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없다면 찾아가지 않을 법한 어느 마을 외곽에 들러 한참을 걸었다. 서먹한 분위기가 미지근해 질 때까지 말을 붙이듯, 골목을 오가며 더듬더듬 지리를 익혔다. 굳이 긴 시간을 들여 이곳에 온 까닭은 뵙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였으나,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부러 이르게 도착해선 자발적으로 길을 잃는 건 순전히 타지가 주는 낯선 인상을 즐기기 위해서다. 잠시 머물다가는 이방인으로, 다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된 기분으로 어슬렁거리다 보면, 그간 무뎌졌던 일상의 감각들이 다시금 예민해진다. 비좁았던 삶의 반경이 넓어진 듯한 착각도 든다.
익숙지 않은 타지에서, 나는 쉽게 충동적인 상태로 변하곤 한다. 마음의 기울기는 좀처럼 수평을 찾지 못하고 매번 한쪽으로 기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조금은 과감해진다. 평소 잘 먹지 않던 음식을 앞에서 망설임 없이 한 끼를 때운다거나, 면식 없는 인근 주민에게 살갑게 말을 붙여보기도 하는 식이다. 언제든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기분으로 떠돌다가도, 돌연 생각을 바꿔 며칠을 묵어도 좋겠다고 마음먹는다.
결국, 먼 타지에서 내가 깨닫게 되는 건 삶은 수렴의 과정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조금은 무모하더라도 한 번쯤 기지개를 켜듯 삶의 선택지를 늘려보아도 좋다는 것이다. 보통 때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겪고 난 후, 도리어 삶이 더욱 견고해지기도 한다. 까닭에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공간으로 향한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삶의 가짓수를 넓히는 일이며, 어쩌면 이 인분의 삶을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지껏 인생이란 하나의 목적지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여겨왔건만, 실은 임의의 장소로 끊임없이 불시착하고야 마는 것이 인생의 본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한 번쯤 제 삶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멀리, 익숙지 않는 장소를 부러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조금은 부족하고, 약간은 무모한 모순된 상태로. 무엇보다 첫 인상이 낯선 곳이라야 좋고, 인근에 적당히 밥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식당 두어 곳 즈음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사연이 없다면 찾아가지 않을 법한 곳에서, 사연 하나쯤 만들어 되돌아와서는 그날의 흔적들을 떠올리다 무심코 짐을 꾸려보는 것도 괜찮고. 그렇게 당신이 비로소 당신이 되는 자기만의 방을 서너 곳 짓고선, 어떠한 자극에도 삶이 미동조차 없을 때 들르면 되겠다. 긴 외로움이 지나간 뒤에도, 막연한 불안감에 사무치게 시달린 후에도, 이제 눈물이 마른 뒤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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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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