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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Jun 19. 2022

D-15. 행복을 위한 조건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성공을 바란다. 그러나 성공은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성공을 목적으로 삼으면 인생이 공허해진다. 마치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들처럼 돈을 좇는 결말은 비참하고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성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임무를 다하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에 불과한 것이다.      


많은 사람은 성공해야 행복해지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참고, 인내하고,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기에 성공한다. 즉 결과가 성공적일 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행동 자체를 하게 될 때 행복은 다가오게 된다.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여행할 때 행복해지는 것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하는 마음은 얼마 전부터 회자되고 있는 ‘소확행’과 닮아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란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다.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을 그는 소확행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브루클린에서는 소확행과 비슷한 ‘100m 마이크로 산책’이 유행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매일 스쳐 지나갔던 공간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얻는다. 소확행이든, 마이크로 산책이든 원하는 행복에 이르는 것은 작은 만족과 과정 속에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행복론의 대가 탈 벤 샤하르 교수가 『해피어』에서 ‘행복이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만족감을 갖게 되는 주관적인 인식이자 경험’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은메달보다 동메달을 땄을 때 행복감을 더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은메달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동메달은 아예 수상도 못할 뻔했다는 안도감 때문에 만족감이 높다는 것이다.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욕망에 무게 중심이 치우치다 보니 만족하기가 어렵고, 만족하지 못하자 자연스럽게 불평이 늘어나면서 삶이 우울해지는 것이다.     


권력, 돈, 명예를 많이 가진다고 행복이 커지거나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단조롭고 검소한 생활 가운데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내 자신의 눈’이 달라져야 행복에 가까워짐을 알 수 있다. 관점이 ‘성공지향적’에서 ‘가치지향적’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성공지향 관점은 현재에서 미래의 일정 시점을 바라보며 돈이나 권력 등의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들을 목표로 좇는 형태의 사고이다. 시선은 늘 아래에서 위를 향하게 되고, 좁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산 정상을 향해 앞만 보고 걷는 것과 비슷하기에 길을 잃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가치지향 관점은 미래의 목표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마치 산 정상에서 등산로를 굽어보는 것처럼 그 과정을 내려다보기에 길을 잃을 확률도 낮다.   

   

수감자 번호 119104번. 빅터 프랭클은 1942년 9월 나치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3년 뒤 수용소가 해방됐을 때 아내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통해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어떠한 순간도 참고 견디며 고통으로부터 더 잘 회복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빅터 프랭클은 강제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오히려 막사 사이를 돌면서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눠주던 사람들이 있었다며, 그들이야말로 고통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함으로써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즉 그들로부터 인간의 마지막 자유, 즉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세뇌된 행복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행복은 나의 행복이 아니다. 나만의 행복, 주관적인 행복을 구하고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한 삶을 살기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고, 찾은 대로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가치 있는 삶이다. 가치는 결국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남들이 돈을 따라가든 명예를 따라가든 그것은 그들의 일이고, 나는 나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행여 다른 이가 내게 원하지 않는 삶을 요구할 때 나는 그것을 통해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제 성공의 기준을 다시 쓸 때가 되었다. 천편일률적인 성공의 정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악가를 꿈꾸던 사람이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늘 오페라 극장을 맴돌며 한숨짓는다면 그건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인생에서의 성공,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헛된 세상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성공 기준을 충족해가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이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라는 옛 명언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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