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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Jan 31. 2018

염력

초능력을 각성시킨 아버지


마이크임팩트의 강연 페스티벌에서 연상호 감독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오랜 세월 애니메이션 영화를 연구하며 인내의 연속인 그늘 속에 있었다. 그에게 빛을 안긴 작품은 칸영화제에 초청된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다. 사회 부조리를 학교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어서 천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좀비 영화 <부산행>에 자본주의의 천박함과 이기주의를 고발하면서도 가족애를 담아 흥행에 성공했다. 오랜 기다림과 좌절을경험한 끝에 성공했기에 이제 가속 페달을 밟을 것 같은 연 감독의 새해 기대작 <염력>이 오늘 개봉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은 꿈꿔온 초능력이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힘인 염력이다. 손을 대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염력은 만화와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빚보증을 잘못 서 가족과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는 석현(류승룡)은 우연히 먹은 약수에서 염력을 얻는다. 혼자서 초라하게 살지만 어딘가 <7번 방의 선물>의 딸바보가 가장이 되면 석현이 될 것 같은 스멜을 풍긴다. 2014년작 <표적>에서 살인 용의자로 쫓기며 어마 무시한 액션을 소화해 낸 포스는 오간데 없고 완벽한 무능력 아저씨, 좀 모자라는 아빠 역을 소화했다. 코믹한 요소도 잘 살려냈다.

<염력>의 전체 스토리는 루미 역의 심은경이 이끌어간다. 어렸을 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하고 집을 떠난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너무 쉽게 용서할 만큼 착하고 의지도 강하다. 엄마를 잃고도 금세 힘을 내고 당당하게 용역 깡패와 싸우는 모습이 히어로 못지않다. 어리지만 철거민들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한다. 어쩌면 현실 영웅은 루미가 아닌가 한다.  


염력으로 매트리스의 네오로 되어 가는 석현에게는 여러 어벤져스가 들어 있다. 분노하면 헐크이고, 깡패들과 싸울 때의 염력은 토르의 망치이고, 날아다닐 때는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제어 기능을 상실한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 석현이 초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어설픈 캐릭터와 동작이 관객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 뭔가 덜 떨어진 석현의 설정이 할리우드식 히어로에 길들여진 관객의 눈에는 한국식 좀비 영화의 신선함과 달리 집중력을 안겨주진 못한다. 관객의 기대는 할리우드 못지않은 CG가 아닌 우리 정서에 맞는 기획력일 것이다. 스토리는 조폭들의 식상한 횡포에 맞서는 식이고 클라이맥스의 초토화는 그다지 시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다운 포인트들이 있다. 아내와 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빠의 초라한 마음이 딸의 섭섭함과 부딪히면서 부녀간의 이해와 사랑으로 연결돼 뭉클했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갔으면 좋았겠지만 더 심각해지면 신파가 될 수 있으니 적절한 감정선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심은진은 최고의 캐스팅이었다. 부녀의 사랑이 <염력>을 살렸지만 좀 더 살릴 수 있는 요소가 빠져 있어 아쉽다. 너무 쉽게 코믹씬으로 넘어갔다.


클라이맥스에서 용산참사를 연상시킨 건 극찬할 만하다. 공중에 매단 컨테이너 박스에서 겁에 질린 전경들의 표정을 줌인으로 담았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에서 그 비극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결국 그 뒤에는 자본가들이 있고 짐승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억압 받는 사회 밑바닥 고통을 담아 보려는 감독의 의지에 찬사를 보낸다. 우린 모두 노예이니 당신도 나처럼 노예로 살라는 홍상무(정유미)의 대사에서 아버지로 살고 싶은 석현의 절실함이 염력을 각성시킨다. 어쩌면 우린 아버지 인간으로 사는 데 초능력이 필요할 만큼 망가진 사회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딸을 아끼면서 루미(한자어로 개똥이처럼 몹쓸 이름이다)라는 천박한 이름으로 지어 표현할 줄 모르는 아버지가 이 시대의 가장들이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연기한 박정민을 볼 수 있다. 왜 루미와 철거민을 돕는지 잘 설명돼 있지 않지만, 최근 주가가 급상승한 그를 연이어 볼 수 있는 게 어딘가.


로또복권 판매금이 엄청나다고 한다. 로또보다 성공한다는 비트코인 열풍도 거센 현실이다. 불황 상품인 복권에서 사람들은 염력 같은 대박의 힘을 얻고 싶은 것일까. 자식을 잘 키우는 아버지로 살기 위해 돈이든 염력이든 필요하다면 이 사회는 너무 망가져 있는 어둠의 공간이다. <염력>은 밝은 마무리로 끝냈지만 너무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해서 정신이 없었다. 석현이 염력을 쓸 때 긴장감은 내 손이 오그라질 만큼 팽팽했다. 그렇게 엉망인 영화는 아닌 신선한 시도였다.


영화 마치고 남자 화장실에서 만난 청년들은 실망한 투로 얘기하는데 이해한다. 그들에겐 어벤져스 히어로물이 익숙하니까 혹평할 수 있다. 염력은 히어로 무비가 아니라 가족과 화해해 가는 과정이며, 자본의 노예로 사는 비인간 사회의 고발이며 용산참사의 되새김질이다. 젊은 친구들에겐 그럭저럭 볼 만한 영화 정도로 한줄 평이 올라갈 것이다. 내게 염력이 생기면 자기 힘만 믿고 성추행 일삼는 자들을 지구 밖으로 보내고 싶다.


별 다섯 중 세 개 반

생계 위기에서 구출해 낼 염력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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