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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May 30. 2022

D-10. 자신만의 여행가이드북을
만들라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D.R.I.V.E>(가제)가 가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작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가 인생에서 만난 사막을 다룬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벌써 십 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가족과 함께 크로아티아에서 차를 빌려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크로아티아 관련 여행 정보들이 거의 없을 때였다. 해외에서 발간된 여행 가이드북을 포함하여 2~3권을 어렵게 구해 꼼꼼히 읽었다. 우리는 첫 도착지인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로 이동을 한 후 에어비앤비 숙소에 머물기로 했다. 현지인 집에서 머무는 경험은 색다를 것이고, 가족들끼리 간단한 음식도 해 먹으며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마침 한 가이드북에서 추천해놓은 숙소는 화이트 톤의 깨끗한 응접실과 널찍한 주방이 괜찮아 보였고, 집 마당에 펼쳐져 있는 잔디정원은 꽤 근사해 보였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간 숙소는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사진과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었다. 분명 화이트 톤이어야 할 거실은 어둡고 비좁았으며, 냉장고도 시원찮았다. 에어컨을 작동시키니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더구나 푸른 잔디밭을 기대했던 정원은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붙인 펜스로 인해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베트남 다낭이 새로운 여행지로 급부상하면서 많은 사람이 찾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도시인 탓도 있겠지만, 호텔에서도, 식당에서도, 마사지 샵에서도 한국 사람들로 붐볐다. 좀전에 스쳐 지나갔던 여행자들을 다시 마주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들은 모두 여행가이드북이 추천해 놓은 경로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다낭에서 반드시 가보아야 할 식당 중 하나로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되어 있는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 가게를 어렵게 찾아갔다. 너댓 개 테이블밖에 없는 허름하고 비좁은 식당에는 한국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분간이 가질 않을 정도였다.     


우리 대부분은 남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따라가길 원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이미 검증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자신의 길로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대부분도 자신이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다른 이들로부터 만들어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 면이 있다. 우린 그러한 허상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쫓으며 살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예의 바르고,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이쁨받을 것’이라고 배웠다. 그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대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더구나 혹시라도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또는 그 기대를 거둘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나이’라는 것이 있다. 10대에는 좋은 대학에 갈 준비를 하고, 20대에는 괜찮은 직장을 구해야 한다. 30대가 되어선 더 늦기 전에 결혼을 서둘러야 하며, 40대에는 집을 장만해야 한다. 행여나 그 나이에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할 때 주위에선 가만두지 않는다.

“지금 그걸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거야.”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뒤처진다는 기준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타인과 사회가 만들어 낸 것뿐이다. 삶의 방향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기에 모든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게 되고, 결국 행복의 기준도 타인에게 맞출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는 많은 부분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여행지에서 단순히 유명한 유적지나 풍경을 둘러 보았다고 해서 온전한 여행을 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다. 현지 역사와 전통, 문화적 배경 등을 알고 있는 만큼 낯선 곳은 새롭고 다채롭게 다가오는 법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아는 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저명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은 핵심 신념과 가치, 삶의 목표를 알고 있으며, 사회가 자신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해한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의 목표를 이룬 사람은 절망감 대신 ‘자아통합감’을 느끼지만, 자기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타인의 의견에 쉽게 동조하고 휩쓸리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왜곡시키거나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숨기고 타인의 요구에 맞추어 행동하기에 성장의 기회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반응이나 변화에 불안하거나 방어적이지 않고 개방을 통해 세상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자신이 도대체 뭘 원하는지 묻는 것이 절실하다.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떠한 감정이 솟아오르는지, 어떠할 때 의욕이 생기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자기 이해를 통해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만큼 세상과 타인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극도로 집중하거나 몰입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글을 쓰거나 강의를 준비할 때다. 글을 쓸 때 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보람을 갖는다. 이건 내가 잘하고 못하고와 관계가 없다. 이전까지 나는 제대로 된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여러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다듬고, 다른 이들에게 그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을 내 자신이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건 어느 날 갑자기 알아챈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고 기록하며, 내가 느끼고 반응하는 것들에 대해 적어보고 살펴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에 나는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만 애써왔다. 삶에서 무엇을 이루려고만 했지, 삶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기 안으로 관심을 돌리고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글을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전달할 때 가슴 뛰고 행복해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욕구 단계 이론’을 정립한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앞의 욕구가 충족돼야 다음 욕구를 추구한다는 단계별 동기 이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연구가 잘못되었다며 욕구 단계를 뒤집어야 한다고 고백했다. 연구를 진행할수록 상위 욕구가 채워지면 하위 욕구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며,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동기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사명을 실현해가는 삶, 그것이 살아가야 할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강점은 무엇인가?     


타고난 재능과 열정, 정말 좋아하는 일은 평생 자신과 함께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톰 소여의 모험』 등을 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한 남자가 죽어 천국의 문에서 베드로(예수님 수제자)를 만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베드로가 매우 현명하다는 걸 알고 있던 남자는 평생 궁금하게 여기던 질문을 던졌다.

“베드로여, 저는 생전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군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바로 대답했다.

“간단한 질문이군요. 바로 저기 있는 사람입니다.”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을 이승에서 알았는데, 그저 평범한 배관공이었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했다.

“만약 그가 장군이 되었다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누구나 모래 속 진주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지 못하고 약점을 고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낸다. 미국의 벨 연구소에 따르면 30%만이 자신의 강점을 알고 있다고 한다. 

“당신의 강점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반대로 “당신의 약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의외로 대답이 쉽게 나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강점보다 약점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와 그의 동료가 하이든의 곡을 감상하던 어느 날의 일화를 보자.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에 다다랐을 때, 그 동료는 모차르트에게 비판적인 어조로 “나라면 저기서 저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모차르트는 “그래, 나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자네는 그 이유를 아나?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라고 대꾸했다.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모차르트도 자신의 재능은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강점을 발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강점을 찾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MBTI, 에니어그램, 스트렝스파인더와 같은 성격 혹은 기질에 관련한 도구들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갤럽에서 주관하는 스트렝스파인더 검사의 경우 다른 기질 검사와는 다르게 개인의 강점과 재능에 집중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기에 신뢰성과 타당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도구들은 대부분 정형화된 틀로 강점을 설명하고 있기에 개인을 특정한 그룹으로 분류하고 구분짓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객관화된 자료와 검사를 통해 주관적인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은 매우 유용한 도구임이 틀림없지만, 전적으로 그러한 도구에만 의존해서 강점을 발견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보다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고 고찰하는 방법이 우선되어야 한다. 즉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내면의 욕구를 알아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떠한 순간에 행복해하는지, 무슨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어떨 때 화가 나는지 시간과 공을 들여 자기 내면을 열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과거를 살펴보는 건 매우 중요하다. 미래는 현재에서 생겨나고 현재는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이 경우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통찰을 얻어야 하되, 과거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재능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재능이 주어졌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데 있다. 그런데 대부분 자신 안에 있는 재능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것이 현실이다.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가진 재능과 강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자꾸만 남처럼 되고 싶어 한다. 해답은 내 안에 있는데 빛이 비쳐서 잘 보이는 저 바깥세상에 모든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내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오직 나만이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국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뿐이다.       


여행 가이드북에서 짜놓은 코스대로 유적지와 박물관에 가고 식당에 들르고 숙소에 머무는 건 여행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관광일뿐이다. 진정한 여행은 먼저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의 여행계획을 세울 때 가능해진다. 해치워 버려야 할 숙제와도 같은 관광이 아니라, 만끽하고 즐거워하며 공감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자신만의 여행 가이드북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나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허름한 그 반미가게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 마침내 은박지에 아무렇게나 둘둘 싸여 나온 반미를 받아들고 간신히 한 입 베어 물 수 있었다. 그 유명한 반미를 먹어 본 소감은 글쎄...

30분 넘게 기다려서 먹을만한 가치는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아직도 길게 줄을 서 있는 한국인들에게 나도 모르게 소리칠 뻔했다.

“여러분, 가이드북을 믿지 마세요, 다 뻥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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