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교진 Jul 05. 2021

팬텀싱어 올스타전 공연 후기

행복한 감탄과 감동

어렸을 때 나는 공상을 많이 하는 아이였다. 하늘을 날아올라 구름에 가까이 다가가는 공상이 나의 주된 상상이었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친척들 집을 떠돌며 지낸 그 시절, 친구는 구름과 흙이 전부였다. 유소년 시절에 현실을 잊기 위한 그 하늘을 나는 공상의 판타지는 입시 교육이 전부였던 고교 시절에는 짝사랑으로 전환되었다. 괴로운 현실을 떠나고 잊기 위해 교회 후배를 오래 짝사랑했고, 그 짝사랑을 5년이나 지니고 간 것은 흑역사 같은 입시 공부 시기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동탄으로 이사한 후 너무 좋은 자연환경의 풍성한 빛이 내 마음의 그늘을 줄여주었지만, 점점 커진 현실의 절망은 무기력과 패배감을 심화시켰다. 그때 내게 판타지처럼 다가와 위로해 준 것이 팬텀싱어 올스타전이다. 다시 보기 역순으로 팬텀싱어 시즌 3, 2, 1을 모두 감상하며 행복했다. 소감을 남기기로 하고 글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열 편은 쓸 수 있을 것 같은 많은 감동과 공감 포인트를 줄여서 한 편으로 요약한 것이다.


나처럼 팬텀싱어의 팬인 신은경 교수님이 전화를 걸어주어 한참 수다를 받아주셔서 기뻤다. 내 청소년기에 스타 앵커로 사모했던 신 교수님 블로그에서 여러 편의 라포엠 유채훈 씨 글을 읽고 언제 마지막으로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던 미소를 되찾기까지 했다. 신 교수님은 나보다 더 팬텀싱어를 사랑하시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 글에서 현장에서 직접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소망을 그냥 넘기지 않은 분이 계셨다. 같은 교회 집사님인 김 교수님이 <팬텀싱어 올스타전 갈라 콘체르토> 티켓을 선물해 주셨다(나는 이 공연 예매가 오픈한 줄도 몰랐다). 심지어 빛의 속도로 매진된 이 공연 티켓 중에 취소해서 남은 티켓을 어렵게 구해서 말이다. 대학 교수로 여가도 많지 않은 분인데, 내 생각을 해주셔서 고마웠다. 처음 보내주신 티켓은 시즌 1팀인 포르테 디 콰트로, 인기현상, 흉스프레소의 공연이었는데 내 글에서 시즌 3팀을 더 선호하는 것을 보시고, 시즌 3팀(라포엠, 라비던스, 레떼아모르)이 무대에 서는 공연으로 티켓을 바꾸어 보내주셨다.   


50대가 되면서 공감에 대한 열망은 커지는데 그 누구에게도 공감을 기대하기 어렵고, 책임과 의무만 가득한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하는 고단한 현실만 보이는 데서 고통이 쌓인다. 가슴에 큰 구멍이 보여도 그 구멍을 메울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절망감. 나를 치유하는 시간은 멀리해야 할 사치로 보이고, 그 사치에 전념하는 것은 가정을 저버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성악가와 뮤지컬배우로 이뤄진 팬텀싱어 4중창의 화음을 들으면 가슴의 구멍이 ‘어떤 감동’으로 채워진다. 화음 하나하나가 얹어지면서 내 삶의 헛헛함과 공허함이 작아지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소음에 시달려 온 마음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음악으로 풋풋해진다. 베이스, 바리톤, 테너의 크로스오버 음악이 주는 특별한 힘뿐만이 아니다. 네 명의 가수가 서로를 이해하고 북돋우는 따뜻한 눈으로 응시하며 쌓는 화음에서 삶의 외로움이 잊히고 환희가 어린 우정이 그려진다.


6월 4일 금요일 8시 공연이었다. 올림픽공원의 공연장 주변은 팬텀싱어 공연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관객의 대부분은 4050여성들이다. 나처럼 혼자 온 중년남은 보이지 않았고, 2030여성들도 종종 보였다. 성악가들이 부르는 크로스오버 곡을 가장 많이 사랑하는 층이 4050여성인 것은 클래식과 팝에서 위로받고 싶은 일상의 허전함, 품격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큰 세대여서 그렇지 않을까. 생존과 생활, 자녀 교육의 숱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온 가정의 중심에서 언제부턴가 자기 삶의 중심을 찾고 싶은 이들이 팬텀싱어 노래에 가장 많은 감동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매번호로 티켓을 교환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예매자가 가족이냐는 질문에 "아내"라고 하면 티켓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직하게 "친구인 교회 집사님의 아내"라고 했다가 난감해졌다. 본인 외에는 티켓 양수, 양도 금지라고 하여 매니저를 만나 예약자의 전화번호를 밝히고 오늘 공연만 특별히 티켓을 교환해준다는 주의를 듣고 수령했다. 어쨌든 임기응변을 했어야 쉬웠는데 굳이 정직하게 뱉은 말로 집에 돌아갈 뻔했다.



올림픽홀은 관객들 열기로 가득했다.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제대로 쓰고 앉아 감상했고, 거리두기 좌석이 두 줄에 한 줄씩 있었지만, 팬텀싱어들을 직접 보는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기분이었다. 8시 정각, 무대에 라라레(라포엠, 라비던스, 레떼아모르)가 등장해 퀸의 <The show must go on>을 웅장하게 부르며 서막을 장식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에 성악가와 가수들 무대가 사라진 지금, 이 현실은 기적처럼 보였다. 대형 모니터에는 "방역지침에 따라 함성 대신 꼭 박수를 쳐주세요"라고 주의 사항이 계속 나왔지만, 한국 아줌마들(비하 표현 아님^^)의 흥은 팬텀싱어 앞에서는 절제가 되지 않나 보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이 섞여 있고, 팬텀싱어들도 관객들에게 질문해 보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질문도 금지였다.


퀸의 곡으로 합창한 후 레떼아모르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곡으로 올스타전에서 인상적으로 들은 영화 라붐 주제가 <Reality>를 듣는데 시작부터 갑자기 울컥했다. 어머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셨다면... 이 공연장에 나와 같이 손잡고 와서 보고 있다면... 하는 생각에!


바리톤 박현수의 미소가 아름다웠고, 나이는 막내지만 리더인 길병민의 깊은 동굴 울림 베이스가 이 곡을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어 주었다. 김민석의 테너와 단역배우로 팬텀싱어 3에 나와 회를 거듭할수록 놀랍게 성장한 김성식의 화음으로 들은 리얼리티는, 고등학교 때 한밤중에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해 드린 그 길을 떠올려 주었다. 첫사랑을 소환하는 로맨틱 하모니인데 내게 로맨틱한 기억은 엄마의 새벽 출근길, 택시를 태워드리고 그 택시번호를 수첩에 적던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다시 가고 싶은 환상과 꿈이 현실일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현실로 가져오고 싶은 걸까? 리얼리티 한 곡에 동화 같은 기억으로 저문 판타지를 떠올려준 레떼아모르가 고마웠다(보름 전에 감상한 이 공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레떼아모르의 리얼리티를 무한 반복해 듣고 있다).


라비던스는 라라레 중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 강한 팀이다. 공연장에서 들으니 김바울의 인간첼로, 존노의 팝과 성악을 아우르는 가창력, 고영렬의 깊게 뻗는 국악 톤, 황건하의 넓은 음폭에서 그들만의 품격이 느껴졌다. 특히 나는 존노를 사랑한다. 성악을 늦게 시작했지만, 천재로 통하는 그에게서 수줍음과 겸손함 그리고 눈물 감성을 TV로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즌 3 트리오전에서 자신의 나쁜 컨디션 때문에 팀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바람의 되어> 노래를 잘 마친 후 안도하며 눈물 흘릴 때, 결승 무대에서 유학시절 위로받은 <사랑한 후에>를 부르게 해 준 라비던스 동료들에게 감사해할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고운지 볼 수 있었다.


라포엠은 유채훈과 최성훈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대로 설렜다. 역시 안정적으로 들리는 전설의 테너와 국보급 카운터테너다. 정민성은 의외로 유머러스했고, 박기훈은 막냇동생 같은 귀염미가 넘쳤다. 실제로 라라레의 막내는 라비던스의 황건하인데 두 사람이 형, 동생 하기로 한 퍼포먼스에 웃음이 가득했다. 원래는 무대를 촬영하면 안 되는데 유튜브에는 VIP석 관객들이 촬영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8시에 시작한 공연이 11시까지 이어졌다. 라라레가 공연한 첫 무대여서 그런지 노래만큼 팬텀싱어들이 하고 싶은 말도 많은 무대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귀갓길 버스 시간이 걱정되어 무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올스타전 곡들도 좋았지만, 시즌 3에서 부른 곡들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관객들은 밤을 새워도 좋다는 분위기였다. 나는 마지막 합창곡을 부를 때 앵콜곡을 들을 기회를 포기하고 올림픽홀을 나왔다. 공연장 밖까지 노래가 들렸고, 버스 막차 놓칠까 현실로 돌아가는 시간이 나를 휴가지에서 일터로 돌려보낸 듯했다. 그렇게 3시간의 판타지에서 벗어나 집으로 가면서 내가 아는 성악가 한 분이 생각났다. 요즘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여러 어려운 음악가를 도우려고 회사를 차리신 그분의 회복과 나의 회복을 염원한다.


팬텀싱어들처럼 공연이 허락되고 티켓이 매진되는 소중한 팬덤을 얻은 가수가 있는가 하면, 천재적 재능과 이타적인 성품이 있어도 현실적으로는 몹시 힘들기만 한 이들도 적지 않다. 재능과 함께 환경이 열리는 때는 각자 다를 것이다. 평생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노력하면 길이 보인다는 뻔한 말보다 노력해도 길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 내게 다가와 준 팬텀싱어의 노래, 같은 마음의 팬심으로 전화해 주신 신은경 교수님, 그리고 '언젠가 이들의 무대를 직접 보고 싶다'는 글귀를 흘려보내지 않고 공연 티켓을 선물해 주신 김 교수님, 이렇게 내게 다가와 주신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다. 품격 있는 공연, 품위 있는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


2021.06.20




매거진의 이전글 <싱어게인>을 보며 생각나는 두 가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