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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un 26. 2024

돌아갈 집이 있기에 우리는 방황할 수 있다.

사랑이 기다리는 곳으로의 귀환

“얼음! 땡!”

술래가 소리치며 거실을 가로질러 뛰어다니고, 다른 아이들은 혼비백산 정신없이 달아난다. 역시 ‘걷는 얼음 땡 놀이’란 있을 수 없다. 고만고만한 여자아이들이 서장훈이라도 된 것처럼 커 보인다. 

“얘들아, 제발 뛰지 말고 목소리도 좀 낮춰서 놀자.”

간곡한 내 부탁은 순식간에 허공에 흩어진다. 시켜놓은 피자와 치킨은 이미 잊힌지 오래다. 아이들은 마치 분신술이라도 하는 듯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한 번만 더 뛰면 이제 집에 간다!”

마지막 경고도 효과가 없다. 집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며 발산하는 에너지를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누굴 탓하겠는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딸아이의 말에, 또 마음 약해진 내 탓이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얘들아, 인생 네 컷 찍으러 가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우르르 신발을 신기 시작한다. ‘인생 네 컷’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준 마법의 열쇠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주인공 맥스가 집에서 장난을 치다가 엄마에게 혼나 방에 갇히면서 시작된다. 맥스는 "괴물 딱지 같은 녀석!"이라는 엄마의 말에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응수한다. 결국 저녁밥도 못 먹고 방에 갇힌 맥스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방 안의 나무와 풀이 자라나 천장까지 뻗어 방이 세상 전체가 되자, 맥스는 배를 타고 넓은 바다를 건너 괴물 나라에 도착한다. 괴물들을 만나 "조용히 해!"라고 호통을 치고 마법을 써서 괴물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든 맥스는 괴물들의 왕이 된다. 괴물 나라에서 맥스는 괴물들과 신나게 소동을 벌이며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 순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멀리서 맛있는 저녁밥 냄새가 나자 맥스는 괴물 나라 왕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온 맥스의 방에는 엄마가 차려둔 따뜻한 저녁이 기다리고 있다. 




표지에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턱을 괴고 앉아 잠든 괴물이 있다. 괴물은 미소를 머금은 채 평온한 표정이다. 머리에는 두 개의 뾰족한 뿔이 달려 있고, 손톱은 날카롭게 뻗어 있으며, 온몸은 복슬복슬한 털로 덮여 있다. 

“엄마, 아무래도 괴물이 사람인 것 같아! 발이 사람 발이야!”

딸아이의 말대로 괴물의 두 발은 뽀얀 살색의 사람의 발이다. 심지어 발톱은 예쁘게 잘 다듬어져 있다. 괴물인지 사람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이 묘한 존재는 딸아이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맥스는 집에서 포크를 들고 고양이를 쫓아다니고, 벽에 망치질을 하는 등 장난을 친다. 이때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그의 자유로운 성격과 속박 받지 않는 본성을 나타낸다. 동시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늑대 옷은 맥스의 성격, 감정, 상상력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맥스의 짓궂은 장난에 엄마는 "괴물 딱지 같은 녀석!"이라는 말로 야단친다. 그녀가 맥스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컸다. 그녀는 맥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에 대한 당혹감과 불안, 그리고 규칙을 벗어난 과격한 행동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표현한 것이다. ‘괴물 딱지’라는 말은 순간적인 감정의 표현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깊은 사랑과 관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 맥스는 분노와 상처로 가득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자신이 엄마에게 괴물로 여겨진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행동에 자책하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는 과격한 발언은 협박이 아니라,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와 혼란스러운 마음에 대한 반응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화가 나거나 실망했을 때, 그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비난이나 공격적인 말로 표현된다. 이는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관계를 악화시킨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전하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익힌다면, 지구상의 절반 이상의 다툼이 사라질 것이다.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나' 전달법을 사용해 비난 대신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처럼 말이다. 이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NVC)와 마음 챙김, 명상을 실천하는 것도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이러한 방법들은 먼저 자신의 마음과 가까워져야, 상대방의 마음에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맥스는 방에 혼자 갇히면서 느끼는 불안과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상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감정이나 욕구를 표출하고 탐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의 상상 속에서는 어떤 규칙도, 어떤 벽도 없었다.


“조용히 해!”

맥스는 그동안 엄마에게 받았던 강압적인 대우에 대한 분노와 무력함을 뱉어냈다. 맥스의 호통은 괴물 나라를 울리며, 괴물들은 그에게 복종한다. 맥스는 노란색 왕관을 머리에 쓰고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권력을 온몸으로 느낀다. 괴물 나라의 왕이 된 맥스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그의 명령에 괴물들은 순순히 따랐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맥스는 상상 속에서 왕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감정적인 해방을 경험한다.      


상상은 우리에게 쉼과 치유를 준다. 삶의 속도에 지칠 때, 우리는 맥스처럼 마음을 열고 상상력의 문을 열어 새로운 세계로 떠나기도 한다. 독서는 나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는 가장 강력한 상상의 세계이다. 영화를 감상하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 활동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고민들을 잊는 사람들도 많다. 명상으로 묶여 있던 마음을 해방시키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상상 활동은 우리에게 내면의 평화와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엄마, 맥스가 괴물들이랑 노는 동안에 달이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바뀌었어.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 엄마 아빠 울고불고 난리 났겠는데?”

맥스가 방에 갇혔을 때 창문 밖에 떠 있는 달의 변화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는 맥스의 성장과 감정적인 여정을 달의 변화를 통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 맥스가 엄마에게 혼나고 방에 갇혔을 때, 창문 밖에는 희미한 달이 떠 있다. 이는 맥스가 혼란과 억압으로 가득 찬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맥스의 방에서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달이 더욱 뚜렷해지고 초승달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는 맥스의 상상 속에서 그의 자아가 서서히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괴물 나라에서 괴물들의 왕이 되는 장면에서는 더욱 선명한 초승달이 되는데, 이는 맥스가 상상의 세계에서 자신을 완전히 자유롭게 발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괴물들과 함께 소동을 벌이며 노는 장면에서는 달이 커다란 보름달로 빛난다. 이는 맥스가 상상의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음을 드러낸다. 맥스가 상상의 모험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달은 선명한 보름달이다. 이는 맥스가 상상의 모험을 통해 억눌렸던 감정을 해소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처럼 보름달은 완성과 성취, 그리고 최고조에 이르는 감정을 상징하고 있다. 작가는 달의 변화를 통해 맥스의 정서적, 감정적 성장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상상의 세계에서의 맥스와 괴물들을 점차적으로 크게 그리고 있다. 이는 맥스의 자아와 자유로움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괴물들과의 소동 장면은 책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맥스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느끼는 해방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상상의 세계에서 맥스가 자유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맥스는 괴물 나라에서 왕이 되었고, 모두가 그의 명령을 따르며 모든 것을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권위와 힘을 맘껏 발휘하며 자유와 행복을 느꼈지만, 이내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없다는 사실에 공허함을 느낀다. 괴물들과의 소동이 주는 즐거움은 잠시였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진정한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온전해진다.     


맥스가 괴물 나라에서의 모험을 통해 분노와 불안감을 해소했기 때문에, 다시 엄마의 사랑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맥스처럼 우리도 소중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방황은 피할 수 없다. 직업을 선택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기 위해 여러 직장을 전전하거나, 진정한 친구나 동반자를 찾기 위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헤매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알기 위해 여러 경험을 쌓고,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여러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기도 한다.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방황은 가끔 힘들고 의심스러울 수 있지만, 결국은 우리가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디뎌야 하는 필수적 걸음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라는 문장으로 그림책은 끝이 난다. 맥스가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사랑과 용서를 받으며 안정된 환경 속에서 다시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짧은 문장을 두 페이지에 걸쳐 공간을 할애하며,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이는 기다려주는 사랑, 용서, 그리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를 떠오르게 한다.     




“나도 엄마가 해주는 밥이 괴물 나라 왕보다 훨씬 좋아.”

세상에서 라면이 제일 맛있다는 딸아이가 심심한 내 밥상을 좋아할 리 없다. 그녀의 말에는 엄마의 요리를 그리워하는 우리네 마음이 담겨 있다.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엄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밥이 고픈 게 아니라, 사랑이 고프기 때문이다. 엄마의 손맛을 통해 어린 시절 느꼈던 따뜻하고 특별했던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괴물 나라에서 맥스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사랑을 누리지는 못했다. 엄마의 따뜻한 저녁밥은 그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엄마의 사랑은 맥스가 상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랑은 모험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안전한 토대이다. 


상상의 세계든 현실의 세계든, 아무리 멀고 긴 모험을 떠나더라도, 결국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언제나 따뜻한 환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용기 내어 모험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떠나기 전의 설렘과 모험의 흥분보다,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올 때의 안정과 안락함이 더 특별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랑아, 언제까지라도 두 팔 벌려 너의 돌아올 곳이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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