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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Dec 12. 2022

다른 사람에게 핸들을 맡기지 마라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5장. Discover 중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가 22년 12월 9일 출간되었습니다!

모호한 삶 가운데 어떤 길을 걸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담았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에 지치거나 정신없이 목표를 위해 달려왔지만 문득 돌아보니 삶에 의구심이 생기는 직장인, 어제와 다른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중 일부를 올려드립니다.




통제권을 갖고 있는가


어렸을 때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것 자체가 매우 곤혹스러웠다. 승용차나 버스 할 것 없이 차만 타면 멀미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거리를 타고 가야만 할 때는 메스꺼움과 울렁거림으로 늘 비닐봉지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런 증상은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계속되어 주위 사람들 보기에 난처할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한 멀미 증상이 언제부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신기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기 시작했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처음으로 차를 샀다는 들뜬 마음에 장거리 여행을 자주 다니곤 했었는데, 한 번도 멀미를 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운전을 직접 하면 스스로 다양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가고 멈추는 것부터 시작해 어느 길로 접어들 것인지 말 건지, 휴게소는 언제 들를 것인지 등에 대해 본인이 결정하고 선택한다. 경치 좋은 곳 근처를 지나게 될 때면 잠시 짬을 내서 그곳에 들를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지나칠 것인지도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즉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게 되면 차의 움직임과 관계된 모든 것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이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통제권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요양원 노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했다. 화초를 똑같이 나눠주고 한 집단은 직접 화초를 돌보게 하고 다른 집단은 담당 간호사가 돌볼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1년 반 뒤에 조사해보니 직접 화초를 정성 들여 돌본 집단이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살았다. 화초 가꾸기가 노인들의 단조로운 일상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작은 일에 대한 통제감의 차이가 건강뿐만 아니라 기대수명까지 좌우한다.

또 다른 실험이 있다. 10명의 사람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목공 작업을 하도록 했다. A그룹에는 옆방에 큰 소음이 있을 거라며, 소음이 견디기 정말 어려울 때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소음이 멈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버튼은 진짜가 아니었다.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반면 B그룹에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A그룹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작업을 마쳤다. 생산성도 비슷했고, 가짜 버튼을 누를 만큼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반면 B그룹은 소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생산성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통제감 상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통제나 지휘 속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통제감 상실을 경험하고, 그 경험들이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정신 건강에도 해를 가하게 된다. 우리는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고 여길 때 스트레스가 커지고 고통과 좌절이 밀려오지만, 반대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때는 인내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강력해진다.     

직장인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 대부분 일이 힘들거나 자기 노력에 비해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상사나 동료 때문이다.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 위계질서에서 오는 자괴감, 통제당하며 느끼는 치욕감이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심지어 원래 좋아하던 일도 그것이 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는 순간 다르게 다가온다. 행동의 자유를 침해당했기 때문이다. 시키지 않으면 즐겁게 할 수 있었던 일도 다른 사람이 시키면 싫어지는 것이다. 막 숙제하려는데 때마침 부모님에게 숙제하라는 잔소리를 들으면, 그 순간 숙제하고 싶은 생각이 모두 사라지는 까닭은 내가 주도해서 자유롭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에게 어머니 갈매기는 이렇게 푸념한다. 

“어째서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게 그리도 힘들단 말이냐?” 

그러나 조나단 리빙스턴은 굴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되는 자유, 진정한 자아가 될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갈매기들이 먹는 것을 위해 ‘수천 년 동안 물고기 대가리를 찾아 휘젓고’ 다닐 때 조나단은 보다 잘 나는 꿈을 좇는다. 그리고 마침내 조나단은 하늘을 멋지게 날아다니는 자유를 누린다. 결국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주도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인생은 가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요구한다. 바로 그때 자신이 주도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은 확연히 구별된다. 현재에 매몰된 삶은 그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 속에 계속 머무르려 한다.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며 선택을 미루거나 회피한다.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을 회피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선택의 순간을 미루는 것이다. 더러는 아예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선택권 자체를 다른 사람이나 우연에 맡겨 버린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해 주는 방식에 익숙하다. 대학 전공을 정하고 장래 직업의 진로를 세울 때도, 심지어 배우자조차 부모 판단에 맡기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온갖 사업보고서와 기획안, 각종 회의와 발표, 심지어 점심에 무엇을 먹을 것인지까지 타인의 판단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선택을 회피하곤 한다. 


타인의 선택과 판단을 따르면 조금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수동적으로 이끌려 사는 존재가 되고 만다. 결국 남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위험이 따르지 않는 선택은 없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위험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늘 선택을 주저하며 달려왔다.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기가 싫었고, 선택함으로써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대신 선택해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권을 슬쩍 넘겨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걸어가야만 하는 길로 접어들고는 했다. 

가끔은 내가 직접 선택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무리 걸어도 내가 걷는 그 길은 여전히 낯설었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발이 아팠다.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걸어가야만 하는 길은 회한과 후회만 남는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많은 결정이 결국 ‘자신만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까닭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GPS와의 연동을 통해 실시간으로 길을 안내해줌으로써 이제는 운전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장치다. 기술은 더욱 발전해 지금은 목적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정체되는 도로를 파악하여 재빠르게 우회도로를 안내해주는 기민함과 영특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우수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운전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즉 운전자가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실시간으로 막히지 않는 길을 안내해주더라도 운전자가 핸들을 돌려 그 길로 접어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외국에 있을 때 서양 장기인 체스를 배운 적이 있다. 물론 개별 말판들의 생김새와 호칭이 다르지만, 우리나라 장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비슷한 것은 보잘것없는 ‘왕(King)’의 역할이다. 왕(King)은 한 번에 한 칸씩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자신을 보호하지도 못할뿐더러 상대를 공격하는데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여왕(Queen)은커녕, 기사(Knight)와 일반 병사(Bishop, Rook)에도 능력이 한참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가장 쓸모없는 말판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체스게임에서 제일 중요한 말판은 왕(King)이다. 체스는 상대방에게 ‘체크메이트(Checkmate)’를 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즉 왕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면 제아무리 다른 말들이 많이 남아 있어도 게임은 끝나고 만다. 결국 다른 모든 말은 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왕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도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내 인생의 왕(King)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때로 나라는 존재가 쓸모없거나 별 볼 일 없어 보일 때도 있지만, 자신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잃어버린다면 모든 게임은 끝이 난다. 내가 직접 잡고 움직여야 할 내 인생의 핸들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면 그건 더 이상 나의 여행이 될 수 없다.      


인생에는 오로지 두 가지 길이 있다. 자신이 선택한 길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이다. 자신이 선택해서 운전해 가는 길만이 자신의 현실과 운명을 이룬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식하지 못하면 외부에는 운명으로 비친다.”라고 했다.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운명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핸들을 맡겨 놓은 채 체념하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운명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핸들을 맡기고 있지는 않은가? 운명의 핸들을 꼭 잡아라. 당신만이 그 핸들을 잡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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