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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패포드의 고백과 노스센티널섬의 경고

사랑은 무지를 품지 않는다

by 황교진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순댓국을 먹었는데 그 음식점은 BGM으로 찬송가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뜨거운 순댓국 먹으며 찬송가 연주를 감상던 중에 교회를 다니지 않는 디자인 실장이 "되게 슬프네요"라고 하기에 내가 "이 곡에 슬픈 배경이 있는데 그걸 느끼다니 대단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곡은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It Is Well with My Soul)>였다.


이 곡은 기독교 역사에서 깊은 슬픔을 품은 고백으로 알려져 있다. 작사자인 호레이쇼 스패포드는 무디 목사의 유럽 부흥집회를 돕기 위해 가족을 먼저 유럽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배는 침몰했고, 네 딸이 모두 바다에 수장되는 참혹한 사고에 아내 애나만 살아남았다.


스패포드는 딸들이 죽은 바다 위를 지나며 말할 수 없는 통곡 속에서 “내 영혼 평안해”라는 고백을 적었다. 인생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은 그의 고백에 멜로디가 붙여져 오늘의 찬송이 되었다. 그의 아내 애나 스패포드는 그 비극의 유일한 생존자로, “저만 살아남았어요(Saved alone…)”라는 전보를 남편에게 보냈다. 이 한 줄의 전보는 세계 교회 역사에 남은 비극적이면서도 신앙적인 한 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스패포드 부부는 절망에서 멈추지 않고 난민과 고아, 전쟁 피해민을 돕는 선교, 구호 공동체를 이루며 남은 생을 섬김의 길로 이어갔다. 비극을 뚫고 피어난 신앙의 강건한 사례다.


Horatio_Spafford.jpg Horatio Spafford / Wikipedia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_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1절


디자인 실장에게 이 내용을 간략하게 전하면서 선교에 대한 기독교 역사를 설명해 주다가 내가 졸업한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 등을 언급하며 한중일 중 한국만 기독교가 크게 부흥한 사실을 이어 갔는데 무척 신기해했다. 그러다 엉뚱하게도 인도의 노스센티널섬이 떠올라 이런 사례도 있다고 순댓국집 대화를 이어갔다.


노스센티널섬은 신앙의 열정이 지혜를 잃을 때 생기는 비극을 말해주는 인도 관할의 섬이다. 인도 안다만 제도에 속한 이 섬은 외부와 거의 접촉한 적 없는 센티널족이 사는 곳이다. 그들은 외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없어 단 한 명의 외부인이 들어오기만 해도 부족 전체가 질병으로 몰살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인도 정부는 이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외부인의 접근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해 왔다. 그런데 2018년, 미국인 청년 존 앨런 차우(John Allen Chau)는 접근 금지법을 어기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정으로 섬에 들어갔다. 그는 해안에 발을 딛자마자 부족의 화살을 맞고 현장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신앙의 용기라기보다 섬 주민들을 질병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무모한 열정의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섬은 여전히 고립된 채로 자기 생존을 위해 외부인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다.



North_Sentinel_Island_as_seen_from_ESA_s_Proba_satellite_pillars.jpg Earth from Space: North Sentinel Island / NASA, USGS Landsat imagery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른 길이지만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 질문하게 한다.


스패포드의 고백은, “절망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때, 신앙은 어디에서 다시 시작되는가?”라는 물음을 향해 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 안에서 절망을 이겨냈고, 자기 사랑과 아픔을 넘어 타인을 향한 섬김으로 확장시켰다.


노스센티널섬의 사건은 “열정만으로 충분한가? 선교는 누구를 위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혜 없는 열정은 자신도 죽이고, 상대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복음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무지를 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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