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김호기 교수, “같이, 함께, 더불어 느리게 살기"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400만 명, 사망자는 28만 명에 다다르고 있다. 백신 개발이 문제 해결의 근본책이지만, 의학자들은 1~3년 정도의 시간을 예상한다. 코로나19의 높은 전염성과 상당한 치사율이 일으키는 지구적 공포가 언제 종식될지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인류 사회의 변화와 미래에 대해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의 고견을 들어보았다.
5월의 백양로가 한적한 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위당관으로 걸어가는 경사로에서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초여름 날씨지만, 바이러스 폭풍은 캠퍼스의 낭만을 거둬내고 있었다. 위당관에서 만난 김호기 교수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과목에 관심이 많았고, 79학번으로 문과대학에 입학 후 1학년 때 수강한 사회학 개론이 결정적으로 사회학 공부의 동기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전병재 교수, 안계춘 교수, 박영신 교수, 송복 교수의 팀 티칭으로 배운 수업에서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자극돼 평생 사회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학부 시절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였기에 사회학이 목표로 하는 사회비판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김호기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며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진단할까? “부정적인 면을 먼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인간 사회가 위험사회임을 본격적으로 일깨워주면서, 의학적 위험이 경제적 위험으로 전이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 사태는 단순한 사건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 높은 개념인 국면사로 볼 수 있죠. 상당히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되는 역사적 모멘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 상당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의료문제를 포함한 안전 문제, 경제 위기 문제, 이와 연관된 사회 전반적 변화가 진행되며 큰 시련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긍정적인 면으로 한국만의 방역이 성공적인 부분을 언급한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타난 것은 1월 20일입니다. 이후 우리나라의 의학적 대응은 상당히 우수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 국민의 높은 공공의식이 결합돼 세계가 ‘K방역’이라 부르며 주목할 만큼 모범적으로 대처하고 있죠.”
김 교수는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코로나19가 촉발시킨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현재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당장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전 세계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며 국제 사회를 신음 사회로 만들고 있지만, 한국의 방역과 대처는 선진국이 주목하며 부러워하고 있다. “정부가 메르스 경험을 기반해 사회적 거리 두기와 확진자 동선 공개를 시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스웨덴의 집단면역전략과 중국의 봉쇄전략보다 한국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확진자 동선 공개가 더 우수한 방역으로 인정받고 있죠.”
그러나 국민의 사생활 침해 문제를 언급한 해외 언론도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사회가 어떤 합의를 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서유럽이나 미국은 확진자 동선 공개에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에 있어 합의를 끌어냈고, 확진자 확산을 막아냈습니다. 한 개인이 민주주의에서 누려야 할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지에 관한 사생활 보호 문제는 생명과 안전 부분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이며 선험적인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또한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했다. “신천지로 인해 확진자가 크게 늘었을 때 수많은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간 일은 뭉클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드라이브 스루 검진 또한 훌륭한 아이디어였죠.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과 이런 창의적 발상이 K방역의 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더불어 국민의 적극적 협력을 중요한 부분으로 강조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고 해도 적극적 호응이 없다면 효과를 보기 어렵다.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며 정부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이 한국적 방역의 성공적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정부, 의료진, 국민의 3요소가 결합해 K방역의 모델을 만들어낸 것은 코로나19 폭풍의 어둠을 비춘 빛과 같은 우리의 저력이다.
“의학적 사건인 코로나19 사태는 경제 위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실물 경제의 위기가 금융시장으로 전이됐고, 다시 금융시장의 어려움이 실물 경제로 전이되는 코로나19발 경제 위기가 진행되고 있죠.”
김 교수는 당면한 문제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통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빈곤한 고령 세대와 사회적 약자의 삶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들었다. 이에 대한 대처로 확대 재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강력한 재정정책을 써서 재난보조금을 지급해 소득을 보존시키는 방안을 추진함으로써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을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일차적 주체는 정부이며, 확대 재정을 통해 사회경제적 삶을 지원하고 개선시켜야 함을 강조했다.
코로나 경제 위기는 전반적인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경제 성장은 마이너스로 국민 전체에 피해가 가중될 것이다. 당장 올여름 구조조정 문제가 핫이슈로 부상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대량 해고로 나타날 것이다. 이 문제를 포함해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과제가 부과될 것이며, 국가가 제대로 된 계획안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한국 경제가 이 위기를 극복할 활력을 찾는 거시적 경제 회복 안이 필요합니다. 올겨울에 가시화될지 모르는 2차 파고를 염두에 두고 정부가 획기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2019년 코로나19에서 알 수 있듯이 전염병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계속 자연을 파괴하면서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는 점입니다. 자연 파괴로 인수공통감염병의 원인인 동물과의 접촉이 늘어났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코로나19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환경보호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코로나19는 생태학적 의식이 인류의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이제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느린 삶’에 관해 절실한 고민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밀도 높은 도시화의 삶에서 생태친화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는 파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경쟁의 심화를 방치하며 살아왔다. 자연파괴와 과도한 경쟁은 각각 전염병과 피로사회를 만들고 말았다. 따라서 자연과 공존하고 경쟁을 줄이는 삶, 즉 느린 삶이 요구된다.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 세대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가비전 태스크포스(TF) 단장을 역임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가져야 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승자독식에서 약자 보호의 시스템을 강화해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 규범의 문제이며 마땅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같이 살자, 함께 살자, 더불어 살자’인 것이죠. 무엇보다 사회적 차별을 줄여야 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진짜 선진국이죠. 이는 정권적인 과제라기보다는 국가적 과제라고 생각해요. 진보든 보수든 이념을 넘어서 추진해야 할 가치입니다.”
문제는 바이러스인데 여기에 많은 정치적 의미를 붙이고 있다. 한국 정치는 어떤 변화와 성숙이 필요할까? “국민의 생존과 안전에 관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는 탈정치적 이슈라고 생각해요. 전염병 방역과 대응은 정치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과 관계된 일에는 여야가 합의해 공동의 대책을 세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이슈를 정치화할 수 없으며, 탈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정치권이라 하더라도 탈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방역을 잘하면 야권도 국가적 사안에 대해 협력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고, 정부 역시 야권과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적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는 정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사회의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영역이고, 국회는 법을 만들고 정부는 법을 시행하는 기관으로서 최종 결정의 단위인데 정치적 이슈와 비정치적 이슈를 가늠하지 못하면 국민의 심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한국 정치는 모든 쟁점을 정치화하는 성향이 있다. 21대 총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함의가 여기에 있다.
개인주의가 강화된 시대에 전염병의 위기를 맞아 국가가 개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가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쓴다.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국가의 비중과 역할, 위상이 약화되면서 개인주의가 강화됐죠.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방역, 치료, 예방, 백신 개발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스웨덴의 집단면역전략, 중국의 봉쇄전략 또한 국가가 결정하는 것이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국가 역할이 강화되었는데 중요한 점은 국가 개입이 강화된 나라의 방역과 대응 결과가 좋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많은 사람이 국가의 귀환을 말했지만,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기조가 유지됐다. 그러다 예기치 않게 바이러스 폭풍이 국가를 귀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가의 역할이 강화된 것은 현재가 비상 국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높은 수준의 국가 역할은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원래 자리로 국가가 되돌아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김 교수는 국가의 귀환에 대해 가치판단을 해봐야 한다고 첨언한다. 민주주의는 사실상 개인주의에 기반한 자유주의다. 때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와 국가주의 간에 긴장이 나타날 수 있다. 비상시국에서는 국가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에 대해 국민이 동의한다. 그러나 정상 국면을 회복하면 국가주의보다 민주주의를 더 중시돼야 한다. 바이러스 폭풍이 다시 불어오면 적절한 수준의 강화된 국가와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모델을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한다.
코로나19의 공격에 선진국뿐만 아니라 WHO 등 국제기구가 무능해 보인다. “유엔, WHO, G20 등 우리가 통칭하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바이러스 폭풍의 위기 국면에서 얼마나 허약한지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글로벌 거버넌스를 과대평가했다는 점을 깨닫게 됐죠. 그러나 여전히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능은 중요합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현상이라 지구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바이러스는 주기적으로 인류를 위협할 것이고 이에 대응하려면 백신 개발을 필두로 해서 지구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게 마련이죠.” 김 교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무능함을 비판하기보다 재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WHO는 물론 유엔도 재편하고, G20 같은 국가 간 기구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 위험은 전 지구적으로 덮쳐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코로나19가 던진 중요한 문제 제기로 서구중심주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들었다.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우수했다. 한국의 공공의식을 그는 협력주의라는 현대적 개념으로 지칭했다. “우리의 협력주의적인 정신과 태도가 서구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이번 사건만으로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섰다고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서구가 우리보다 낫다는 의식으로부터는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고려해 한국을 평가할 때 미국, 유럽, 일본 등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국민의 자존심을 일깨워준 국가적 체험이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우리는 학문적 차원이 아닌 국민적 차원에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실마리를 얻은 셈이다.
김 교수는 3개월째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니 학생들이 보고 싶다고 한다. 대학 생활이 꼭 강의만 접하는 게 아니고, 캠퍼스 생활이 하나의 교육 과정인데 아직 캠퍼스에 들어오지 못한 신입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또한 학생들이 생태학에 관심을 가지기를 당부했다. 결국은 바이러스 폭풍과 기후 위기는 인간이 파괴한 자연의 역습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인간만이 아니다. 자연이라는 주인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문제를 탐구하여 생태 친화적인 삶을 살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79학번으로 입학해 진리 탐구와 자유를 누리며 연세대학교가 최고의 대학임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위당 정인보 선생과 외솔 최현배 선생께 국학과 한글 사랑을 배웠고, 존경하는 연세인으로 이 두 분을 꼽았다. 만 19세에 신촌 캠퍼스에 들어와 유학 기간을 빼고는 인생 대부분 시간을 연대에서 보낸 그는 연세인으로 향유한 감사를 후배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고 전했다.
_2020년 5월 6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인터뷰(인터뷰어: 황교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