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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May 10. 2022

D-5. 자기계발서가 지배하는 세상

D.R.I.V.E.

<D.R.I.V.E.>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작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가 인생에서 만난 사막을 다룬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자기계발서의 열풍     


오래된 농담이 있다. 캐딜락을 타고 콘서트를 보러 가던 텍사스 출신 두 명의 청년이 뉴욕의 어퍼 이스트사이드에서 길을 잃었다. 그들은 차를 멈추고 수염을 기른 노인에게 물었다.

“카네기 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인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연습!”

     

그렇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분명코 연습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무작정 연습만 한다고 카네기 홀에 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노인처럼 맹목적으로 최선을 다하면 어느 순간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온라인서점 <예스24>가 집계한 2021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 도서의 분야별 분포도를 살펴보면, 넓은 의미의 자기계발서로 볼 수 있는 ‘경제·경영’ 분야가 총 20권으로 순위 내 가장 많은 도서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투자 열풍으로 서점가에는 이른바 '돈 되는 독서 생활' 바람이 불었다. 2021년 '경제·경영' 분야 도서 판매는 작년 대비 29.0% 증가했으며 그 중 '투자·재테크' 분야의 도서 판매는 작년 대비 무려 49.3%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돈의 본질을 깨닫고 부의 흐름을 탐구하려는 '돈 공부'를 주제로 한 도서는 전년 대비 15.6%의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경제 관련 서적의 인기는 어린이 분야까지로도 확대됐다. <예스24>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어린이 경제학습 도서 신간은 약 50종으로 작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났으며 판매량 역시 8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서점에 가보면 자기계발서와 경영서가 즐비하다. 자기 발전을 위한 지혜, 개인과 기업을 경영하는 노하우, 마음을 다스리는 비법들을 다룬 책들로 빼곡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은 사람이 자기계발서나 재테크와 관련된 책들을 구입하고 한편에서는 역시 많은 출판사가 돈이 되기 때문에 관련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주장하는 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성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서는 돈을 공부해야 하고, 강한 의지력과 자제력 등을 갖추고, 습관을 바꾸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꿈을 크게 꿔라. 작은 실천이 모이면 당신은 꿈에 저절로 다가간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환경을 변화시켜라.’ 와 같은 간결하고도 효과적인 메시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매우 매력 있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성공을 위한 요인이 단지 그것뿐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개인의 절실한 노력만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들이 팔려나간다. 심지어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처럼, 나태하고 무능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우한 환경을 딛고 노래 실력 하나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된 사람에게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성공으로 여기고, 대기업 취직에 목숨을 걸고, 아파트를 사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시대이다. 이런 처세술을 담아낸 책들을 우리는 '자기계발서'라고 부른다. 이런 책들은 주제의 내용과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실제로도 매우 그럴듯한 경험과 이야기들로 교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은 한결같다. 한마디로 환경과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 노력하라는 얘기다. 당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다. 물론, 일면 타당한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계발서'인데도 불구하고 ‘계발’만 있고 ‘자기자신’은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공간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과 견주어 ‘자기’를 잃어버리라는 모순의 논리가 반복될 뿐이다.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끄는 이유     


‘자기계발’이라는 용어는 스스로 돕는다는 의미의 영어 ‘Self-Help’에서 비롯되었다. 새뮤얼 스마일즈가 쓴 책 『자조론 自助論』에서 첫 문장으로 인용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격언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자기계발(Selp-Help)은 어느덧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지침이 되었고 기본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강연, 동영상, 카운셀링, 책 등의 자기계발 상품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제 자기 계발은 통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마음수련 등 모든 분야가 자기 계발영역이다. 


특히 책은 자기계발의 핵심을 가장 명확하게 구현하는 매체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없으며, 꿈을 현실로 만드는 비법을 일깨워준다는 자기계발서는 강력한 힘을 지닌 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 성공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팔려나간다. 이러한 책들은 아무리 힘든 역경에서도 스스로 사고를 결정하고 선택함으로써 환경이나 운명이 우리의 앞길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IMF 외환위기로 정리해고를 당하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후배들이 선택한 길도 ‘자기계발’이었다. 사회와 기업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현실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기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토익성적은 필수가 되었고, 각종 자격증을 필두로 ‘취업 9종 세트’ 등 스펙쌓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어느새 자기계발은 일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뜻을 가진 단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기계발 Self-Help’이라는 본래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왜곡되어갔다. 경쟁사회가 요구하는 온갖 기술과 처세술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방법에 목적을 두며, 자신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이라 볼 수 없다.     

그동안 나는 적지 않은 자기계발서를 접했다. 목표 달성과 습관 변화 등의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주는 책들도 있었고 비전과 꿈을 구체적으로 달성해가는 데 도움이 될만한 도서들도 있었다. ‘사고와 의식의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책을 덮을 때는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고는 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지에 관한 세세한 지식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을 아끼며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인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와 같은 제일 중요한 것은 정작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인생이라는 시간을 실제로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들이었다.      


    

자기계발서의 두 가지 흐름     


모든 자기계발서를 범주 안에 넣을 수는 없지만 크게 자기계발서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 듯하다. 바로 당위적 측면과 신비적 측면이 그것이다. ‘당위적 자기계발’은 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은 해야 하며, 어떠한 일은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 그대로 당위적인 입장을 다룬다. 

예컨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책이나 자기계발서의 고전 『프랭클린 자서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당위적 자기계발서의 핵심 주장은 목표 설정에 따라 성취가 달라지며,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역설한다. 아울러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원대한 비전을 갖고 성공을 위해 도전 의식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500만 권 이상 판매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경우 무엇보다 습관을 강조한다. 매일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을 통해 위대함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자서전』은 매일매일의 자기 점검을 통해 시간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절제, 침묵, 질서 등 12가지 품성을 준수하기 위해 날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을 할까?”라는 아침 질문과 “오늘 무슨 좋은 일을 했나?”라는 저녁 질문을 날마다의 의식으로 행할 것을 권고한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도 마찬가지 당위적 맥락을 갖고 있다. 총 27가지의 원칙이 있지만 ‘남을 비난하지 마라’, ‘진심 어린 칭찬을 해라’라는 두 가지 큰 논리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역시 끊임없는 자기 개선과 타인에 관한 관심이 남다른 성공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반면 ‘신비적 자기 계발’은 우리 안에 놀라운 힘의 원천이 존재하며, 그걸 믿기만 하면 그 힘이 저절로 열린다고 주장한다. 그러기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긍정적이고 희망찬 말만 할 것을 주문한다. 


삭티 거웨인의『간절히 원하면 기적처럼 이루어진다』에서는 ‘창조적 시각화(Creative- visualization)’를 통해 현실로 나타났으면 하고 바라는 일을 의식적으로 정하면 마치 ‘기적’처럼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책은 생생하게 꿈을 꾸고 간절히 원하라는 많은 유사한 자기계발서들이 탄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우울증은 나쁘게 생각하는 데서 생겨나며, 긍정적인 사고의 힘을 가질 때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다준다는 마틴 셀리그먼의 『학습된 낙관주의』나 버려야 할 감정은 버리고 살려야 할 감정은 살림으로써 삶을 더욱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니얼 골먼의 『감성지능』도 신비적 자기계발서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시크릿』 이란 책이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다. 8개월 만에 무려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책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끌어당김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긍정의 마음을 갖고, 무엇인가를 끌어당기면 강력한 힘이 발휘되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 책에 열광했던 까닭은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고 꿈꾼다. 요즘같이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모든 게 우리의 생각에 달렸으니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믿고 그것을 마음에서 꺼내라. 그러면 누구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라는 얘기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마련이다. 지금처럼 상황이 어려우면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개인은 점점 경쟁으로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 현실은 더욱 각박하고 힘들어져만 간다.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킬 방법이 거의 전무한 현실에서 자기계발서는 어쩌면 하나의 탈출구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공에 대해 조급함이나 당장 채우고 싶은 만족,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달콤한 위안은 오히려 우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인생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인생에 있어서 단 하나의 ‘시크릿’이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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