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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Jun 09. 2022

D-12. 그대, 밤하늘의 별자리를
기억하는가?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혹시 어린 시절 꿈꾸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가? 한때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를 꿈꾸지 않았는가?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 되고 싶지 않았는가? 아니면 국제기구에서 빈민구호사업을 하고 싶지 않았던가? 그 꿈과 현재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유년기에 마음먹었던 목표는 인생의 여정 가운데 쉽게 등한시되곤 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우리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꿈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꿈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조차 없다. 남는 것은 체념에서 오는 씁쓸함과 의욕 상실이 가져오는 피곤함뿐이다. 대개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해서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일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왜 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많은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고는 불확실성에 시달린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며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옳은 것인지 알고 싶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개척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지 않는다. 

취업 면접장에서 건너편 면접관의 ‘당신 같은 사람은 천명이나 줄 서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 꿈과 소망은 그저 배부른 소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장벽에 걸려 자신만의 목표나 비전 따위는 저만큼 밀려날 수밖에 없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은 “목표가 확실한 사람은 아무리 거친 길이라도 나아갈 수 있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앞으로 갈 수가 없다.”라고 얘기했다. 자기 목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여정에서 만나는 온갖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자기 목적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작은 고난에도 쓰러져 버리고 만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지 이리저리 흔들리며 방황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는 어떤 목표를 간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단체로 천문대에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천문대 선생님이 얘기해준 별자리에 대한 사연들은 지금 모두 잊어버렸지만, 커다란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많은 별 무리가 두 개의 렌즈를 통과해 쏟아져 내렸고, 그 순간 거대한 우주 안에 나 혼자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한쪽에 보이는 은하수를 보고 있자니 까만 밤하늘이 배경인지, 무리 지어 환하게 빛나는 별이 배경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망원경 밑에는 거대한 나침반이 장식처럼 붙어 있었다. 북극을 가리키는 빨간 바늘이 어둠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는 길을 알기 위해 지도를 참고한다. 도로와 표지판을 보고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고 목적지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을 때 유효한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을 알 수 없다면 방향을 가르켜주는 아무리 자세한 이정표가 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한 정보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먼저 알아야 하고, 방향을 알려주는 지도보다 위치를 나타내주는 나침반이 더욱 중요하다. 

15세기에 발명된 나침반은 대항해시대를 활짝 열었고, 인류문명의 화려한 변혁을 이끌었다. 지금이야 인공위성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작은 GPS장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위치를 알 수 있지만 과거에는 밤하늘의 별자리와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에 의존해 방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 크로아티아에서 가족과 함께 렌터카로 여행을 할 때 우리의 여정은 자그레브에서 출발해 스플리트와 플리트비체를 경유하여 두브로브니크까지 갈 요량이었다. 물론 GPS가 장착된 차를 빌렸다.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반응이 느리고, 일순간 장애가 생기기도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현지 도로와 이정표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은 그야말로 사막에 단비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3㎞ 앞에서 좌회전하십시오”, “700m 앞에서 3시 방향으로 우회전하십시오,‘ 작은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음성은 마치 친한 친구가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다정함마저 느껴졌고, 난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차량을 운전해갔다.      


그러나 어디쯤 갔을까. 고속도로에서 나와 외딴 국도로 접어들자 수시로 위성 신호가 끊어졌다가 다시 잡히곤 하는 일이 반복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2차선 도로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 내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신호가 완전히 끊겼다.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내비게이션 뿐인데 당황하고 두려웠다. 분명 길은 내 앞에 펼쳐져 있지만,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길 위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기억을 되살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까 지나왔던 분기점이 다시 나타났고, 큰길이 보였다. 잠시 후 다행히 GPS는 다시 신호를 잡았고, 네비게이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안내를 시작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주는 방향대로 얼마간의 운전을 하고나서 마침내 스플리트에 있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전하다가 표지판을 놓친 적이 있는가? 방향을 알지 못해 차를 세운 적이 있는가? 인생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위치부터 확인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나침반의 바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자신의 좌표부터 확인해야 한다. 좌표가 있어야 방향이 분명해지고 들어가고 나올 때를 알게 된다. 순풍과 역풍이 구별된다. 좌표 없이 항구를 떠나는 배는 표류하기 십상이다. 


어떠한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인생길은 때때로 안개가 자욱하고 밤하늘처럼 캄캄하게 여겨진다. 그때 필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그 나침반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 지금 당신이 간직했던 삶의 목표를 꺼내보라. 그동안 잊고 지냈던 밤하늘의 별자리를 떠올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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