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광 Apr 26. 2022

D-2.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D.R.I.V.E.

제 두 번째 책 <D.R.I.V.E.>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작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가 갑작스레 인생에서 만난 사막을 다룬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이 주관적인 에세이와 가깝다면, <D.R.I.V.E.>는 에세이와 자기계발서의 중간어딘가쯤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지도보다 나침반을 의지해야 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영어 부가 의문문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배웠고, 원기둥의 면적을 구하는 법과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도 배웠다. 그러나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여행을 통해서였다. 기대하지 않고 떠난 그 모든 곳마저 새로웠다.

거대하고 광활한 풍광과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건축물 앞에서 여행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진정한 발견의 기쁨은 스쳐 지나가는 길 위에서 생겨난다.    

 

낯선 길 한쪽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이곳에 앉았던 사람들이 갖고 있었을 사연을 궁금해하고, 좁은 골목에 걸려 있는 빨랫줄 아래를 지나갈 때 맡을 수 있는 정결한 면 냄새에 문득 여행자로서의 행복감을 누리기도 한다. 어느 외딴 도시의 길 귀퉁이, 작은 빵집 앞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을 때의 촉감은 그 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에 있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여행은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준다.     


여행은 길 위에서 시작되고 길 위에서 완성된다. 길에서 보고, 만나고, 느끼며, 스쳐 가는 시간이 모여 여행이 되는 것이다. 반면 단지 유명한 장소나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한 여행은 참된 여행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고, 스스로 계획하지 않은 여행은 온전히 자신의 여행이 되기가 어렵다. 단체 패키지여행은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니는 여정에는 여행 자체가 가져다주는 설렘과 흥분이 존재할 수가 없다.



아주 오래전, 패키지여행으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로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는 명성만큼이나 대기 줄이 가장 길었다. 작품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둥그렇게 울타리가 쳐져 있는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앞쪽에서는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성들이 쏟아졌다. 위대한 작품을 마주했을 때 절로 나오는 감탄사였을 것이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육안으로 보게 된 <모나리자>는 글쎄, 예상보다 너무 작았다. 멀찌감치 볼 수밖에 없던 천재의 위대한 작품은 그저 헌책방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미술 도감 복사본과 별다른 점이 없었다. 과연 이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단 말인가? 실망이 지나치자 후회마저 밀려왔다. 머릿속에는 많은 인파 속에 패키지 여행사의 깃발을 놓치면 큰일이라는 걱정만이 가득했다.     

똑같은 작품을 보고 누군가는 깊은 탄성을 뱉어내고, 누군가는 감흥은커녕 실망마저 느끼는 건 작품 탓이 아니다. 작품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없다면 별다른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을 단순히 눈으로 확인하는 여행은 진정한 기쁨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그 이후로 나는 패키지여행을 다니지 않는다. 대신 여행을 가기 전 여행 일정을 계획하고 꼼꼼히 일정표를 만든다. 항공편과 숙박시설 예약은 물론이고, 가고자 하는 장소에 이르는 현지 교통수단과 가까운 식당들도 미리 검색해놓는다. 심지어 현지 랜드마크들과 식당들을 이곳저곳에서 비교해가며 사전에 리스트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리 일정을 짜 놓는 것이 은근히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행 일정을 상세하게 세워놓으면 세워놓을수록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는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되었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이동하고 정해놓은 식당에 찾아가는 일이 마치 숙제를 해치우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의 참된 기쁨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발견에 많은 부분이 있음에도 나는 스스로 그러한 과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완벽하게 짜 놓은 여행 일정이라 하더라도 현지에서 계획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생기곤 했다. 예컨대 현지 철도노조 파업으로 인해 도시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든지, 숙박시설을 예약했는데 이틀 전에야 초과예약으로 환불처리를 해주겠다는 내용을 통보받고, 다른 숙박시설을 뒤늦게 알아봤지만 예약할 수 없어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전에 외국에서 여행을 마치고 다른 나라로 타야 할 비행기를 놓친 적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제대로 공지를 안 해준 항공사의 잘못이 더 크다고 항상 강조한다). 내가 완벽하게 짜 놓은 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 이후의 여행 일정은 애초의 완벽했던 내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점에서 인생은 여행과 닮아 있다. 여행처럼 우리 인생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다. 아니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자신의 삶을 계획하면서 그 어떤 누구도 스스로 골짜기를 계획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슬픔이나 좌절을 계획하지 않는다. 아무도 갈등과 외로움을 계획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계획 속에서는 희망과 기쁨, 즐거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다가오면 당황하고 힘들어한다. 그리고 때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때로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삶이 나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던졌을 때 나는 충격에 휩싸이며 ‘나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도무지 믿기지 않아.’라며 현실을 부인하고 도통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혼란과 괴로움은 더욱 깊어져만 갔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현실을 인식하고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환경과 조건들이 우리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시련을 만나기 전까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이 실상 그다지 대단하지 않으며,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것들이 오히려 영혼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된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당면한 문제에서 자유롭게 놓여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언제쯤에야 의무감이나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한다. 언제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하지만 정작 문제에서 벗어나도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결코 자유롭게 살아가지 못한다. 회사를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은 회사를 떠난 뒤 그래도 회사에 다닐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평생을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얘기하던 사람들은 막상 주위에 모든 이들이 떠나고 조용해지면 그때부터는 고독하다고 외롭다고 난리를 친다. 문제와 부담이 사라지면 그다음에는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늘 예상하지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 항상 문제 속에서 신음하며 신경을 써야 하는 일들이 쌓여간다. 매 순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태껏 살아 온 방식과는 다르게 삶을 바라봐야 한다. 자신의 깊은 내면과 맞닿을 수 있는 새로운 눈으로 삶을 이해해야 한다. 내게 생기는 문제 대다수는 외부 탓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행여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이유가 내게 근사한 루이뷔통 가방이 없어서, 멋진 자동차가 없어서 무시당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 숲속에 들어가 2년 2개월간 손수 지은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쓴 책이다. 그는 책에서,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스스로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부와 풍요의 노예, 권력과 지위의 노예, 끝없는 욕망의 노예로 살다 보니 자유롭지 못하고 여유로움도 없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노예의 삶에서 주인의 삶을 사는 인간으로 변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소로가 얘기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갈고 문지르고 다듬으면서 열정을 다해 자신의 삶을 조각해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으며, 설사 누구한테 맡긴다 해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돌아온다. 

그러기에 때로 바람에 흔들리고 돌부리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균형을 잡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삶은 충분히 의미를 이루고 가치를 만들어 낸다.     


1974년 8월 7일, 지금은 테러로 사라지고 없는 뉴욕 쌍둥이 빌딩 사이 지상 400M 높이의 줄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에게 모든 이목이 쏠렸다. 그는 프랑스의 공중곡예사인 필립 패티였다. 당시 세계 최고로 높았던 빌딩 사이를 45분 동안 횡단하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친 그에게 기자들은 앞다투어 균형을 잃지 않고 건널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질문했고,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한순간도 가만히 서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몸의 중심을 수없이 움직였습니다.“     

진정한 균형은 평안하고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전진과 변화 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줄을 타고 건널 때 땅을 보지 않고 오직 건너편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건너야 하듯이, 자신만의 생생한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 디딜 때 인생의 균형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에 있다. 인생에서 달성해야 할 목표 중 하나는 자신을 온전히 알아가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자신의 재능은 어디에 있는지, 열정은 무엇에 발현되는지, 내면에 있는 욕구와 동기는 무엇인지 관심도 없다면, 이것은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에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노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삶은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여행이며 정처 없는 주행이 될 뿐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작가의 이전글 D-1.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에 답하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