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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22. 2018

누구의 잘못도 아닌(2)

가게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 한산함이 가게의 내력은 아니라는 양, 주인은 '방금 가게문을 열었는데, 금방 준비해 드릴게.' 했다. 기본 상차림이 순서대로 차려졌다. 아버지는 고추 하나를 집어 된장에 푹 찍었다. 곧 아버지의 입에서 청량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리는 얼마간 상투적이고 지루한 대화를 이어갔다. 개강 준비는 잘 되어가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진로나 취업 문제와 같은 지극히 표준적인 질문이 계속됐다. 주방 바깥으론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천장과 가깝게 걸려있는 티브이에서 스포츠 중계가 한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분이 초벌 된 꼼장어를 내왔다. 그러곤 몇 점을 불판 위에 가져간 뒤, 음식에 관한 설명과 먹는 순서, 방법들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물론 '맛있으니, 잡숴보라'는 말도 빼놓지 않고서였다. 아버지는 잠시 동안 말없이 꼼장어를 집어 굽기 시작했다. 식욕을 돋우는 음식 냄새가 금세 진동했다. 꼼장어는 노릇하게 구워지며 바짝 쪼그라들었다. 아버지는 충분히 익은 꼼장어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먹어라, 맛있다."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버지의 눈을 슬며시 쳐다봤다. 아버지는 묵중한 표정으로 꼼장어를 하나 둘 뒤집고 있었다. 침묵이 길고 길어져 슬슬 불편해질 즈음, 어디선가 경박한 웃음과 함께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분이 카운터에 앉아 고스톱을 치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아버지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긴 정적이 주는 초조에 못 이겨 자꾸만 음식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이내 무엇이라도 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럼 내일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거야?"


아버지는 그렇다고 했다. 가게 규모가 좁아, 준비할 게 그리 많지 않다고. 몇 가지 용품을 구매하고, 상품을 주문하면 끝이라고. 처리할 서류며, 등록해야 할 것들도 사전에 준비해 놓은 상태라고.


"그런데.."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당분간 네 자취방에서 신세 좀 져야겠다."

"갑자기 왜?"

"그 가게,  네가 다니는 학교 근처에 있어."


 아버지가 그토록 뜸을 들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불길한 심정으로 아버지의 말을 마저 경청했다.


"그리고, 몇 달간만 가게에 좀 나와줬으면 좋겠다. 가게에 젊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보기 안 좋잖아."


나는 순간, 따지듯 다급하게 물었다.


"아르바이트 생 구하면 안 돼? 나도 이제 곧 졸업인데.."


아버지는 먹기를 멈춘 내 손이 무안하게 꼼장어를 한 점 올려줬다. 카운터에선 '아싸!'하는 경쾌한 장단이 연이어 들렸고, 티브이에선 경기 중계가 끝난 후 주요 장면들을 보여주며 해설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래도, 그래도.'하고 소극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끝내 '부탁이나 양해'가 아닌 묘하게 강요하려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가족인데, 먼저 돌보고 챙겨야 하는 것 아니겠냐. 일도 좀 거들고 알려주고.."


나는 그 말에 왠지 무척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런 게 어딨어. 아니...."


아버지가 말했다.


"도와줘라, 사정이 힘들잖니."


나는 그 말에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힘들다는 것, 하여 조금 이해를 해줬으면 한다는 양해가 마치 부당한 대우처럼 여겨졌다.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라 할 지라도, 그래서 생계에 관한 감각을 공유한다 해도 말이다. 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 이전,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부재한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불행이 부당한 의무 같았고, 마땅한 권리를 침해받는 기분이었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내가 느끼는 불편에 어떤 정당함을 부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결국 아버지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부분까진, 어떻게든 도와보겠다.'고 대답했다. 외면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불편이라면 차라리 헌신적인 희생으로라도 비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와 비좁은 자취방에서 한 집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조금 느닷없고, 갑작스럽게. 아버지는 가는 길 내내, 겸연쩍은 얼굴로 내 표정을 의식했다. 가벼운 농담을 던지거나, 옛 일을 가져와 뭔갈 상기시키게끔 화제를 던졌다. 그럴 필요 없는데, 아버지는 내게 뭔갈 표하려고 애썼다. 아버지가 처음 집에 들어와 뗀 말이 '집 꼴이 이게 뭐냐.'였던 것도. '청소는 하고 사냐', '밥도 전부 쉬어서 먹지도 못하겠네'하며 나무라고, '물건 좀 쓰면 정리해둬라', '옷은 제때 빨아서 널어놔라.'와 같은 잔소리를 열심히 늘어놓은 이유도 어쩌면 그 탓일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내게 미안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여태껏 충분히 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게 될 공간이 집이 아닌 차라리 방의 형태를 띠고 있어 더 그런 듯했다. 내가 내 공간을 갖게 될 무렵, 나는 내 공간이 생겨 더불어 생활도 생겨났고, 그 이후 누군가와 방을 공유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한 방을 나눠 쓴다는 건 서로를 일정 부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집은 확실히 좁았다. 한 사람이 간신히 살던 규모였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우리는 공간을 넓히기 위해, 뭔갈 버리거나 배치를 바꿔야 했다. 과감하게 공간을 내고, 엄격한 기준으로 자리를 도로 메웠다. 장롱 대신 행거를 매달고, 매트리스 대신 바닥에 요를 깔았다. 일일이 쓸모를 따져 본 후, 거기서 다시 한번 필요를 판단한 결과였다. 서랍이 구비된 책장도 다리만 있는 상으로 교체했다. 수납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것보다 차라리 쌓아두는 편이 공간 소모가 덜 했다. 아버지와 나는, 속이 텅 빈 책상 안쪽으로 고개를 뻗어 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시야가 책상의 턱에 걸려 반듯하게 잘려 나갔다. 그 외에도 우리는 몇 가지 가구를 더 내버리고 대체했다. 때문에 공간은 집도, 방도 아닌 다른 무엇으로 점차 변해가고 있었다. 벽처럼 쌓아 올린 온갖 서적들이며 번잡스럽게 걸려있는 옷가지들이 집 자체를 두서없이 만들었다. 집이라면 의당 느껴야 할, 정착의 느낌이 들지 않았다. 쓰임을 몰라 임의대로 오용하는 것처럼, 공간을 낭비하는 기분이었다. 하여, 그날 밤. 아주 크고 두터운 손으로 쓸어내리기라도 하듯, 눈이 반쯤 감긴 채 잠자리에 들며 이런 생각을 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가게에 들러, 물품을 정리하고 확인했다. 내부는 천장과 바닥을 따로 마감하지 않아, 시멘트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따로 마감을 하지 않았다기보다 그렇게 보이게끔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쪽에 가까웠다. 심지어, 수도관이며 전기 배선들도 노골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날 것의 느낌이 두드러지도록 방치해둔 모양이었다. 정면 전체를 거진 다 덮을 정도로 지나치게 넓은 통 유리도, 과하게 소모적인 방식으로 배치된 테이블도 그런 감상에 한몫했다. 아버지는 이 모든 인테리어를 훑더니 '뭐 이렇게 황량하냐, 짓다만 건물 같다.'며, 짧게 불평을 꺼냈다. '이래선 사람이 오다가 도로 가겠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요즘 유행'이라고, '언뜻 보면 공간 낭비 같지만, 이것도 하나의 활용이라'며 안심시켰다. 누군가의 시절이 낡아, 그런 걱정은 이제 걱정이 될 수 없다는 투로. 아버지가 경유해온 지난 한 때를 위로하듯이, 하여 다행이라는 듯이 그랬다.


 우선 시범적으로 가게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비정기적으로, 수정과 보완을 반복하면서. 넉넉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 주가량의 시간은 있으니 다행이었다. 우리는 귀중한 손님을 맞이 할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구비했다. 조명이 주는 피로를 의식해 밝기를 조절하거나, 무게를 고려해 잔을 선택하는가 하면, 손님의 동선을 따져보고, 그 동선 안에 들어갈 누군가의 시선을 계산해 장식물을 배치했다. 커튼의 색은 물론, 일일이 만져본 후 촉감까지 가려내 골랐다. 가게가 가게이니만큼, 뭐든 허투루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 개시하기 전까지 이런 일들로 시간을 보내는데, 이틀이 걸렸다. 우리는 가게의 꼴이랄까. 제법 가게다운 태가 드러나자 늦은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식기의 물기를 닦고, 좋은 향을 피우고, 바닥을 쓸었다. 커튼을 젖혀, 우리가 곧 개시를 할 거라는 티를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몇몇 행인들이 멈춰 가게 안을 흘겨보면, 답례로 가벼운 목례와 함께 푸근한 인상을 지어 보였다. 지나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재즈도 틀었다. 간판에 불을 밝힌 후, 'Close'라 적혀있던 합판을 'Open'으로 뒤집어 놓았다. 문을 열어젖혔다.


처음 밖에서 갸웃거리며 관심을 보이던 행인들 중, 끝내 들어오는 사람은 몇 없었다. 혹여, 들어온다 치더라도 '뭐하는 곳이냐.'정도만 묻고는 도로 발을 돌렸다. 아버지는 가끔 밖을 나가 주변 정황을 살피고는, 불안한 표정을 비추며 돌아왔다. 나는 그 낌새를 눈치채곤,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고. 오히려 '처음'이라 쉽게 지나치고,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크게 낙담하지 말라는 식으로 격려했다. 밖으론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행렬이 계속 이어졌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유사한 분위기에 동조된 채, 작위적인 활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떤 여유를 내보이려 애썼다. 가게의 한적함이, 혹여 지나치게 한가해 보일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적당한 미소를 짓거나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고, 과하게 반색하는 표정을 지으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지 몰라서였다. 마침내 첫 손님이 가게에 들어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우선, 손님에게 생수와 잔을 내려놓았다. 인사 대신 '개업하고 첫 손님'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짧게 "아, 예.' 대답한 후, 소박한 축하를 보내왔다. 아버지는 주방에서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다 서비스로 감자튀김을 좀 주겠다며 소리쳤다. 한 테이블이라도 사람이 차 있으니, 옷을 입힌 양 가게에 맵시가 났다. 나는 종종 카운터에서 테이블 쪽을 힐끗 쳐다봤다. 수고스럽게 마련한 자리에서. 배려가 담긴 계산과 그 범위 내에서, 우리가 예상한 모습으로 음식을 드는 게 내심 뿌듯했던 탓이었다. 이어서 몇 차례 손님이 더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창으로 가게의 동향을 살핀 후, 이내 안심한 얼굴로 들어섰다. 누군가 터놓은 길을 따라가듯 하나 둘 자리를 메웠다. 내가 자리를 안내하고 음식을 내어갈 동안, 아버지는 큰 소리로 손님을 맞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돌려보냈다. 우리는 서로 맡은 배역에 충실했다. 가끔씩 호흡이 어긋나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분할 계산을 한다던가, '페이'라고 불리는 핸드폰에 내재된 카드를 받을 시 조금 지체된 것 빼고는 대체적으로 모든 게 순조로왔다. 아버지는 그 순탄함에 기대어 더욱 과감하게 말을 붙이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손님들의 반응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때로는 유머 감각이 너무 낡아, 그 진부함에 방심해 실소를 터뜨기도 하니까. 그리고 요즘은 그런 게 또 유행이라 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훨씬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늦은 시각까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뭘 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안고 거리를 연신 쏘다녔다. 어쩌면 밤이 깊어, 그 컴컴함에 시간 감각마저 상실해 버린 걸지도 몰랐다. 슬슬 마감 준비를 하는 가게도 한 두 곳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에, 아직까지도 바쁘게 손님이 드는, 한창인 가게들도 여럿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게마다 손님의 빈부가 갈렸고, 그 편차는 심해졌다. 우리 가게는 전자에 속했다. 손님이 하나 둘, 서서히 빠지더니 이제는 한 테이블도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손님을 좀 더 기다려보자 제안했다. 하나, 삼십 분을 기다려도 손님은 통 들어오지 않았다. 기웃거리던 행인들조차 없었다. 우리는 부득이하게, 이른 마감 준비를 해야 했다. 바닥을 쓸고, 그릇을 씻으며, 정산을 했다. 처음 가게가 좀 한산했던 것 뺴고는 크게 여유로웠던 적도 없었는데, 생각 외로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만약 이대로 한 달을 버틴다 가정하면, 정말 남는 게 없는 장사였다. 아버지는 한동안 모니터에 쓰인 금액을 심각한 눈으로 쳐다봤다. 머릿속에서 뭔갈 가정하고 예측하며, 어떤 결정을 내리려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된다."


 나는, 분명 이대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할 수 있는 건 또 무엇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가게를 더 일찍 열고 늦게 닫아야겠다."


 그 방법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았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 의외에 다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 가장 만만한 방법이기도 했다. 기름을 정제한 후, 테이블의 배치를 정돈했다. 마지막으로 커튼을 치고, 조명도 전부 소등했다. 'Open'이라 쓰여있던 합판도 도로 돌려놓았다. 가게에는 채 가시지 않은 사람 열기와 음식 냄새로 사람 기척과 비슷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내가 무엇을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문을 닫는데, 나는 꼭 다른 누군가와 작별하는 사람처럼 가게 안을 수시로 들여다봤다. 눈에 집히는 거라곤, 주방 구석에서 덩그러니 허연 빛을 쏟아내고 있는 냉장고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게 배고프지 않냐며, 뭣 좀 먹고 들어가지 않겠냐 물어왔다. 오늘 하루 분의 노고를 기념하고, 위로하듯이 그랬다. 나는 생각이 없으니, 괜찮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게 음식을 먹이고 싶은 욕구가 든 모양이었다. '배고프면 잠도 안 온다', '저번에 그 꼼장어는 어떻더냐, 또 먹고 싶진 않느냐.', '아니면 라면이라도 하나 사서 들어갈까.' 하고 계속해서 뭔갈 먹게끔 부추겼다. 그러다 나는 배고프지 않다며 거절해도 될 것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딱 잘라 말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정말 사실이었지만, 내 수고와 불편이 어떠한 보상에도 훼손되지 않은 채, 그렇게 눈에 좀 더 띄었으면 하는 바람도 얼마간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걸 알아차려주고, 난처해하길 바랬다. 그래야 내가 아버지를 쉽게 '탓'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시간은 시간의 형식을 빌려 부족함 없이 자신을 소진했다. 정말이지, 시간은 스스로를 묵묵히 소화해, 하나 둘 차례로 흘려보냈다. 시간은 낭비가 없고, 무심했고, 어김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묵함이 내게 변호나 증언을 요구하는 것 같아 종종 불안에 휩싸였다. 어쩌면, 시간이 그리 위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바로 그 과묵함 때일지도 몰랐다. 뭔갈 행하지도, 말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언제나 나보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 앞에선 섣불리 아는 체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동조하거나 동요 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손님은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가게는 여전히 여유가 없었으나, 달리 형편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뭘 해야 할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는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부지런히 가게를 나섰다. 일찍부터 가게 앞을 빗질하고, 내부를 정돈했다. 한동안 아버지에게 그런 시간, 그런 하루가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선 이게 도대체 무언가 싶은 까마득한 얼굴로 종일 천장만 바라봤다.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나는 아버지가 이대로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다지 복기할 것 없는 과거를 더듬어 보려는 것 같았다. 실패의 목전에서 자신의 선택을 유보하고 다시금 신중해져 보는, 그런. 아, 이 부분인가. 아니, 혹시 어쩌면. 아버지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늘 그 자리에 누워 같은 상상을 반복했다. 상상은 자주 해 버릇한 탓에 결과는 늘 빤할 테지만. 결국 아버지는 아버지라 선택지야 별 다를 것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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