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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Dec 21. 2022

가장 빠른 길이 아닌
최적경로를 찾아라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중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가 스노우폭스북스에서 `22.12.14일 출간되었습니다!

모호한 삶 가운데 어떤 길을 걸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담았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자기계발에 지치거나 정신없이 목표를 위해 달려왔지만 문득 돌아보니 삶에 의구심이 생기는 직장인, 어제와 다른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중 일부를 올려드립니다.



최단코스는 직선이 아니다


    아부다비에서 근무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던 나무가 야자수와 맹그로브였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맹그로브는 열대지방 바닷가나 갯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뿌리가 수면 위로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뜨거운 중동의 열기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맹그로브는 물고기의 산란 장소와 은신처가 되어주고, 해안지반을 지지해줌으로써 태풍이 왔을 때 막아주는 역할을 해주는 유용한 식물이다. 실제 맹그로브의 뿌리는 마치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듯 서로 얽혀있고, 그 뿌리 사이 사이에는 작은 게들과 어린 치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붉은 뿌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영 아름답지 않을뿐더러, 엄청난 악취가 나기 따라서 많은 국가에서 벌채를 추진했고, 그 결과 맹그로브 숲은 상당 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맹그로브 나무가 소나무에 비해 3배 높은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 있는 맹그로브 숲이 연간 약 2,28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또한 맹그로브 손실로 배출된 탄소량은 산림 벌채로 배출된 전 세계 총 탄소 배출량의 약 5분의 1이나 차지하고, 연간 약 22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더구나 맹그로브 숲을 복원했더니 어획량이 극적으로 늘었으며, 해일 예방에도 매우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연달아 발표되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서는 다시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는 작업이 추진되었다. 보기에 흉측하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맹그로브를 없애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없애는 것만이 ‘최적의 방법’은 아니었다.      


얼마 전, KTX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 나는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할 때가 되자 재빨리 좌석에서 일어나 통로 중앙에 섰다. 기차 출입문이 어느 승강장 쪽으로 열릴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쪽에 서 있다가 승강장이 다른 쪽일 때, 내 뒷사람이 먼저 내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역을 빠져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별것 아닌 일에 남들보다 더 빨리, 가장 먼저 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온 것에 나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첫 번째가 되기 위해, 먼저가 되기 위해 살아왔다. 그것은 내 삶을 힘들고 지치게 했고, 끊임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 중 하나가 “싫어.”이고 그다음은 “내 거야.”와 “빨리 줘.”라는 말이라고 한다. 아이들도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은 어른이 빨리 되고 싶은 아이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우화 <토끼와 거북이>는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북이는 처음부터 토끼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기를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거북이는 토끼를 이기는 데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정한 것일 수도 있다. 토끼가 중간에 잠을 자든 안 자든, 쉬든 안 쉬든 그런 문제는 애초부터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거북이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줄곧 ‘토끼의 시간대’ 속에서 살아왔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고, 누구보다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가장 먼저 목표를 달성해야 직성이 풀렸다. 프로젝트는 반드시 마감 시한 훨씬 이전에 끝내야 했고, 보고서는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스트레스와 조바심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직선 코스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멀리 돌아가게 될 때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꼬불꼬불 험한 길로 돌아가는 것이 나중에 보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최단 코스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우리는 시련과 역경을 겪을수록 단단해지며 더 성장하게 된다. 길을 잃거나 좌절할수록 삶은 성숙해진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은 쉬운 만큼 얻는 것도 없다. 대신 남이 안 가는 길은 대체로 낯설고 어렵지만, 성취의 기쁨은 훨씬 크다. 새롭고 어려운 길, 남들이 가지 않아서 두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미래는 자신의 것이 되고 그 길은 지름길이 된다.      


딜레마로부터의 자유


의학 전문지 <란셋(The Lancet)>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태어난 사람의 절반 이상은 기대수명이 100살을 넘을 것이라 한다. 그런데 2021년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세에 불과하다. 그것이 자발적 퇴사이든 해고이든, 퇴직 후 5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에서 하루라도 빨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것이 보장된 성공이 아닐 수 있다. 산을 올라갔다면 언젠가는 내려와야 한다. 빨리 올라가면 그만큼 빨리 내려와야 한다. 하물며 산 정상에 오래 머무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빨리 승진하는 것보다 퇴직 후 5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자동차의 경로를 검색할 때, 가장 빠른 길보다 ‘최적경로’를 검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를 검색하면 내비게이션은 잠시 후 ‘빠른 길’, ‘무료 도로’, ‘최단 거리’ 등 여러 경로를 다양하게 제시해 준다.      

‘빠른 길’은 거리와 관계없이 단순히 빠르게 도착하는 것만을 우선시하기에 주유비와 통행료 등 경제적 비용 측면이 무시된다. ‘무료 도로’는 경제적 비용 측면만을 고려함으로써 목적지까지 멀리 우회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최단 거리’ 경로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만 염두하기에 시간이나 경제적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바로 ‘최적경로’가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은 거리와 시간, 경제적 비용 등 모든 조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가장 적합한 코스를 ‘최적경로’로 나타내 보여준다. 오븐에 빵을 구울 때 가장 적합한 오븐 온도와 시간, 반죽 상태, 이스트의 양이 적절하게 배합되고 균형을 맞출 때 가장 맛있는 빵이 나오는 것처럼, 시간과 거리, 경제적 비용 뿐만 아니라 도로 상태와 장애물, 정체 현상 등을 모두 함께 고려하는 최적경로는 말 그대로 최적의 경로이다.     


살다 보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우리는 그것을 ‘딜레마’라고 부른다. 한 가지 선택을 강요당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지만, 선택하지 않을 수 없기에 딜레마가 되는 것이다. 

메릴 스트리프(Meryl Streep)의 연기가 빛났던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주인공 소피는 자신의 어린 아들과 딸 중 한 명은 무조건 가스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나치의 잔인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온전치 못한 선택이지만,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녀에게 커다란 딜레마로 다가온다.   

  


‘최적경로’는 경로를 탐색할 때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빠른 길, 최단 거리, 편안한 길, 무료 도로 등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종합해 최선의 선택지를 알아서 제공해주는 최적경로는 우리가 어떠한 경로로 운전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수고를 덜어준다. 


인생에도 최적경로가 있다. 인생의 최적경로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알아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최적경로는 자기 안에 내재된 이유와 동기를 깊이 들여다볼 때 가능해진다. 무엇이 나에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나만의 욕구는 무엇인지, 내면의 동기는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삶은 표지판도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이 길 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빨리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순간,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방향이 잘못될 수도 있고 페이스를 잃고 흔들릴 수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벽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며 생채기도 생긴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없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는 길 위에서 방향을 잡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좀 늦게 가더라도 상관없다. 빨리 도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칼날을 제대로 갈아서 칼질을 하는 게 진정한 무림의 고수가 되는 길이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 여정 가운데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만약 빨리 도착해야 한다면 중간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포기하거나,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하고 훈훈한 사연들을 접할 기회를 저버려야만 한다. 진정한 여행은 목적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법이다. 

속도에 관한 조급함을 내려놓은 채 자신 안의 동기를 파악하고 자기만의 재능을 살리는 것이 최적경로를 선택해서 운전해가는 일이다. 바로 그때 목적지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으며, 요원해 보이기만 하던 ‘자기성숙(Self-maturing)의 길’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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