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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Sep 20. 2024

지금, 여기서 나의 ‘오늘’을 음미할 것

소중한 '오늘'을 나누는 가게

벌써 마지막 만남이라니, 매주 같은 그림책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뭔가 묘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더욱 기억에 남을 만남을 위해, 각자의 마니토에게 그림책을 추천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내 마니토는 매일 감사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그녀는 익숙하고 평범한 하루를 당연하지 않게 여기며, 항상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간다. 그녀를 생각하며 떠오른 그림책이 있다.




『오늘 상회』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다. 한 할머니가 소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 상점을 이용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는 '오늘'을 더 달라고 고집을 부리고, 소녀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서 '오늘'을 빨리 마셔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한 남자와 함께 모든 시간을 공유하기로 약속하고,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하루를 아끼며 보내기도 한다.


어느 날, 할머니는 '오늘 상회'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벤치에 앉는다. 늘 함께하던 할아버지가 먼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슬픔에 잠긴 그녀는 시원한 바람,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길고양이의 울음소리, 나비의 날개짓, 아이의 인사, 오랜 친구의 연락과 같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인해 다시 '오늘 상회'로 향하게 된다. 그녀는 바람을 느끼고, 오늘 피어난 꽃과 풀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오늘을 느낀다. 




앞표지에는 동이 트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새벽녘, 나무들이 우거진 산속에 자리 잡은 '오늘 상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붕 위에 굴뚝이 솟아 있는 2층짜리 단아한 건물이다. 이 상점은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내어주는 특별한 곳이다. 건물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따뜻하고 환하게 주변을 비춘다. 출입문은 열려 있고 그 앞에는 짐을 실은 트럭이 한 대 서 있다. 제목 '오늘 상회'는 노란 불빛을 배경으로 오른쪽 위에 두 줄로 쓰여 있어, 마치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뒤표지에는 해가 떠오르기 전 붉게 물든 하늘과 아직 어둠이 깔린 숲이 묘사되어 있다. 앞뒤 표지를 펼쳐서 보면,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속 오른쪽 모퉁이에 ‘오늘 상회’가 자리 잡고 있고, 하늘에는 해가 곧 떠오를 듯한 붉은 기운이 서려 있다. 이른 새벽의 고요함과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늘 상회'는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사람들을 맞이한다. 주인은 손님들이 오기 전에 미리 병을 반짝반짝 닦고, 병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은 없는 이름도 있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름도 있다. ‘오늘 상회’에 진열된 작은 병들은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고, 그 안에 담긴 액체도 제각각이다. 이 병들은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을 상징하며, 각 병의 고유한 형태와 색상은 각자의 다양한 인생 여정과 경험을 담고 있다. 


“각 병이 각 사람의 ‘오늘’이래. 사랑이는 어떤 병일 것 같아?”

“하나만 선택해야 해? 여러 개는 안 돼?”

딸아이의 질문처럼 여러 ‘오늘’을 선택하고 싶지만, 주인이 병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병만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는 다른 사람의 ‘오늘’을 대신 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하루는 그만큼 고유하고 특별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시간과 경험으로 채워져 있으며,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의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 담긴 작은 순간들을 깊이 음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꼭 자기 것만 마셔야 해? 나는 다른 맛도 궁금해. 나눠 먹으면 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잖아."

딸아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의 오늘을 맛 볼 수 없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오늘을 대신 마실 수는 없지만, 그들의 감정과 경험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는 있어."

각자의 삶과 경험은 매우 개인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겪는 감정이나 사건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공감과 이해를 통해 서로의 삶의 자리에 잠시 앉아 볼 수는 있다. 다른 사람의 오늘을 대신할 순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서로의 삶의 공간에 함께 들어가 볼 수 있다.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비록 직접적으로 서로의 하루를 살지는 않더라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손님들이 하나둘씩 '오늘 상회'에 찾아온다. 바쁜 회사원과 학생, 손톱 밑이 새까만 노인, 진한 향수를 뿌린 아저씨, 그리고 어린 소년과 손녀, 심지어 강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오늘'을 하나의 병에 담아 받는다. 이 장면은 그저 당연하게 여겼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매 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이 장면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할머니가 가장 눈에 띈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찾아왔다. 그녀는 어릴 때는 오늘을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주인은 떼쓰는 꼬마에게 "오늘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가지만 소중하게 보내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답니다." 라는 말로 달래주었다. 


나 또한 어릴 적에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늘 하고 싶은 일을 다 못 해서 아쉬웠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갔는데,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시간은 왜 그렇게도 빨리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해야 할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발걸음에는 항상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평일의 시간은 사막을 건너는 듯 천천히 흘러가는 반면, 주말은 보트라도 탄 듯 빠르게 지나간다. 계획했던 일들을 반도 못 했는데 갑자기 일요일 저녁이 되어있다. 


할머니의 소녀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와서 '오늘'을 얼른 마셔 버리기도 했다. 기대와 설렘 속에서 빨리 만나고 싶은 오늘이 있기도 하지만, 슬픔과 고통을 잊기 위해 빠르게 지나가길 바라는 오늘도 있다. 그렇게 오늘은 금방 어제가 됐고 소중하게 보내지 않은 오늘은 금방 잊히기도 했다.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 상태와 경험에 따라 얼마나 상대적이고 유동적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루 24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각자의 삶과 상황에 따라 그 경험과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고요한 새벽 시간에 한 잔의 커피는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을 주지만, 출근 후 바쁜 업무 속에서는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불편한 만남은 더디게 흘러간다. 결국 삶의 만족을 찾는 것은 각자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소녀는 어느덧 소녀티를 벗고 한 남자의 손을 잡고 '오늘 상회'를 찾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앞으로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오늘을 천천히 아껴 마셨다. '오늘을 천천히 아껴 마신다'라는 것은 단순한 시간적 의미를 넘어서, 그 속에 담긴 감정과 느낌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속 깊이 새기는 것을 뜻한다.


몇 년 후,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와 아빠가 된 그들은 정신없이 각자의 오늘을 마셔야 했다. 아기의 눈을 바라보며 오늘을 천천히 느끼고 싶었지만, 현실은 늘 고되고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충분히 행복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오늘이 지나갔다. 부모가 되어가는 감정과 아이를 향한 사랑을 경험하며, 바쁘지만 행복한 오늘을 보냈다. 아이가 처음 울음을 터뜨린 순간, 밤을 지새우며 아기를 달래던 시간, 첫 걸음마를 떼는 순간, 아이의 미소와 장난스러운 눈빛, 작은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따스함, 그리고 아이가 첫 단어를 내뱉는 순간,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그들은 '오늘'이라는 병을 천천히 아끼며 마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사랑과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을 천천히 아껴 마시는 것은 단지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사랑이는 언제 오늘을 천천히 아끼며 마시고 싶어?”

“당연히 가족 여행 갈 때지.”

예상했던 대답이다. 바쁜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하는 해변 산책, 낯선 장소를 탐험하며 현지 음식을 즐기고 색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순간들은 오늘을 천천히 아껴 마시고 싶은 순간이다. 

“엄마는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사랑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해.”




그러던 어느 날, 늘 함께하던 사람의 오늘이 사라졌다. 할머니는 '오늘 상회'에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벤치에 앉았다. 모든 시간을 함께하기로 했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나셨고, 할머니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백발이 된 소녀는 이제 할머니가 되어, 손에는 시든 하얀 꽃을 들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슬퍼 보였다. 할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꽃들, 함께 걸었던 산책길, 함께 읽고 나눈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조용하고도 단단했던 그의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옆에 없다. 그리움과 애틋함에 그녀는 가슴으로 울고 있다. 새로운 오늘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묻혀져 있다.     


나 또한 깊은 슬픔에 '오늘'을 선물 받지 않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삶의 빛과 같았던 엄마의갑작스러운 죽음은 내게 큰 상실감과 외로움을 안겨주었고, 그로 인해 현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엄마가 떠난 후의 공허함과 그로 인한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나는 '오늘'을 선물로 받기보다는 그 슬픔의 동굴에 갇혀있기를 선택했었다.




그때, 바람이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간질이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시원한 소리를 냈다. 따사로운 햇살이 등을 어루만지고, 길고양이는 어제보다 더 크게 울고, 달아나던 나비는 할머니의 손에 가만히 앉았다. 어제까지 수줍어하던 아이는 용기 내어 인사하고,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는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내어 나비를 따라 '오늘 상회'를 찾아갔다.

“여전히 소중한 오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주인은 여전히 할머니에게 오늘을 내밀었다.


할머니를 다시 오늘 상회에 갈 수 있게 한 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행복이었다. 작은 일상의 기쁨이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고,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바람이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간질이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시원한 소리를 내는 것을 통해 할머니는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안정감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따사로운 햇살은 삶의 희망을 안겨주었고, 길고양이의 울음소리와 날아가던 나비가 멈춰 앉는 것은 예기치 못한 삶의 기쁨과 희망을 느끼게 했다. 어제까지 수줍어하던 아이가 용기를 내어 인사하고, 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는 것을 통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을 열어가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주 놓치기 쉬운 작은 행복에 있는 것 같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웃는 시간, 자연 속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휴식, 가족과 소중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 마음을 감동시키는 책이나 음악, 그리고 새로운 경험과 맛있는 식사를 즐기는 경험 모두가 우리를 기쁨으로 채워 준다. 일상이 주는 평온과 안정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며, 오늘 피어난 꽃과 풀의 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할머니의 오늘은 어제의 오늘과는 다르다. 작가는 이 변화를 마지막 페이지에서 분홍색 꽃 한 송이가 꽂힌 병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이제 그녀는 어제보다 더 따뜻해진 햇살을 마주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상실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일상의 작은 선물들에게 감사하며 매 순간을 기쁨으로 채운다. 그녀의 하루는 각기 다른 소중한 순간들로 가득해지고,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삶에 의미가 된다. 일상 속에서 잊어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는 것을 통해,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충실히 살아가는 법을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엄마, 유리병이 아니라, 잘 깨어지지 않는 튼튼한 것으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딸아이는 ‘오늘’을 담은 병이 깨어질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녀는 오늘을 더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했다. 그림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오늘의 소중함을 느낀 것 같다. 그녀의 맑고 순수한 마음이 사랑스럽다.

“그러게. 그만큼 오늘을 보다 더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어르신들과 함께한 그림책 강의에서 한 분이 말씀하셨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된다.”

마음은 아팠지만, 맞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삶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나 숨을 쉬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아닌 것들이다.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싶어도 참을 수 없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숨을 더 쉬라고 부탁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오늘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선물이다. 우리는 이 선물에 감사하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주어진 순간을 최대한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참, 여러분은 ‘오늘’이라는 병에 무엇을 담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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