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

끄적여 본 잡담

by 황교진

1. 1986년 배재고에 입학하면서 등굣길에 아펜젤러 동상을 보며 채플시간이 좋아졌고 자연스레 교회에 발을 디딤. ㅡ 나를 전도한 건 1885년 배재학당을 세워 근대 교육을 이끈 아펜젤러 선교사!


2.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가 고등부 회장인 그 첫 교회에서 새신자의 소외감을 덜기 위해 중고등부 신문반에 들어감. 이것도 누군가 권유해서가 아닌 내 의지로! ㅡ 사실 그 신문반에 내가 맞은 큐피드 화살의 대상이 있어 그녀 가까이 있고 싶었음. 신문반 이름은 뉴비잉(New Being). 새로운 존재로 되어 가는 복선이 담긴 이름.


3. 신문반 편집부장 선배는 재수생이었는데 니체를 비롯한 여러 철학 책과 고전을 섭렵한 문학적인 형이었음. 이 형은 내가 신문반에 찾아간 날 아침에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고 함. 내가 온 건 기도응답이라며 반김. 나는 편집부장 형의 환대와 그녀를 매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학교 생활보다 교회 활동에 몰입.


4. 신문에 실은 내 첫 글에 대박 칭찬을 쏟은 편집부장 형은 내게 매주 에세이 한 편을 써올 것을 지시함. 새신자인 나는 무거운 숙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속으로 쾌재를 부름. 내가 글을 써오면 손글씨로 신문에 실어주는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


5. 그때부터 내 가방엔 연습장 두 권이 들어 있음. 시험공부 자습장과 에세이 습작노트! 신앙의 기초가 없으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어 수많은 습작을 쉬는 시간마다 반복. 학교 친구들은 말없이 혼자서 뭔가 끄적이며 있는 내게 '내적 갈등'이란 별명을 붙임. 아, 핸드폰 없고 TV 시청에 흥미 없던 그 시대의 내 놀이는 얼마나 품격이 있었던가.


6. 2학년 진급 전에 문과 다섯 반, 이과 일곱 반을 나누면서 선생님들은 문과로 몰리지 않도록 하려는지 가정 형편 어려운 놈들은 문과로 신청하지 말라고 겁박함. 문과는 밥 먹고 살기 어렵다며 부연 설명. 쳇! 그때나 지금이나 이 땅의 참 교육은 아득함.


7. 지극히 문과 성향이었던 나는 등록금도 제대로 못 내는 형편에 이과로 신청. 수학 2-2 정석을 푸느라 괴로워하며 그 고통을 습작노트로 달램. 공교육의 모순을 적시하며 이문열 소설, 이해인 수녀님 시, 심훈의 상록수 등 문학의 세계에 심취. 문과 친구들 작문 숙제를 대신해 준 적도 있는데 '시간'이란 제목의 에세이로 기억함, 그 친구 엄청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8. 게다가 교회 신문반 뉴비잉의 편집부장 형이 재수에 실패 후 일찌감치 군입대하는 바람에 후임으로 내가 편집부장에 오름 ㅡ 장차 출판편집자 인생이 교회 고등부에서 준비되고 있었음에 돌아보며 전율!


9. 나는 그녀를 편집부원으로 두고 매주 설렘, 떨림, 행복, 아쉬움, 슬픔, 고통의 질풍노도 시기를 보내면 감성적인 글쓰기 습관에 몰입.


10. 당시에 나온 들국화 2집, 이문세 4집 음악은 내 짝사랑의 고통을 위로하는 CCM이었음. 내 책상 옆에 고대 수교과 전공의 사촌 형이 공부하던 책상에 꽂혀 있던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는 고딩이 읽을 책은 아니었으나 손에 잡고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던 책. 내 정신에 깊숙이 민주와 정의의 의식을 뿌리내려 주었음. 한편으론 최덕신의 주찬양 앨범을 듣기 시작한 때도 그때.


11. 고3이 되면서 편집부와 그녀를 떠나 공부에 집중하자는 생각에 어머님이 다니시던 교회에 출석. 이 교회는 그 후 10년간 내게 영향을 미침. 집과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던 올림픽공원이 개장하여 88서울올림픽을 치르는 모습을 보며 다른 나라 풍경처럼 느껴져 고3의 고달픈 심정에 소외감마저 안겨줌. 한 해 선배, 88학번의 자유가 부러움.


12. 1989년 재수를 함. 단과반, 종합반 다니며 현대단편소설에 심취. 습작노트의 글은 갈수록 쌓였고 고통의 글쓰기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절감. 마음은 첫 교회에서 좋아한 그녀가 잊히지 않아 괴로움. 4년째 못 잊는 마음에 감수성만 깊어짐.


13. 1990년 삼수를 함. 가방에 수험서 넣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연극을 많이 봄. 신촌 홍익서점 꼭대기 소극장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감상한 후 주소를 적어냈더니 집으로 연극 초대 티켓이 계속 날아와... 영화관보다 연극무대가 좋았던 건 캄캄한 영화관 속에 혼자 있으면 자아상이 다운됐기 때문. 친한 친구들은 90학번으로 거의 진학해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 성경 일독을 하며 새벽기도도 다니면서 일기를 쓰며 스스로 관리하는 법을 체득.


14. 고1 때부터 짝사랑한 그녀는 롯데월드 지하 1층 롯데리아에서 알바를 해 거기 가면 볼 수 있었음. 강남도서관에서 공부하다 견딜 수 없을 때는 잠실역에서 내려 롯데월드 분수대 기둥 뒤에 멀찍이 서서 잠깐 바라보고 온 날도 있었는데, 대학에 간 후에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하며 습작 노트에 글로만 토로. 3수생이면서 공지영 선생님이 쓴 운동권 학생 이야기인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읽고 가슴 서걱거리는 슬픔을 느끼기도. 공지영 작가님이 페북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됐을 때 페친이 되고 내 글마다 좋아요 막 눌러주실 때 얼마나 행복했던지! 페북 넌 정말 쓰담쓰담~ 땡큐!


15. 1991년 대학 진학. 첫 엠티를 경험. 그때나 지금이나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엠티에서 감기만 걸림. 3월에 명지대 1학년 강경대 학우가 백주대낮에 전경들 곤봉에 맞아 사망. 가만히 숨 쉬는 것도 힘들 만큼 분신정국이 이어짐. 젊음, 낭만 따위보다 신앙과 삶 사이에서 고민. 4학년과 복학생 외에는 선배가 없어서 스스로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데 익숙. 독서와 일기 계속 그리고 밤에 나가 새벽시장 일을 하시는 어머니 생각하며 적당히 방황.


16. 운동권에도 IVF 동아리에도 적응하지 못하다가 겨울방학에 참가한 IVF 서울지역 수련회에서 회심함. 박영덕 목사님의 에베소서 강해설교에서 나의 고통, 고독, 불안의 문제를 해결. 수련회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이 천사로 느껴지는 변화를 체험하며 그 은혜로 주변의 많은 분께 감사 편지를 씀.


17. 박영덕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와 함께한 2주 수련회를 연속으로 참가해 신앙이 무엇인지,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기쁜지, 캠퍼스를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깨달음.


18. 수련회 마치고 방학을 어떻게 잘 보낼까 계획하던 중에 입대 영장 나옴. 3수생은 연기 불가. 나 때문에 기도 많이 하신 박대훈 간사님은 "교진이가 하나님을 깊이 만난 후 군에 가도록 기도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캠퍼스를 좀 섬기다가 입대하도록 기도할 걸 그랬다"라고 말씀해 주심. 군에 가기 전에 IVF와 친한 건축과 학우들에게 편지를 씀. ㅡ 늘 글쓰기로 삶의 새로운 지경으로 전환!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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