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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May 26. 2022

D-9. 왜 달리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가?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D.R.I.V.E>(가제)가 가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작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가 인생에서 만난 사막을 다룬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 위에 선 당신


우리는 모두 하늘 아래 살고 있다. 그러나 일부러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바쁜 일상 가운데 앞만 보고 달리느라 하늘을 쳐다 볼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어느 하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805년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의 안드레이 공작은 크로우조프 장군의 부관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러시아군은 아우스테르니쯔의 결전에서 크게 패배했지만, 안드레이는 장군을 구하기 위해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중상을 입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후에 간신히 깨어난 안드레이가 제일 먼저 보게 된 것은 푸른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본 순간 그는 그곳이 전쟁터이고 자신이 중상을 입은 것도 잊은 채, 너무나 푸른 하늘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동시에 평생 군인으로서 야심과 명예욕을 불태우며 살아왔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었던가 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렇고말고!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이 하늘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거다.” 


자신의 원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바쁘고 안일한 일과에 매여 자신의 목표를 알려 하지도 않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아침이면 어김없이 학교나 직장으로 향하지만 왜 가는지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 일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에도 힘에 부쳐 자신이 가는 길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빨리 가기만 하면 무조건 발전하고 있는 거로 생각한다.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밟은 채, 누군가는 바퀴 없는 차량을 탄 채 가속페달을 힘껏 밟고 있다. 내가 딱 그러했다.    

 

예전에 문득 거울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많이 늙었네!’라는 말이 나왔다. 새치도 늘었고 눈가의 주름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보다 지난 날 내 꿈과 계획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탓이 더 컸다. 순간 마치 지구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 듯한데, 내 마음은 하염없이 떠다녔다.

그때 나는 늘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도, 내가 있는 곳도 불분명했다.

     

여행할 때 낯선 곳에 도착하면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동시에 긴장도 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처음 가보는 울창한 숲을 지날 때도 있고,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갈 때도 있다. 행여 인적도 없고 햇빛도 들지 않는 곳을 걷게 되면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그때 곧게 뻗은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러한 길 위에서도 수시로 자신을 향해 목적지를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아 자신이 가야 할 방향에서 벗어나고 만다. 결국 길 위에서 길을 놓치고 말게 된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다면 당신은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바쁨을 경계하라     


아침에 지하철을 탈 때면 늘 경이로움을 느낀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은 이내 종종걸음으로 앞다투어 걸어간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탈 수 있었을까 하는 신기함도 잠시,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에 바쁜 발걸음은 보는 이의 마음도 바빠지게 만든다.     

바쁜 일상을 드러내는 현실은 2007년 어느 금요일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이올린 거장 조슈아 벨이 출근길 워싱턴 D.C 지하철역에서 수억 원짜리 바이올린을 들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와 바흐의 <샤콘> 등 명곡들을 연주하고 있다. 매회 전 좌석 매진을 기록하는 그의 공연 관람료는 비싸기로 소문나 있지만 특별히 깜짝 이벤트 연주를 계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다. 불과 7명만이 가던 길을 멈추고 연주를 감상했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은 바쁘게 그냥 지나쳤다.      

심지어 바쁘다는 것 자체를 인생을 보람있게 살고 있다는 표징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새벽에 출근해 밤중에 퇴근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퇴직하게 되면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넋을 잃고 만다.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보다 바빠야 할 그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힘들게 한다. 


20대들이 느끼는 현실은 더 막막하고 암울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각종 자격증과 어학연수에 인턴십까지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해도 원하는 연봉과 안정된 근무조건을 보장받는 직업을 구하기가 어렵다. 하버드 대학교 불합격비율(95.5%)보다도 대한민국 공무원 지원자의 탈락 비율(98%)이 더 높은 현실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은 정말 힘겹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공부만 열심히 했지, 무엇을 찾을 것인지,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인생과 미래에 대한 물음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통계청이 조사한 '경제활동인구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신규 입사자 10명 중 7명이 직장을 그만둔다. 더구나 첫 직장의 평균 근속기간은 13.8개월에 불과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간 직장을 1년 2개월 정도 다닌 뒤 그만두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게 했을까? 얼마 전 그러한 청년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 어렵게 취업했는데, 일 자체가 나와는 너무 안 맞는 것 같아요.”

“입사할 때 경쟁률이 50대 1이 넘었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감도, 의욕도 많이 떨어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다른 이의 삶을 ‘복사해서(Ctrl+C), 붙여넣기(Ctrl+V)’에만 익숙해 온 인생은 언젠가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 없이, 다른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인생에는 만족이 없다. 보람이 없다. 

삶에 대한 의욕과 감흥이 있으려면 먼저 ‘나다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보다 성숙해지고 인생은 인생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빅터 프랑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승화시켜 삶의 본질에 다가서도록 하는 그 책의 원제가 『Man’s Search for Meaning』, 즉 『의미를 찾아서』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원하는 삶     


“네 꿈은 그것이 아니었잖아”

“네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 이런 것 아니었어?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것….”

영화 <라라랜드>에서 여주인공 미아의 질문에 세바스찬은 사뭇 진지하게 대답한다. 재즈뮤지션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접고 결혼을 위해 클럽DJ가 되어버린 세바스찬처럼, 대부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곧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나의 삶’이 아닌 ‘남들보다 나은 삶’을 강요당하며,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가고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갖기 위해 애써왔다. 자신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지금 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지’를 묻지 않은 채 자신의 재능을 그저 남들이 알아주는 삶을 위해 써온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혼란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마시고 마셔도 목마른 것은 자신의 갈증이 아니라 타인의 갈증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외부의 필요에 의해 달리는 속도를 높이다가 나중엔 왜 자신이 달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고 만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자신만의 진정한 욕구나 필요,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만들어져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좋아한다고 믿어왔던 대상도 어쩌면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 혹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 것일 수 있다. 타인의 소망이 내 생각에 투영되어 진짜 자신의 소망인 듯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아주 오래된 램프를 발견했다. 램프를 살살 문질렀더니 연기가 피어오르다 ‘펑’‘하고 요정이 튀어나왔다. 요정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당신 소원을 한 가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 사람은 정말 기뻤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딱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5분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러나 램프의 요정은 사라지고 말았다. 5분이 지나도록 답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꿈을 이루며 살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꿈이 뭔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더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남이 디자인해주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저 남의 말을 따르고 스스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은 차고도 넘치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삶의 명확한 비전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자신의 내면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때 가능해진다. 물론 그러한 것을 고민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바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러한 질문을 그만두어선 더욱 안 된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길이 진정 나를 위한 길이었을까? 혹시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길이 아니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을 뒷전으로 하는 삶은 아니었을까? 라고 치열하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가끔 길을 잃지 않았는데도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길을 잃고서도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있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걸음을 멈추고 내가 걸어야가야 할 길과 걸어왔던 길을 돌이켜봐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길을 잃지 않게 된다. 여태껏 걸어왔던 길을 또다시 되풀이해 간다면 길은 더욱 멀어지고 만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될 때조차도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숲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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