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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Jun 06. 2022

D-11.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리어왕의 후회     


“여기 누구 과인을 아는 이 없는가? 

 아아,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 셰익스피어, 『리어왕』 1막 4장      

자신을 극진히 사랑해주던 막내딸 코딜리어를 쫓아낸 후, 첫째와 둘째 딸의 사탕발림 거짓에 무참히 배신당한 리어왕은 이렇게 절규한다. 

그러나 진실에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광야를 누비는 광인이 되어 있었다. 희곡 『리어왕』의 이야기다.  리어왕의 비극은 사랑하는 사람과 거짓으로 대하는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대사의 고백처럼 ‘내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의 눈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 퍼슨(Person)의 어원이 된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는 가면을 뜻한다. 우리는 직장, 가정, 학교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으며, 내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존재다. 철학자 파스칼이 얘기했듯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맹목적인 삶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아를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자아를 만든 사람은 자신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되지 말아야 하는지, 또한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부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페르소나가 본연의 자신이라 착각하고 살 뿐이다.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많은 사람은 그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특히나 젊은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흉내를 내려 해도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그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유도, 손홍민도 한 사람으로 족하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강연 <Who am I>에서 가장 실패한 인생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다가 끝나는 삶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며 살아가는 것은 이미 충분히 비극적이다. 진실에 눈을 뜨지 못한 리어왕처럼.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 삶인가? 그건 자신의 욕구와 삶의 목적을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자신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치와 의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행동할 이유와 동기를 제공하며, 몰입하게 하고 지속하도록 해준다. 

빅터 프랭클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를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라고 표현했다. 돈, 지위, 권력 등으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믿음을 향해 달리다 느끼는 후회가 결국 공허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명함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실상 명함에서 중요한 정보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직업과 직책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명함에 최대한 많은 직함을 끌어다 넣는다. 성격이나 가치관, 태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관계들을 통해 사람을 정의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설명해야 할 때 우리는 대개 직업을 말한다. “대기업에 다닙니다”, “학교에 있습니다”, “치과의사입니다”. 물론 직업을 얘기하는 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편으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을 설명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 어떤 직업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직장인은 영원히 직장을 다닐 것처럼 생각하다가 막상 퇴직의 순간이 오면 자아마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리해고된 중년 남성이 재취업을 하기 위해 면접장에 들어왔다. 

“당신은 무엇을 잘할 수 있습니까?” 면접관이 질문하자, 그 남성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부장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평생 직장에 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단면을 보게 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어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와 반대로 모든 가치의 기준을 물질과 상품으로 판단할 때 ‘자아’는 사라지고 만다. 내가 입고 있는 옷과 타고 다니는 차, 집과 직장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때 자신의 존재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자신의 가치를 남의 판단에 맡기지 말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하브 에커는 책 『백만장자 시크릿』에서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를뿐더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어쩌면 우리는 그저 남이 나를 향해 멋대로 판단하고 그려놓은 모습을 진짜 자신의 모습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자신 안의 숨겨진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재능을 외면하지 말라     


당신 자신과의 마지막 만남이 언제였는지를 기억하는가?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당연히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만 한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나만의 욕구는 무엇인가? 무엇이 내 인생을 지배하는가? 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 내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짐으로써 삶의 방향은 정립되고, 그 과정에서 재능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만약 당신의 약점이나 결함을 적어보라는 지시를 받는다면 강점을 적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평가할 때 지나치게 비판적인 태도를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단점과 결함만을 쳐다보게 함으로써 타고난 강점과 재능을 외면하게 만든다.

우리는 성과를 좌우하는 것이 약점 때문이라고 인식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자연스럽게 약점을 발견하고 보완하기를 은연중에 강요받아왔고, 사회에서는 그러한 약점 때문에 고통받는다. 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워 남들처럼 닮아가려고 발버둥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각자의 강점들이 다채롭게 발현되었기에 발전해 온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 에서 마커스 버킹엄은 20여 년간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 한 결과, 성공한 사람들은 약점에서 벗어나 강점을 재발견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단점을 고치기보다 강점을 강화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했다.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충분한 강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지적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 때 버스정류장에서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펜을 꺼내 노트에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입이 마르게 그녀의 그림 실력을 칭찬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그랜드마 모지스, The old oaken bucket>

그러나 엄밀히 얘기해 그녀의 재능은 70세가 넘어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훨씬 이전부터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그런 재주가 있었는지 몰랐을 뿐이다. 그러기에 잠재력은 지속해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미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더라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말 그대로 잠재되어 있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재능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로서 오랫동안 잠재력을 연구한 윌리엄 제임스의 처방은 매우 단순하다. 그건 바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다양한 것들을 많이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일단 시도해보고 실행에 옮겨봐야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고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 시도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나서 내가 처음 시작한 건 ‘하루에 최소한 3문장을 반드시 쓴다’라는 작은 결심이었다. 책을 쓰기 위한 아무런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사람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매일 3문장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예상치 못했던 급한 일로 경황이 없었고, 어떤 날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책상에 앉을 기력조차 없었다. 또 다른 날은 직장 행사로 인해 밤늦게 들어가야 할 때도 생겼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떠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3문장을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일찍 잠이 드는 경우에는 새벽에 일어나 기필코 3문장을 쓰고 다시 잠이 들었다.     

 

비록 다음날, 간밤에 쓴 글을 읽으며 설익은 감수성에 오징어처럼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그래서 어렵게 쓴 문장을 모두 지워버리게 되더라도 그 일상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매일 3문장을 쓰기로 했던 작은 결심은 점점 축적되어 갔고, 마침내 책으로 출간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통해 나 자신도 몰랐던 잠재력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어느덧 가슴뛰는 삶을 꿈꾸는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라는 말은 알려진 대로 99%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1%의 재능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1%의 재능을 찾기 위한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건 슬픈 일이 아니다. 재능을 찾지 않고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슬픈 일이다. 행복은 이미 나에게 주어진 재능 안에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건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바로 그때 진정한 행복과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 마침내 ‘자기 자신을 알게 되었다’라는 시인의 고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중략)

지금 이 순간 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네. 

아무 흔들림 없이 무엇엔가 쫓기던 나, 미친 듯이 달리던 나.

고요히 서 있네, 고요히 서 있네. 태양도 멈추었네.     


                     - 메이 사튼, <나 이제 내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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