 저리도 많은 지..


 “Yay!! Great Job!!!”

함께 일하던 슈퍼바이저가 외쳤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


스타벅스에서 일한 지

3개월 즈음돼 가는 시점,

드디어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일이 몸에 붙기 시작하고는

각 슈퍼바이저들의 스타일을 파악했다.


어떤 슈퍼바이저는

가이드정책을 우선으로 두고,

소소한 것이라도 무조건 가이드라인에 맞췄고,


어떤 슈퍼바이저는

고객이 우선이라며

가이드라인이 아니더라도

손님 요구사항에 맞췄다.


그날 같이 일하는 슈퍼바이저 스타일에 따라

나도 맞춰 갔다.


 ‘Nice Team work!’

이 말을 자주 듣게 됐다.


마음이 편해지자

그동안 숨겨왔던

탠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즐겁게 웃고,

팀원들과 농담도 하고

음료 만들면서 스몰톡도 하고..


그러자 팀원들이

 ‘Lovely 꿈뀨’

라고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를 믿기 시작했다.


여전히 소소한 실수는 저질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나를 믿을수록

나의 실수들을 눈 감아주기 시작했다.


신뢰에는 서로를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느꼈다.


운이 좋았다.


남의 나라에서

남의 언어로 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것도,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내 삶의 크나큰 행운이었다.


나의 삶은 어떠했는가,

한부모 가정으로 자라오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오고

엄마를 병으로 보내고

집안의 가장이 되고..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던 지난 날들.


그날들을

꿋꿋하게 버텨내고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기까지…


삶은 수많은 불행으로 이어지지만

그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행복

간간이 찾아온다는 그 말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그날은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손이 빨라져서

서포트하는 역할도 척척 해냈다.


매장에 비치된

빈 냅킨 통을 채우고 있는데

누군가 내 뒤에서 물었다.


 ‘이사벨은 어딨지?’


뒤돌아봤다.

츄리닝을 입고 5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흑인이 내 뒤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내 오감이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 시럽 종류가 굉장히 많아서시럽의 위치와 종류를 다 파악하는 것도 오래걸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