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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Jun 23. 2022

D-17. 지금 이 순간을 살라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창 꿈과 희망으로 가득할 나이인 중학생들에게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저마다 다양한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하나같이 부자가 되고 싶단다. 자연스레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이어 던졌다. 그러자 대부분 거기까지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머뭇거린다. 그나마 대답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모두 엇비슷했다. “멋진 스포츠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3층짜리 카페를 차리고 싶다”, “주말 바닷가 별장에서 바베큐를 하려면 부자여야만 한다.”      


한마디로 무언가를 갖거나 이루고 싶은 것이다. 부자가 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기에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반드시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한 것인지, 왜 행복은 미래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기는지 학생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스포츠카를 사거나 카페, 별장을 갖고 난 다음에는? 근데 그러면 정말 행복할까? 그 다음엔 무얼 하고 싶은데? ”라고 물었다. 

    

아니, 묻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진 못했다. 어린 학생들을 애꿎게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내가 더 크고 나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내가 어른이 되면”이라고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결혼을 하면”으로, 결혼한 다음에는 “애들 키우고 나면”, 그리고 결국은 “은퇴하고 나면”으로 생각이 바뀐다. 그리고 은퇴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지나쳐 온 풍경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그땐 이미 많은 것을 놓친 뒤이다. 우리는 너무도 늦게서야 인생이란 매일, 매시간이 이어지는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리더십 연구의 대가 존 맥스웰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실패한 사람들은 ‘언젠가 증후군(Someday sickness)’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좌우명은 ‘어느 날인가’이다. 하지만 그 어느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성공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늘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내일로 미룬다. 그리고 미루어 놓은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준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하고, 중학교에 가서는 입학하지도 않은 고등학교 과정을 미리 공부한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지만, 마침내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취직을 위해 다시 행복을 유보한다. 

어렵게 취업 경쟁을 뚫고 입사를 하면 승진을 위해,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 위해 행복을 또다시 미룬다. 이제는 제법 쉴 법도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또다시 행복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힘들게 키우고 나서 이제는 정말로 행복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새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한 나이가 되고 만다.      


흔히 사람들은 미래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에 지금 고통스러운 것을 참아야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막상 그 미래에 도달하더라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없다면 미래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 희생하면 미래도 희생되기 때문이다. 지금이 힘들면 미래는 더 힘들어진다. 이것을 사람들은 오해한다. 지금 힘들어도 참으면 미래는 행복할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행복은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오늘을 잃어버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몰두하는 이들은 막상 미래의 시간이 되면 또 다른 미래를 위하여 끝없이 준비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현재가 없다. 항상 언젠가 오게 될 미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도 그 당시에는 현재였다. 미래도 그때가 되면 현재가 될 것이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지금이 불행하다고 느끼면 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 지금 원망하는 사람은 세월이 흐르고 해가 바뀌어도 불평한다.      


우리는 때로 과거의 일을 지나치게 그리워하거나 혹은 그때의 일로 마음 아파한다. 물론 어리석었던 과거를 발판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한없이 과거에 매달려서 현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깊은 좌절로 고통스러워한다면 그건 어두운 그림자와 같은 삶이다.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현재에 충실할 수 없고,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 없게 된다.  

    

과거에 속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미래에 매몰되는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과거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린다면 젊은 사람들은 미래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이 땅의 청춘들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상실해버린다. 

오랜 시간 성공과 행복을 꿈꾸면서 ‘그 언젠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되뇌인다. 미래를 위하여 지금의 현실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언젠가’는 절대 오지 않는다. 그들이 기다리는 ‘그 언젠가’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노인 한 명이 살구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노인에게 다가가 나무의 과실을 얻기도 전에 삶이 먼저 끝날 수도 있는데 왜 힘들게 묘목을 심느냐고 묻자 노인으로부터 “자신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매일을 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자 조르바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저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삽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노인은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조르바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만의 삶을 충분히 살아냈다는 것이다.     



어제는 되돌릴 수 없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어차피 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제와 내일에 마음을 두고 늘 걱정하고 근심한다. 우리가 늘 바쁜 까닭은 세상이 바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바쁜 탓이다. 

오늘에 마음이 있지 않으면 늘 초조하고 조급해지게 마련이다. 행복은 언제나 현재에 있다. 오늘 최선을 다하며 지금 스쳐 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조르바처럼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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