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본질의 브랜드는 버려두고 살지 않는가
1.
신발장의 약한 프레임이 갑자기 무너져 신들이 쏟아져 내렸다.
마치 내 영혼이 정돈되지 않고 엉망으로 어질러진 상태로 보였지만, 날씨도 덥고 수리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그대로 두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정리했다.
신발들을 모두 끄집어내고 하나하나 플라스틱과 철제 프레임을 이어서 재조립하여 수리를 마치고 우리 네 식구의 신발들을 정리했다. 무슨 신이 이렇게 많을까. (범신론, 다신교가 왜 떠오르지?)
2.
고등학교 때 매일 밤 10시면 새벽시장에 출근하시는 어머니는 그 추운 겨울에도 시장에서 산 천 원, 이천 원짜리 신발을 신고 다니셨다. 나는 어머니 신발을 보면서 갖고 싶은 메이커 운동화 얘긴 꺼내지도 못했다. 대입 학력고사를 앞둔 고3 가을에 당시 부활의 보컬 이승철이 CM송을 불러 유명한 영에이지 구두를 가장 친한 친구가 신고 학교에 왔다. 난 친구의 그 영에이지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공부가 안 될 때면 명일동 사거리에 있는 슬레진저 매장 앞에 가 한참 서 있곤 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친구가 신은 구두만큼 멋진 구두가 나를 어디 한번 가져 보라며 유혹했다. 눈으로만 갖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나이를 먹으면서 오히려 운동화가 편하고 좋아졌는데 그때 학력고사를 몇 달 앞둔 때는 랜드로버, 영에이지 같은 구두가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내가 대학만 가면 알바를 해서 저걸 갖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눈으로만 만족했다.
3.
신발 정리를 하고 보니 지금 내가 풍요롭지는 않지만 얼마나 풍성한가 하는 묵상이 절로 됐다. 어린 시절에 꿈에서 그리던 메이커 운동화를 영승이, 예승이에게 사줄 수 있고, 게다가 내 신발도 종류별로 있다. 코오롱 등산화, 뉴발란스 러닝화, 리복 펌프 퓨리, 크록스 샌들, 아이로봇 캔버스화, 로퍼, 정장 구두 등. 많지 않은 출판사 급여로 살면서 어머니 병원비도 감당해 왔는데 무슨 신발이 이리 많을까. 패션과 계절에 맞춰 돌려 신으니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밑창이 다 달아도 웬만해선 버리지 않으니 신발장이 꽉 차서 프레임이 무너질 정도다.
4.
그런데도 이 풍성함에 대해 감사하단 묵상을 해본 적이 있던가. 가지고 있는 것을 돌아보며 자족하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스케쳐스 고워크 같은 신상에 자꾸 눈이 간다. 아, 인간이란...
5.
결핍과 불안이 내가 없는 것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타나는 이 밀도 높은 도시의 삶에서 자연과 자연스러움을 떠올린다. 편한 아무 신발 하나만 있어도 즐겁고 심플한 삶이 왜 스킵돼 있을까. 수입이 마땅치 않은 요 몇 달을 보내면서 나의 소유가 넘친다는 것을 신발 정리하면서 발견한다. 그 옛날 엄마의 몇 천 원짜리 출근 신발을 떠올리며... 메이커 운동화 하나 없고, 영에이지는 꿈에서나 그리던 고딩이 등산화, 러닝화부터 패션에 맞춰 신을 여러 신발들을 구비하고도 결핍감 있는 성인인 지금.
6.
영혼과 정신은 쓰레기로 가득하지 않을까. 이미 바이블 프레임은 붕괴돼 있는데도 회개와 정리를 안 하고 버티고 있는 거 아닐까. 게으름을 소비로 커버하려고 하지 않는가. 맨발로 풀밭을 뛰놀던 시절을 그리워만 했지 신발을 벗어볼 노력은 하지 않는 모순에 젖어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브랜드 신발만 있지, 보이지 않는 마스터피스인 내 본질의 브랜드는 버려두고 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