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기, 간호하는 순간만 살아 있는 느낌

해야 하는 것보다 할 수 있어도 참는 것이 어렵다

by 황교진


지난주처럼 강직과 쇼크로 안 좋으실 때 가슴이 아프고, 오늘처럼 안정돼 보이실 때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숨만 쉬고 계신 모습, 이래도 저래도 피할 수 없는 이 복잡한 고통은 그저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아내는 며느리여서 웃으며 성경을 읽어드릴 수 있고, 난 20년을 함께 고통한 아들이어서 더 할 일들만 보인다. 어머니 치아도 예전처럼 청결하게 하고 각질이 많은 손발도 비누로 다 밀어내고 싶었지만 절제했다. 해야 하는 것보다 할 수 있어도 참는 게 어렵다.
귀, 코, 얼굴, 손, 목줄, 석션만 봐드리고 얼굴에 크림 바르고, 소모품들 챙겨 놓고...
무엇인가 하는 것도 죄송하고 안 하는 것도 불편하다. 지금은 어머니가 가장 원하시는 것만 생각하고 절제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청춘과 장년을 중환자 간호로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신학, 철학의 실제에서 고민한 적 없다. 우울, 참담함과 싸우며 죽음 곁에 있다가 잠시 어머니 만나서 약식으로나마 간호하는 순간만 살아 있는 느낌이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정신없이 병간호를 시작했다가 마흔여덟이 되어 다시 정신없어지려 하는 고통에서 점검한다.


나는 사랑하는 분을 어떻게 보내드리고,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모든 시간이 리셋되기 직전에 혼돈을 겪으며 홀로 있다. 부글부글한 감정을 가끔 쏟아놓는 기도만이 생명줄이고 안식이다.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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