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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Aug 03. 2022

<헤어질 결심> 그리고
<아직도 가야할 길>

영화 초반 ‘붕괴’라는 단어를 꺼내들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습니다. 위태위태한 두 남녀가 가져올 파국이 어떠할 것인지를.

아무리 탕웨이가 고혹적이라 하더라도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숨겨놓은 비밀이 담겨 있음을.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평일 낮 혼자 극장에 간다는 건 저같은 직장인에겐 무척 호사스러운 일입니다. 

코로나 자가격리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지만, 사실은 개봉되기 전부터 무척 기다린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박찬욱 감독, 박해일, 탕웨이 주연의 <헤어질 결심>입니다.



연출, 연기, 미장센, 미술, 화면분할....분석적이고 영화학적인 접근 따위는 필요없었습니다. 때로는 초록색으로, 때로는 자줏빛으로, 마지막에는 바다의 그 검푸른 색으로 채워지는 스크린을 보며 그 틈바구니 어딘가에서 솟아오르는 감정과 느낌만으로도 족한 영화였습니다. 

결코 격정적이지도, 관능적이지도 않지만 마치 열상을 입은 듯한 뜨거움을 표현해내는 카메라의 권능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고, 요란하고 거창한 고백보다 그저 작은 숨소리 하나만으로 애절함을 담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저 사람도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일듯 보여주지 않으면서 영화는 긴장을 내내 끌고 갑니다. 그러다 어느순간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라는 확신을 얻는 순간, 영화는 그 팽팽했던 긴장의 끈을 내려놓고 걷잡을 수 없는 '붕괴'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배경으로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끝까지 볼 수가 없었던 건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붕괴’된 남자와 ‘스스로를 버린’ 여자로 인해 가슴이 먹먹해와 더 이상 앉아있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장을 서둘러 나오면 그 절절함이 괜찮아질려라 생각했는데 때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저만치 더 '안개'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통찰깊은 작가 M.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면 끊임없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여주인공 서래는 불쌍하고 비루한 인생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현명한 여자였습니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이 완벽에 가까운 해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해준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그리고 해준이 더 이상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서래는 '스스로 사라지는 일'을 선택합니다. 사랑이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사랑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항상 반복되는 일이기에 그 반복에서부터 진정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것도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만족과 행복을 갈망하지만 성장은 갈망하지 않으며, 성장에 따르는 불행과 고독과 고통은 견디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관심은 자신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다."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M. 스캇 펙은 ‘사랑’과 ‘애착’을 구별하며 '사랑이 없는 애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어서 그는 내부가 텅 비어 있어서 채워지기를 애타게 갈구하지만 절대로 완전히 채울 수 없고, 설사 채워진다해도 채워졌다는 느낌도 갖지 못하는 사람을 ‘수동적 의존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온전한 느낌이 부족한 그들은 단지 관계속에서만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해준도, 탕웨이가 분한 서래도 그러한 '애착' 앞에 서 있었던건 아니었을까요? 만족과 행복은 갈망하지만 불행과 고독은 견디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하지만 자신을 만족시켜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완전히 채울 수도 없으며 채워졌다는 느낌도 가질 수 없는 그런 '수동적 의존'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M.스캇 펙의 말대로, 우리가 믿는 사랑이라는 것이 사실은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애착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영화는 그러한 애착이 결국 가져다 주는 건 자유와 기쁨이 아니라 ‘붕괴’와 '사라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영화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잔을 들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이미 붕괴해버린 것들을 위해,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을 위해, 

그리고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착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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