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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Oct 18. 2020

5. 잘 만들어진 세상에서 산다는 것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

영화배우 짐 캐리를 좋아한다.

능청맞은 웃음과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무엇보다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코믹한 영화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한 그는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웃긴 배우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상영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의 다 본 것 같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이터널 선샤인>과 <트루먼 쇼>이다. 특히 <트루먼 쇼>는 그가 단순한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인식에서 탈피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연기력이 빛났던 영화였다. 

  



얼마전 재개봉한 영화 <트루먼 쇼>를 다시 보았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나는 입사한 뒤 첫 근무지였던 강원도 태백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은 ‘탄광촌 오지’에서 근무하는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위로해주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곳은 너희들 생각과는 많이 달라.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이지”라고 주저하지 않고 답변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근거는 다름 아닌 ‘극장’이었다. 시내에 있는 유일한 영화관이 태백을 ‘부족함이 없는 곳’으로 판단하게 한 단 하나의 기준이었다. 짐 캐리의 새로운 영화 <트루먼 쇼>가 상영된다는 소식에 나는 즉각 태백의 ‘유일한’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영화가 끝나고 집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가며, 어느새 가로등 위에 환하게 켜진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의 삶도 중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섬에 사는 30세 평범한 회사원 트루먼은 누구나 꿈꾸는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아내, 좋은 친구들, 안정된 직장을 가진 그는,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삶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으며, 대본대로 짜인 인생을 살고 있다. 그의 친구, 이웃, 심지어 아내마저 모두 다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조금씩 이상한 점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되고 그때부터 자신의 일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정해진 대로 인생을 살아갈 뿐이다. 그곳을 떠날 수도 있지만 결코 떠나지 못한다. 바다는 무서운 곳이라며 주입받은 교육 탓이다. 어린 트루먼이 모험을 떠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세상은 위험한 곳이야! 이곳이 가장 안전해!"라고 속삭이며 포기하도록 만든다.


어려서부터 주입식으로 교육을 받게 되면, 트루먼이 그랬던 것처럼 그로부터 어긋난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한글을 배울 무렵부터 나는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워야만 했다. 정해진 분량을 외우지 못하면 종아리를 맞았다. 그 어린 나이에 천자문을 배워야만 하는 까닭은 장남이자 장손이므로 족보를 알아야만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틈만 나면 ‘나의 시조는 알에서 태어난 김알지 대왕이며 내 몸속에는 신라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귀가 따갑도록 말씀하셨다. 그것이 ‘나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하는 울림이 마음속에 일렁였지만, 무섭고 엄한 아버지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세뇌되어 갔다. 

중학교 2학년 반장선거 때였다. 후보로 추천되어 소감발표를 위해 앞에 나가서는 학급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몸속엔 신라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뽑아야 해.” 

물론 야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충격이었던 것은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을 때였다. 그것은 내가 의도한 말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정해져 있는 길을 걸어왔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얘기 들으며 자랐다. 남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게 죄악에 가까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모범생으로 자라났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고, 사람들이 말하는 꽤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다. 승진도 빨랐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공허했다.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부족한 것을 아무리 채우려 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채우려 하면 할수록 허무해졌다. 남들에겐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 자신은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엔 알 수 없는 씁쓸함과 공허함이 가득했다. 그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떨 때 행복하고 슬퍼하는지 나 자신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타인이 원하는 모습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왔지만, 과연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바쁘게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단지 직장에서 맡은 소임이 나의 존재 자체라 착각하고 살아오면서 어느덧 나의 열정과 욕망은 사라졌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열망은 애써 외면되어 왔다.     


마침내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트루먼은 거대한 세트장으로부터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시도한다. 그리고는 한 번도 나가본 적 없으며, 어렸을 때부터 위험한 곳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바다를 향해 뛰어든다. 그가 과감하게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기는 장면에서, 나는 하마터면 크게 박수를 칠 뻔했다. 그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개척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위대한 승리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꿈을 향해 갈급한 도전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삶과 보이는 삶의 틈새에는 의식적인 그 무엇이 개입된다. 세상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을 소외시키고, 위선적인 인생을 만든다. 트루먼의 이름은 True-man에서 따왔지만, 자신의 이름과는 다르게 그는 조작된 인생을 살아왔다. 지극히 당연한 일상을 근원부터 의심하기 전까지 그는 행복한 듯 살아온 것 같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트루먼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실시간 통제당하며 짜인 대로 살아가면서, 장난감처럼 예쁜 집에 멋진 자동차를 굴리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면 트루먼은 바다를 향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트루먼은 남들이 바라는 안락한 삶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살아내는 삶을 선택한다. 그것이 행복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모두 ‘잘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애써 무시한 채 남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미 SNS, 유투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누군가를 엿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삶도 영화 속의 거대한 세트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진실한 인간(True-man)’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타인의 꿈이 아닌 나 자신의 꿈을 꾸어야 한다. 남에게 보이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늘 고민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깜짝 놀랄 것이다. 사실 남들은 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버트런드 러셀의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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