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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광 May 02. 2022

D-3. 차가 멈추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D.R.I.V.E.

제 두 번째 책 <D.R.I.V.E.>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전작 <달리는 낙타는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가 갑작스레 인생에서 만난 사막을 다룬 내용이라면, 이번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만날 수 밖에 없는 사막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이 주관적인 에세이와 가깝다면, <D.R.I.V.E.>는 에세이와 자기계발서의 중간쯤 될 것 같습니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습니다. 설령 길이 있다 하더라도 돌아보면 어느덧 모래바람에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사막도 마찬가지입니다. 길 하나 없는 그곳에서는 지도보다 나침반을 의지해야 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가치와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막을 건널 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내가 가장 즐겨 갖고 놀던 장난감은 ‘범퍼카’였다. 일명 ‘박치기왕’이라고 별명 붙인 장난감 자동차에는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었고 차체보다 더 큰 범퍼를 갖고 있었다. 다른 장난감 차들을 겨냥한 후 뒤로 당겼다가 놓으면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가 충돌했다. 이윽고 다른 차들은 그 충격으로 뒤집히거나 공중에 튀어 올라 난장판이 되었고, 난 그 순간이 너무나 즐겁고 짜릿했다. 내 범퍼카는 보란 듯이 너무나 멀쩡했고, 설사 부딪혀 부품이 일부 떨어져 나가더라도 재조립이 쉬워서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인생도 이랬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세상의 규칙에 얽매여 혼돈 속에 머물게 되고 학교를 졸업하면 어느덧 사회의 톱니바퀴가 된다. 그러고는 평생 돈을 벌기 위하여,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때로는 외롭지 않기 위해 살아가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와 같은 중요한 가치는 뒤로 미루고 만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이끌려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만 확인하게 된다.    

  

“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렇게 사는 게 잘사는 건지 잘 모르겠어. 가족은 모두 제각각이고, 어쩌다 같이 있게 되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야. 이제는 먹고살 만해졌는데 왜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을까?”

오랜만에 상갓집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저녁을 먹다 말고 씁쓸하게 웃으며 얘기를 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서 제법 높은 직책을 지닌 그 친구는 영정사진이 있는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듯했던 동창은 갑작스러운 친구의 부음을 듣고 모인 우리 앞에서 자신의 삶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 꺼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을 듣고 15세기 인도의 시인 카비르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향노루 한 마리가 숲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향기를 맡고 그 냄새를 쫓아 온종일 숲속을 뒤지고 다닌다. 정작 그 냄새가 자신의 땀구멍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사향노루는 그렇게 평생을 헤매고 다니는 운명이 되고 만다는 내용 말이다. 그 친구의 축 처진 어깨와 한숨은 행복을 열심히 찾아다니지만, 오히려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우리네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행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대부분이 성공이라는 목표지점을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 무조건 달려가기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조차 없이 그저 지금 가는 길만이 자신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길의 끝에 섰을 때 열심히 걸어왔지만, 결국은 돌아보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 길을 스스로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누군가의 발자국만을 밟으며 쫓아왔을 뿐이다.     


우리는 매우 부유한 사람 중에 우울증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곤 한다. 구체적인 연유와 배경은 알 수 없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물질과 성공이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금세 자신의 스마트폰에 질려서 새로운 모델을 갖고 싶어 하고, 보너스를 받으면 처음에는 흥분되지만, 그 흥분은 놀랍도록 빠르게 퇴색된다. 우리는 새 스마트폰을 사면, 좋은 차를 사면, 더 큰 집이 생기면 행복해지리라 생각하지만,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행복학 분야 전문가인 제프리 색스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005년 이후로 미국인의 소득은 점진적으로 증가했으나 행복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말하면서, 이는 행복이 물질적인 요인보다 개인적, 사회적 요인들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프린스턴대학교 연구팀은 건강과 행복에 관한 갤럽 조사를 토대로 기본적 필요가 충족된 후에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돈이 더 많으면 전체적인 삶의 만족도는 올라갈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연봉 약 7만 불 근처에서 멈추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만 놓고 봤을 때는 미국의 중산층이나 세계 최고 부호인 일론 머스크나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인생은 표지판도 없는 낯선 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그러기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듭될 때마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면 가는 길이 아무리 어렵고 흔들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향만 확실하다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로 가겠다’라는 구체적인 결정도 하지 않은 채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목적지만을 향해 달려간다. 진지하게 자신답게 살아가는 방법은 내려놓은 채 빠른 승진, 좋은 자동차,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인생이라는 길에 들어선다.



그러면서 자신의 원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학교나 직장으로 향하지만 왜 그곳을 가는지를 잊어버린다. 습관처럼, 관성대로 가고 있을 뿐이다. 그건 가속페달을 밟은 채 질주하고는 있지만 마치 핸들이 없는 차량을 운전하는 것과 같다.      

사실 우리는 하루하루 일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에도 힘에 부쳐 자신이 가는 길을 살펴볼 여유도 없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리고 일찍 도착하면 더욱 행복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핸들도 없는 차량은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밟을수록 목적지는커녕 전혀 엉뚱한 곳에 충돌하고 부서지고 만다.     


사회 초년생 시절, 중고차를 처음 사서 한동안 잘 타고 다녔다. 첫 번째라는 의미에는 늘 많은 애정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이틀이 멀다고 쓸고 닦고 그것도 모자라 가끔 왁스질도 해주었다. 차를 몰았다기보다는 차를 받들어 모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차가 도로에서 느닷없이 멈추는 경험을 했다. 갑자기 시동도 걸리지 않았고 핸들도 움직이지 못해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은 지금 다시 상상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정말이지 도로 한 복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견인 차량과 함께 도착한 보험회사 직원이 그날처럼 근사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누구나 차가 멈추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오해나 비판을 받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한다. 더구나 그러한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올뿐더러 전혀 준비되지 않는 상태로 맞닥뜨리게 되기에 더욱 고통스럽고 괴롭다. 역경이나 인생의 위기에 부딪힐 때, 우리는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삶은 온통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로 느껴진다. 마치 자동차를 몰고 거친 산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것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어디선가 난데없이 불쑥 등장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통스럽다는 것은 곧 변화할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각오를 다짐하곤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기에 고통과 시련은 변화로 향하는 첫 계단인 동시에 우리의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진실한 감정들과 맞닿을 수 있게 해주는 관문이 된다.

랍비 해럴드 쿠슈너는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에서 자신의 어린 아들 엘런을 잃은 뒤의 경험을 예로 들며 우리 바람과는 달리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고는 삶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설명한다.      

차가 멈추었을 때 그 시간을 단지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귀중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왔을 법한 자신에게 무엇을 향해 그토록 바쁘게 살아왔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매번 누군가 자신에게 어느 길로 가라고 정확하게 지시해 주기 바라왔지만, 그런 길은 대부분 잘못된 길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삶이 재미없고 힘들고 고달프고 무기력한 이유는 뻔한 목표, 세상에 찌든 목표, 틀에 박힌 목표만 있기 때문이다. 가슴을 설레게 하고 영혼에 감동과 전율을 심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박힌 목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하면 할수록 설레고 즐거운 일,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측량되지 않고 수량화되지 않은 길을 찾아내야 한다.” 세스 고딘이 『린치핀』에서 언급한 얘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38만 4,400km, 태양까지는 1억 5,000만km, 태양계에서 가장 먼 명왕성까지의 거리는 무려 60억km가 넘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바로 자신의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이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친절한 해답보다 스스로 내면의 고민으로부터 나온 해답을 찾아야 한다. 어디로 가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부터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인생에서 바라는 걸 이루고 싶으면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차는 갑자기 멈추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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