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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Dec 14. 2021

몸의 기억



나는 차츰 늙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자랄 만큼 다 자라, 더 크지 않는다. 충분한 양의 치아가 잇몸에서 자라고, 젖살이 빠지고, 골격이 잡혀 단단해졌다. 삶의 습관이 굳어 자세로 드러나고, 머리숱이 줄고, 어깨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몸이 많이 야위었다. 운동하고 난 뒤, 체내의 수분이 빠진 몸처럼 피부 결이 푸석하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진행되어 온 탓에 그 과정을 알 수 없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루도 빠짐없이 늙어간다. 시간이 관여하는 일은 대체로 슬프고, 몸도 예외는 아니다. 가끔 영영 젊어질 수 없다는 말은, 마치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처럼 들린다.


 그렇게 젊음이 바삐 지나가느라 비행운처럼 남긴 몸의 흔적을 더듬는다. 늙음은 꼭 시간이 몸에 입힌 찰과상 같다. 지금 여기의 1인칭으로 사는 우리로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월의 자국을 3인칭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견한다. 지난해, 나는 너무 불안했고, 그래서 여분의 삶을 사는 사람처럼 잠을 자지 못했고, 몸 구석구석엔 붉은 반점이 열꽃처럼 피고는 했다. 입도 자주 헐었다. 그 통증 탓에, 나는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즈음, 사진에서 내가 늘 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이유였다. 누군가는 그 사진을 보곤 웃었지만, 당시 내 애인은 웃지 않았다.


 내가 한 시절을 몸으로 앓으며 지나왔을 때, 문득 그때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몸을 봐왔겠구나 싶어진다.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 내 몸을 더 오랜 시간 봐 왔을지도 모를 일. 돌이켜 보면, 내 손에 핀 작은 점과 균형이 맞지 않는 어깨를, 살갗에 배긴 굳은살과 내 몸의 터무니없는 연약함을 먼저 알아차린 건 늘 당신이었다. 평생을, 단 하나의 시점으로 사는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고, 그래서 이따금 내 맨몸이 녹음된 목소리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몸에 관한 서로의 추억이 많을수록 애틋한 관계일 거라고 믿는다. 제 몸의 사연을 주저 없이 고백할 수 있는 사이라면 더더욱. 몸에 새겨진 흔적은 대체로 깊게 앓았거나 아팠던 자국일 테고, 그 사정을 털어놓는 건 곧 삶의 한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당신의 등에, 오른발 뒤꿈치에 난 상처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웃으며 미간을 좁히는 버릇이 있고, 나는 당신이 울기 전 짓는 표정의 낌새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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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mail : sks9396@naver.com

Instagram : @eumm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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