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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Nov 03. 2021

[읽은 책]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저)

편의점이 불편하다고? 청파동 편의점의 따뜻한 위로와 감동




북리뷰를 부탁받아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저)을 읽었다. 도서는 내가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어서 이 책과 <공황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정윤 진 저)를 선택해 의견을 물었는데, 북리뷰 부탁한 렛잇플로우 박유진 대표가 <불편한 편의점>을 써달라고 하여 덕분에 좋은 소설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한마디로 너무나 따뜻하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일드 <심야식당>의 한국 버전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데 심야식당의 마스터는 과거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면 이 불편한 편의점의 주인공 노숙자는 책 후반부에 정체가 밝혀진다. 노숙자가 누구였는지는 놀라운 반전이다.


플롯 전개가 마치 연극처럼 장면 전환이 되는데, 알고 보니 저자 김호연 작가는 영화, 만화, 소설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러여서 이 소설에 연극적 전개 방식을 취한 것 같다. 게다가 불편한 편의점이 있는 청파동에 등장하는 편의점 손님 중에 대학로에서 밑바닥을 경험하고 온 전직 배우 극작가도 있다. 그런 인물들의 시점으로 2019년 코로나 첫 해의 한국 사회를 조명해 준다.


<불편한 편의점>은 저자의 두 번째 동네 시리즈다. 첫 번째는 <망원동 브라더스>로 망원동 이야기다. 이 책을 읽은 후 찾아 읽고 싶어졌다. 불편한 편의점의 중심지인 청파동은 부유한 용산구에 있지만 가난한 빌라촌이 존재하는 동네다. 숙명여대가 있고, 서울역이 가까이 있다. 그래서 서울역 노숙자와 취준생이 이 소설에 등장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편의점 주인은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위선적인 기독교인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크리스천 친구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편의점 여 사장은 중학교 교사를 정년 퇴임하고 교사 연금만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편의점을 차려 젊은 공시생 여성, 사회에서 밀려난 중년,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도 속을 썩이는 교회 지인 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야간 근무자가 그만두면 일이 많아지는 이 편의점의 여 사장은 진짜 어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오후와 초저녁에 근무하는 취준생에게 어머니처럼 대해주고, 야간에 근무하는 중년의 아저씨도 이 편의점 문을 닫으면 어려운 사람이기에 걱정하며 배려한다. 오전 근무자는 까칠한 교회 지인이다. 그 편의점 사장이 서울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뒤 소설은 시작한다.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는 알콜성 치매로 과거를 기억 못하고 어떤 트라우마 때문인지 말도 어눌하지만, 경우가 바른 사람임을 알아차린다. 유통기간이 지난 폐기용 도시락으로 연명하는 그를 이 여사는 마침 야간 근무자가 그만두어 공석인 자리에 채용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소설 초반부에 노숙자를 편의점 야간 근무자로 채용하는 여사의 심정이 이해되는 요소가 여럿 나온다.


이제부터 고독하고 상처 많은 야식 손님이 드나드는 심야식당 같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편의점은 다른 대기업 편의점과는 다르다. 대로변이 아닌 가난한 빌라촌 골목 어귀에 있고 물건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불편한 편의점이라 불린다. 게다가 야간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근무한다. 야간 알바 일을 하게  노숙자 아저씨는 편의점 시스템을 선배인 취준생으로부터 빨리 전수받아 익힌다. 그는 매일 편의점에 와서 알바생을 괴롭히는 진상 손님(소설에서 JS라고 칭한다)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고,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직장에서도 밀려나고 있는 중년 가장이 퇴근하는 밤마다 집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참참참(참깨컵라면, 참치삼각김밥, 참이슬) 먹는데 그에게 따뜻한 온풍기를 쐬어 주며 말동무가 되어 준다.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이후의 작품을 쓰지 못하는 대학로 배우가 편의점 부근의 빌라에 와서 도시락을 사러 왔다가  노숙자에게서 흥미를 느껴 그를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며 재기한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주간 알바 청년의 현실, 엄마의 편의점을 팔아서 사업자금을 대고 싶은 철부지 사장 아들 등 등장인물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에는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인간미 폴폴 나는 위로와 감동, 웃음이 담겨 있다. 그 소재에 취준생부터 다 큰 아들이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는 엄마의 애환, 은퇴를 앞둔 50대 가장, 은퇴 후 퇴물이 되어 무엇인가 붙잡을 게 필요한 노년, 자본주의에 물든 압구정동 성형외과까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모두 조명해 준다.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빨라서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다.


심야식당의 마스터가 해주는 요리처럼 노숙자 알바의 친절을 통해 사람들이 회복되고 이 노숙자도 자신의 기억을 점점 찾아가는데.... 마지막에는 노숙자의 기억 회복에서 그의 실체가 밝혀지며 그가 편의점을 떠나 대구로 향해가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노숙자를 주인공으로 한 것은 아마도 인생의 밑바닥에 기준점을 두고 써나가려는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노숙자와 별 차이 없는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며 견디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루하루가 지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은 답답함으로 심리적인 노숙자인 사람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늘 불안과 우울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편의점 여 사장 같은 구원자가 필요하다. 삶의 희망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할 줄 아는 불편한 편의점의 청파동. 소설이 그리는 청파동이 지금 우리들이 간절히 찾는 삶의 동네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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