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어른의 관하여
넷플릭스에서 조용히 방영되던 다큐멘터리 한 편이 요즘 유행중이라고 합니다. 제목은 <어른 김장하>.
어떤 유명인도 정치인도 아닌 한 사람이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묵묵히 사람들을 도운 이야기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마친 이 가 다름아닌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선생의 삶이 다시 재조명된거죠. 조용히 쌓아온 선행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지금, 저는 그를 통해 '이시대의 어른'이라는 화두를 다시 한번 붙잡고 싶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많은 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조금 특별했죠.
자신의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고, 받는 이의 이름도 기억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나눔이란 베푼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철학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가 운영한 한약방에는, 손님이 돈을 내려놓고 가면 거스름돈이 스스로 줄어드는 자동 시스템이 있었을 정도로, 그는 사람의 양심과 품격을 믿었습니다.
명신고를 세우고 그것을 국가에 기증했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수많은 이들의 학업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는 자서전도, 언론 플레이도 없었죠. 김장하라는 이름이 유명해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갔더니, 나에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고 자신은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장하 장학생 1981-1986)
"제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내가 그런 거를 바란 거는 아니었어"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우리 부모형제가 내 등록금을 내 준 것도 아니고 남이 등록금을 주는데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 데모를 해서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그렇게 말하길래 내가 그랬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길은 둘 다 똑같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중에서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는 철학자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메시지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어령 교수는 "이제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어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지성의 시대를 지나 영성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삶을 꿰뚫는 논리나 언어적 논쟁을 넘어서서 이제는 마음 깊은 곳의 고요한 깨달음으로 나아가야할 시점을 느꼈다고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죽음을 앞둔 이어령 선생이 김지수 기자와 나눈 1년여의 대화를 담은 기록입니다. 이 책 역시 회고록이나 전기적 인터뷰가 아닌 죽음 앞에서도 끝내 삶을 이야기하려 한, 한 철학자의 생의 수업입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한다는 뜻이니까요.”
이 구절은 김장하 선생이 보여준 삶의 태도와도 비슷해서 이 시대의 어른은 말보다도 '존재 자체'로 가르치는 사람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에 '꼰대'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만은. 꼰대는 주로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말합니다. 말이 많고 잔소리가 많고, 비난과 교훈이 넘치는 사람. 어쩌면 나이와 경험이 쌓일 때 누구나 그런 위험에 놓이게 되는데, 그래서 '꼰대'는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묻는 말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문제적 인간으로 꽤나 이름을 드높였던 이어령 교수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질문하고 또 질문했던 사람입니다.
"'문제적 인간’이셨죠."
"그래. 그래서 사는 내내 불편했지. 아이 때도 어른이 되고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말꼬리 잡는다. 얄밉다는 소리만 들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야. 나 좋다는 사람 많지 않아. 모르는 사람은 좋다고들 하지. 나를 아는 사람들, 동료들, 제자들은 나를 다 어려워 했어. 이화여대 강의실에서 강의하면 5~6백 명 좌석이 꽉꽉 차도, 스승의날 카네이션은 다른 교수에게 주더구만. 나한테는 안 가져와. 허허."
갑작스러운 고백에 괜스레 멋쩍어져서 나는 두 손을 비볐다.
"섭섭하셨겠어요."
"섭섭했지. 강의실 인기는 대단했어. 단연코 월등했지. 난 배곯는건 참아도 궁금한건 못참아 했으니까. 그러나 그것과는 달랐어."
"내 강의에 영감을 받고 내 글을 사랑해줬지만, 스승의날 나에게 꽃을 들고 찾아오고 싶다는 친밀감은 못 주었던 모양이야. 그건 뭐랄까"
"항상 지적 대치 상태 같은 긴장을 요구하셨으니까요. 온유하기 보다는 서늘했을 겁니다.“
"그래서 외로웠네.“
외로워 보이지만 다부진 뒷모습을 포착했던 <어른 김장하>의 포스터와 묘하게 겹치는 느낌입니다. 침묵 속에 꽃피는 겸허함이 보인달까요. 저도 이제 40대에 막 들어섰지만 어떤 어른이 되고 있나 잠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사실상 어른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기도 하는데 이 분들을 지켜보자니 너무 높아 갈 수 없는 길 같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한 영웅의 여정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무게를 견뎌온 품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서 묵묵히 책임을 지고 먼저 물러서고 흘려주는 사람이 주변에 꽤 있을테니 말이죠. 그저 남을 판단하거나 잔소리를 덧붙이는 나만의 유희를 위한 말은 접기로 합니다. 그게 첫 단추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혐오와 비난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우리가 다시 품격의 시대를 살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날씨 좋은 4월의 어느날, 우리 각자가 누군가의 어른이 되는 때를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