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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May 23. 2022

D-7. 한번은 의심해봐야 할
자기계발서의 진리들 #2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D.R.I.V.E>(가제)가 가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작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가 인생에서 만난 사막을 다룬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회사에 첫 발을 뗄 무렵에야 ‘자기계발서’라는 분야를 처음 접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이 자기계발서의 새로운 세계로 나를 본격적으로 인도했는데, 그 책은 바로 켄 블랜차드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었다.

최초 출간시 원제는 『You excellent』 였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제목을 바꾸고 나자 폭발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출판사는 베스트셀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나중에 밝히기도 했는데, 아마도 문화와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탓이 아닌가 싶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칭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몸무게 3t이 넘는 범고래가 관중들 앞에서 멋진 쇼를 할 수 있는 건 조련사의 칭찬과 긍정적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방법으로 알맞은 시기에 칭찬하는 것이 성과를 내고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고래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건 차라리 넓은 바다로 되돌려 보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행복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칭찬과 격려가 필수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믿음이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진심 어린 꾸중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칭찬은 사실에 기초해 정확하게 해야 한다. 칭찬은 정당할 때 해주어야 하고, 꾸중 역시 필요할 때는 해야 한다. 칭찬을 해야 할 때 하지 않고, 꾸중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의욕도 저하되고, 성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입사원서를 넣고 한두 번 떨어지는 것은 특별히 위로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툴툴 털고 일어서면 괜찮다. 그런데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같은 일을 당하면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스스로 충분한 자격이 있고 스펙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더 크게 낙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큰 낙담과 우울을 경험하게 된다. 능력을 현실보다 과하게 믿는다면 믿음은 현실에서 깨지기 쉽고 절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때로 우리는 ‘고래를 춤추게 하기 위해’ 보상 제도를 활용한다. 보상은 우리 생활에 널리 퍼져 있는 대표적인 동기 강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예상과 달리 오히려 내적동기를 떨어트린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을 끌었다. 

1973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실험은 보상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유치원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A그룹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리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고 약속대로 선물을 줬다. B그룹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림을 다 그린 아이에게 선물을 줬다. C그룹은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선물도 주지 않았다.      

그림 그리기와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끝나자, 세 그룹의 아이들은 각각 다른 모습을 보였다. A그룹은 실험 이후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확 줄었고, B그룹은 실험할 때보다 더 오랫동안 그림 놀이를 즐겼다. C그룹 아이들은 B그룹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림 놀이를 즐겼다. 신기하게도 미리 선물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고 그림을 그리고 난 뒤에도 선물을 주지 않았던 조건의 아이들이 가장 그림을 많이 그렸던 것이다.

뭔가를 바라며 일을 하면 놀이, 즉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보상받을 때만 잠시 즐거울 뿐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은 잠시 영향을 주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오히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저 재미를 느끼며 뭔가를 하는 경우 꾸준히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적이 우수한 팀에는 추가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개인성과가 높은 직원에게는 해외여행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달콤한 제안에 눈이 멀어 열심히 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상을 얻기 위해 하는 일과 공부는 재미가 없어진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온 성과 보상이 사람들에게 동기를 준다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평가와 피드백, 그리고 칭찬과 꾸중은 진실하고 정확할 때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잘한 사람에게는 꼭 잘했다는 피드백을 주어야 하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잘못했다는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으로 잘못했다는 피드백을 주는 것을 주저한다. 특히 보수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조직에서 더더욱 그러한 면이 나타난다.      


더구나 부적절한 상황에서 칭찬하는 것은 애정과 배려가 아니라 그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어설픈 이기심과 다름없다. 정확한 꾸중을 해야 할 때 도리어 칭찬하는 것은 상대방의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별로 잘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잘했다는 칭찬을 듣는 순간,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영업사원 실적이 신통치 않지만, 동기를 끌어올리겠다고 칭찬만을 한다면 그 영업사원은 계속 그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아무런 근거 없이 ‘넌 특별해’, ‘넌 잘할 거야’라는 칭찬을 반복하는 건 그 순간만을 넘기는 임시처방일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존감이 높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존감이 높아서 성공한 것인지, 아니면 성공했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인생의 작은 굴곡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얻게 되고 그 성취감이 자연스레 자존감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선 달콤한 말과 위로가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유의미한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으로 칭찬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잘못했다는 피드백을 주지 않는 것이 사실 더 큰 문제이다. 정확한 꾸중을 하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이기심의 산물일 뿐이다. 칭찬과 꾸중은 언제나 정확하고 현실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적인 꾸중은 한 개인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유익하고 중요한 방법이 된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없다면 자신을 신중하게 파악하고 진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자기 자신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것을 주문한다. 아울러 타인에 대한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고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마냥 긍정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믿음을 가지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현실에 기초하지 않는 긍정적인 평가와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배신과 역효과를 안겨주고 만다.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기초다. 긍정적인 부분이든 부정적인 부분이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지는 모르지만, 정작 우리를 춤추게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라    


호아킴 데 포사다의 스테디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 하나가 나온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월터 미셸이 행한 만족지연(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기다리는 능력)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유치원생들은 각자의 방에서 달콤한 마시멜로를 하나씩 받는다. 그리고 15분간 먹지 않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이후 실험자는 아이와 마시멜로를 남겨두고 밖으로 나간다. 

혼자 남은 아이들 중 대다수는 참지 못하고 먹어 치웠지만, 몇몇 아이들은 끝까지 기다려 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0년이 지난 후,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여했던 아이들을 추적해 그들의 삶을 비교했다.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사회적응을 잘하고 SAT(미국 대학 수능시험)에서 210점이나 더 많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명한 마시멜로 이야기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라’라는 근거로 자주 사용되며 그 당위성을 부여받아왔다.      



그런데 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스토리에 의구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가 나오게 된다. 2013년 로체스터대학교의 홀리 팔메리와 리처드 애슬린은 <합리적 간식 먹기>라는 논문에서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 치운 아이들은 사실 참을성이 부족했던 게 아니고, 나중에 하나를 더 주겠다는 연구원의 말을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라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일수록 약속이 지켜질 거라 기대하며 좀 더 오래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즉 배고픈 경험을 가지고 있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을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다렸다가 두 번째 마시멜로를 먹은 아이들이 나중에 성공한 원인이 반드시 오랫동안 참을 수 있는 자질에서 비롯된 것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참을성만이 인생의 성공비결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고통스러운 것을 참아야 한다고 간주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나중에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해야겠어.’라고 일을 미루곤 한다. 그러나 나중에 여유가 생기는 순간 어김없이 하고 싶은 일보다 더 급한 일이 생기고 만다. 혹은 이전에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나중에 해야지.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좋으련만.’ 

결국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다시 하게 된다. 그리고 반복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여유가 없다’라고 한탄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없다면 안타깝게도 현재의 고통은 되풀이되고 만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을 잃어버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몰두하는 이들은 막상 미래의 시간이 되면 또다시 미래를 위하여 끝없이 준비한다. 그들에게는 현재가 없다. 항상 언젠가 오게 될 미래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는 오늘 형성되는 것이다. 오늘이 어떠한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당장 행복해야 한다. 오늘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미래도 불행해진다. 오늘 원망하는 사람은 세월이 흐르고 해가 바뀌어도 불평한다.     


내가 아는 사업가 한 명은 매우 인색하다. 그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노숙자를 위한 센터를 건립하고 싶은 멋진 꿈이 있다고 말한다. 그 꿈을 몹시 응원하지만, 그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지금 돕지 못하는 사람이 나중에 돕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지금 아까운 사람은 나중에는 더더욱 아까워하는 법이다.   

  

고통을 견디는 것은 능력이 아니다. 참다운 능력은 그 대상을 즐기는 것이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책 읽는 것을 즐거워하는 학생이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지금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즐기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무엇을 하든지 기꺼이 재미있게 해야 한다. 지금 즐길 수 있어야 미래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하고 오늘을 무작정 즐기라는 얘기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골드러시 시기에 한 사람이 금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마침내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연장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연장을 구입한 사람이 딱 3피트 더 들어갔더니 금이 나왔다! 

사실 이 얘기의 교훈은 일찍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첫 번째 사람이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서 금광을 찾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10년, 아니 20년을 더 찾는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객관적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는 동안 다른 기회의 문들은 닫히고 만다. 어쩌면 그가 연장을 판 돈으로 길 건너편 땅을 산다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금광을 포기해서 오히려 더 잘살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겨누지 않은 샷은 100% 빗나간다.” 전설적인 하키선수 웨인 그레츠키가 한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샷을 계속하는데도 득점하지 못한다면 그래도 계속 샷을 겨누어야 할까? 더 이상 겨누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고 흔히 하는 말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새로운 게임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때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무작정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내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일’은 패자의 단어이기에 ‘내일’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불행해진다고 일침한다. 그렇다. 내일을 꿈꾸기보다 오늘을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 오늘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내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현명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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