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의 루바토

우울의 고통 속에서도 연주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by 유온의 숲





피아노곡은 빠른 곡을 연주할 때보다
느린 곡을 연주할 때 더 깊은 감정과 통제가 요구된다.


빠른 곡은
테크닉, 속도, 순발력을 요구하는

몸의 근육들이 호흡과 함께 더 많은 운동을 하지만,


느린 곡을 연주할 때는
테크닉뿐 아니라 감정의 통제, 그리고 쉼의 여유를

얼마나 고르고 깊게 연주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천천히 연주되는 음악은
그만큼 음의 잔향이 더 짙고 선명하게 들리게 된다.


검은 강 위에 흰 배 한 척이 고요히 떠다니듯,
모든 감각이 선명하게 깨어나는 것이다.


감정을 통제하고 컨트롤하는 과정은
더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고,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가 공존하면서
그렇게 칸타빌레(노래하듯이)가 완성되어 간다.


타인의 심장 박동에 음악으로 대답하듯,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건네듯,
그렇게 깊은 연주가 이어진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친구인 쇼팽의 음악을 듣고
그의 제자들에게 루바토(rubato)를 이렇게 설명했다.


“루바토(rubato)는 바람에 나무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만 가볍게 흔들리는 것과 같다.”


즉, 뿌리와 기둥인 근본은 그 자리를 지키되,
잎과 가지는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흔들리듯
연주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루바토는 단순히 박자를 훔치는 기술이 아니다.
감정의 흐름이 시간 속에서 잠시 머물거나 흐트러지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람의 운명이 루바토라면,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는 서로를 보완하며 공존해야 한다.
자신의 뿌리를 지키되,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느린 템포의 시간은
미묘하게 어긋나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자유롭지만 더 깊은 내면의 고통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순간들은
유독 내 삶을 느린 음악처럼 잔인할 만큼 선명하게 만든다.


삶이 바쁘게 흐르고,
내 마음 하나 챙길 수 없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오히려 고통의 시간은 깊어진다.


느린 시간은 때로 ‘우울’이라 불리지만,
우울의 감정은 느린 템포의 피아노 곡처럼
사실은 더 선명하게 자신을 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한 음 한 음 천천히 따라오라고
스스로에게 손짓하는 건 아닐까.

삶이 바쁘게 흐르는 동안 놓쳐왔던 나의 색을

느린 템포에서 되찾으라는 손짓 말이다.


마음의 아픔이 길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픔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지키고 있다.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고통조차 품에 안은 채
그 자리에 남아 ‘나’를 기다린다.


아픔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너의 색은 잃지 말라며,

뿌리 깊은 고통까지 다 포용해 줄 것처럼 말이다.


놓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보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멜로디처럼
빠른 템포와 느린 템포는
삶의 리듬 속에 함께 존재한다.


그저 루바토처럼,
바람에 잠시 흔들리는 잎사귀라 생각하고,
오늘도 아파하는 마음에게
너무 원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이 멈춘 듯해도,
그 안에서 루바토는 여전히 흐르고 있고,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연주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루바토(rubato) — 박자를 훔치다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연주자가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감정의 흐름에 따라 시간을 훔치듯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




유온의 숲 열한 번째 이야기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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