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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Jul 25. 2022

D-23. 문이 닫힐 때
새로운 문이 열린다

D.R.I.V.E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내게 시련과 고통이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은 회피하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을 외면하고 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럴수록 문제에 매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고통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반응은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고통의 순간에 놓여 있을 때 해야 할 일은 고통 속에 온전히 바로 서는 것이다. 왜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자책하고 후회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고통이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야 한다. 느닷없는 시련이 왜 생겼으며, 자신의 인생 가운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바라봐야 한다.     


불행과 시련이 닥쳤을 때 그 시간 속에 갇혀 있지 말고 인생을 크고 길게 봐야 한다. 바람이 지나간 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봄날이 온다는 걸 안다면 시련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다. 시련이나 불행을 극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희망이다. 단 한 줄, 한 가닥의 희망을 잃으면 삶의 모든 의욕마저 놓치게 된다.     


말기 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면서 ‘마지막 강연’이라는 동영상을 통해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진 미국의 랜디 포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벽이 있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벽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가르쳐 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멈춰 서라는 뜻으로 벽은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 에드워드 밴 필드 박사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시간 전망(Time- perspective)’ 이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시간 전망은 지금의 행동과 의사결정이 미래에 끼치는 영향력을 말한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과거의 시간에 머물거나 눈앞의 이익만을 좇지 말고 멀리 보고 길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간 전망이 길수록 성공과 행복의 비율은 높아진다고 필드 박사는 주장한다.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걱정과 조급함을 경계하고 멀리 보고 길게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걱정하는 일들 대부분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걱정하는데 보낸다.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될까? 다른 사람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나? 프로젝트 발표에서 떨어지면? 공부한 것이 기억나지 않으면?      


그러나 그런 일은 99%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99%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머지 1%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의 영역에 맡겨 놓아야만 한다. 오히려 지금 나머지 1%를 궁금해하는 것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또 걱정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른다. 사막에서 쓰러지는 이유가 정작 더위나 갈증 때문이 아니라, 사막을 빨리 건너야만 한다는 걱정과 조급함 때문이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모래쥐는 건기를 나기 위해 풀뿌리를 미리 모아 놓는다. 하지만 모래쥐는 풀뿌리가 없는 걸 대비하기 위해 항상 필요 이상을 모은다. 정작 필요한 것은 2kg 정도이지만 통상 10kg을 모으다 보니 늘 나머지는 썩고 마는데, 걱정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는 셈이다. 

의학계에서 모래쥐를 실험용 쥐로 사용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극도의 불안감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해 일찍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모래쥐처럼 먹이를 충분히 모으고도 초조함에 시달린다면 결코 새롭게 열린 문을 보지 못하고 만다.     


새로운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매사추세스 병원에서는 임종 직전 말기 결핵환자를 대상으로 3시간 40분 동안 체중 변화를 관찰했더니 숨을 거두는 순간 몸무게가 1.25온스(약 35g)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년 6개월 뒤에도 임종 직전 다섯 환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조사해 보았더니 역시 1온스(약 28g)가량이 줄어들었다. 

이후 스웨덴 룬데 박사팀이 정밀 컴퓨터 제어장치로 그 실험의 진위를 다시한번 검증해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임종 시 환자의 체중이 정확하게 21.2614g이 줄어든다고 한다.     


정확한 무게가 얼마이든간에, 우리는 정작 21g밖에 안 되는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들여다보는 것에 너무 인색해 왔다. 주위를 쳐다보고 다른 사람을 쫓느라 정말 중요한 자신은 쳐다보지 못한 것이다. 21g밖에 안 되는 무게가 실은 내 삶의 전부인 것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영화 <빠삐용>에서 빠삐용은 남에게 해를 입힌 적도 없는데 도대체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냐고 심판관에게 따져든다. 그러자 ‘자신의 삶을 낭비한 죄’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자신의 삶을 낭비한다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분노와 짜증, 욕심이 가득한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러한 감정에 자신을 그대로 방치시켜 둘 수가 없는 것이다. 절망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그건 결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수용되어 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944년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2주 사이에 특별히 많은 유대인들이 죽어 나간 것을 발견했다.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 가스실로 끌려가서 죽은 것이 아니라 아무런 까닭없이 죽은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그 이유를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번 성탄절에는 풀려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오랫동안 해왔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결국 희망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죽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4개월 후 독일은 패망했다. 물론 죽음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들은 모두 풀려났다.     

그러한 유대인들이 특정 절기에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다. ‘아니마민(ani ma`amin)’ 이라는 노래인데, 이스라엘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이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곳은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였다. 죽음의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이 언제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불렀던 노래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만큼 빨리 오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분을 기다립니다. 매일 그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매일 그분을 기다릴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노래했듯이 우리도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어떠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 있든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설 때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쳐다보느라 다른 한쪽이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반드시 다른 새로운 문이 열린다. 굳게 닫힌 문 앞을 떠나 새롭게 열린 문을 바라보게 될 때 잠재된 재능과 기회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1939년도에 만든 영화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거대한 스케일과 함께 섬세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특히 석양을 배경으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실루엣으로 마무리되는 엔딩 장면은 세월이 흘러도 영원토록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석양을 비추던 카메라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스칼렛 오하라를 클로즈업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농장이 있던 ‘타라’를 바라보고 있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타라’는 그녀 삶의 터전이자 전부였다. 그곳을 바라보던 그녀는, 결별을 통보하고 떠난 레트 버틀러를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그녀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아무도 곁에 있지 않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것만 같고 암울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외친다. 

“분명해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뜰 거예요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렇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 어렵고 힘들다고 오늘의 좌절에 머물지 말라. 

일어나 희망을 얘기하라. 닫힌 문 앞에 오래 서 있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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