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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Aug 30. 2020

3. 베두인의 삶처럼

흔들리지 않는 꿈을 꾸다

아부다비에 있을 때 현지 TV 방송을 거의 보지 않았다. 처음엔 호기심에 채널들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재미없고 따분했다. 물론 언어와 문화의 차이의 탓이 크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엉성했고, 노래 프로그램은 리듬이 너무 생소해 채널을 고정하기가 어려웠다. 

유일하게 나의 흥미를 자아내는 채널이 있긴 했는데, 그것은 바로 낙타 경주 방송이었다. 마치 경마장의 말들처럼 낙타들이 트랙 안에서 경주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손에 땀을 쥐고 시간이 가는지도 몰랐다. 그때 난 낙타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연신 콧김을 내뿜으며 뒷다리를 앞다리까지 끌어올려 힘차게 내딛는 모습은 지금 뛰고 있는 이 동물이 원래 낙타가 맞나 할 정도였다. 


그러한 낙타가 사막에 접어들면 우리가 아는 본래의 낙타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천천히 먼 곳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어간다. 숨이 찰 정도로 달리지도 않고 헐떡이지도 않는다. 자신이 가진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으면서 적당한 속도로 걸어간다. 달릴 수 있지만 달리지 않기 때문에 큰 사막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숨 가쁘게 똑같은 트랙을 반복적으로 도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좁은 트랙 안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 놓고,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기고 빨리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 생각했다. 조급하게 서둘렀던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제법 빨리 갈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 좁은 트랙 안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빨리 가는 것만 생각하다 보니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목적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심지어 내가 왜 트랙을 뛰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잊어버렸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빨리 달리는 말이 아니라 천천히 오랫동안 걷는 낙타가 필요하다.     


사막 투어를 하면 사막에서 장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양을 치며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베두인이다. 낙타와 양 몇 마리가 소유의 전부인 그들은 장막을 짓고 살아간다. 양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장막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훌륭했다. 통풍도 잘되어 덥지 않은 장막은 추울 때는 스스로 오그라들어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만 벗어나면 높은 건물들과 최첨단 문명의 이기들이 가득한데, 그들의 삶은 아주 단출해 보였다. 세상 문명과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사막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그들에게 있어서 소유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땅도 없고 집도 없다. 사막 한가운데 아무 데나 장막을 치면 그곳이 자신들의 집이 된다. 그렇게 장막을 치고 살다가 양들과 낙타에게 먹일 것이 떨어지면 미련 없이 장막을 거두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평생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에 그들은 최소한의 짐만 갖고 다닌다.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환하게 웃는 그들은 옷 몇 벌과 신발 몇 켤레면 그것으로 충분한 삶이다.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커다란 이삿짐 차 2대를 불렀지만 다 싣지 못했다. 결국, 먼지가 자욱한 책들과 옷가지들을 버려야만 했는데 그 양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어차피 소용없는 것들이지만 버리려 하니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도 아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막과 같은 인생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미련 없이 짐을 줄이고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유는 단연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끙끙거리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간다. 욕심을 부려 많은 짐을 진 채 더 멀리 가려하고, 남보다 더 빨리 가려한다면 결국 감당하지 못해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 흔한 길 하나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막을 건널 때에는 산을 오를 때와는 다른 계획과 방법을 가져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사막을 건너는 것이 목표가 되기 위해서는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버려야 한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을 바라볼 때 성공이 아닌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사막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땅이 아닌 하늘을 쳐다보고 가야 한다. 방금 지나온 길도 뒤돌아보면 사라지고 없는 그곳에서 땅을 쳐다보고 가노라면 결국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밤하늘의 별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어야 한다. 짐도 너무 많이 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수시로 변하는 땅을 쳐다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높은 하늘 위에 홀로 빛나는 북극성처럼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바라보는 것만이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적어도 우리는 트랙을 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트랙 안이 우리에게 예정된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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