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나에게 나름대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큰애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입시가 훅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고, 둘째의 때아닌 사춘기도 겪었고, 작년 초에는 건강검진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이야 이미 수술도 끝나고 최종적으로 1기 판정을 받아 몸도 마음도 편해졌지만, 수술 전까지는 타입도 기수도 정확하지 않은 상태라 마음고생도 좀 있었다.
사람은 큰일이 생기면 그제야 비로소 삶을 돌아보게 되고, 주변의 옥석을 가리게 되는 것 같다. 막연하게 나는 건강하겠지, 했다가 갑자기 뒤통수 맞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좀 알라고 이런 일이 생겼나 싶기도 했다.
어쨌든 크게 굴곡 없던 내 인생에(잔잔한 굴곡 정도야 있었지만) 우여곡절 많았던 작년 여름을 지나면서 나도 오랜만에 진지하게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일단은 뭐 하나도 진짜 열심히 했다 싶은 게 없다는 사실이 제일 후회가 되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도 ‘적당히’, 회사 일도 ‘적당히’ 했고, 애들을 키우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는 차마 말 못 할 것 같다. 부끄럽게도 50년 가까이 살면서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열심히 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사실은 그전까지 나는 꼭 뭔가를 열심히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늘 꿈이 있었지만 하나의 간절한 꿈은 없었고, 그래서 이게 안 되면 다른 걸 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낙천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저 인풋 대비 아웃풋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늦기 전에 뭔가 딱 하나만 열심히 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럼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해 봤다. 시도해 본 건 많았는데, 그중에 진득하게 한 건 없었다. 늘 어려움이 닥치거나 지루해지면 빠르게 포기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래도 꽤 오랫동안 가늘고 길게 해 온 게 생각났다. 책 읽기와 글쓰기.
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보다 열심히 한 건 독서였다. 그 시절 나의 독서는 엄마 몰래 책상 밑에 숨어서 보던 만화책도 포함이다(지금까지도 나의 최애 만화는 그때 읽었던 ‘점프 트리 A 플러스’와 ‘인어공주를 위하여’다).
대학교 때야 솔직히 노느라 독서는 뒷전이었고, 사회 초년생일 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 한 자 안 보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여유로워지면서 지금은 1년에 40~50권 정도는 꾸준히 읽고 있다. 아마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두세 배 많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추리소설 외에는 안 읽는 심각한 편독 증상이 있긴 하다. 다른 종류의 소설이나 비문학도 읽어 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재미가 없다. 넷플릭스도 주로 형사물만 보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프로파일러가 될 걸 그랬다.
다행히 이제 읽고 싶은 책만 읽는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고 잔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라서 나는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만 쭉 읽을 계획이다.
그나마 독서는 중간중간 쉬긴 했지만 꾸준히 했다고 우길 수 있겠는데, 솔직히 글쓰기는 ‘꾸준히’라기 보다는 긴 기간에 걸쳐서 간간히 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말괄량이 쌍둥이’, ‘쌍둥이의 기숙사 생활’ 같은 명랑소설을 본떠 나도 우리 반 친구들이 등장인물인 소설을 썼었다. 학창 시절 내내 온갖 글짓기대회, 시화전에 나갔고, 중학교 때에는 3년 내내 교지편집부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한 학년 위의 선배한테 반해서 과학반 활동을 하느라 잠시 외도(?)를 했었고, 그리고 대학교 때에는 정말 한량 같은 생활을 했으므로 건너뛰어야겠다.
대학교 4학년 때에는 기자를 꿈꿨었는데, 기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다음에 그 경험을 살려 작가가 되겠다는 내 나름의 로드맵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는 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 후에 ‘드라마 작가 협회’ 수업에 등록해서 다닌 적도 있다. 물론 시작하자마자 야근이 많아져서 거의 못 가긴 했지만…….
여하튼 대단하게 한 건 없어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늘 퐁당퐁당 있었던 것 같다.
시작은 쉽게, 포기는 더 쉽게 하는 내가 작년에 특히 여러 가지를 새로 시작했다. 아직은 춤도 가죽 공예도 피아노도 글쓰기도 몇 달 안 됐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쉽게 싫증 내지 않고 지금까지는 잘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좀처럼 늘지 않는 춤은 등록할 때마다 계속할지 고민이긴 하다).
그중에서도 읽고 쓰는 것만큼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가열차게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한다. 읽는 건 혼자 읽으면 되니까 글쓰기만 시작하면 되는 건데, 이게 또 혼자 갑자기 글을 쓰자니 좀 막연했다.
그러니 작년 가을에 때맞춰 ○○여성인력센터에서 글쓰기 수업 홍보 카톡이 온 걸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이 뭐 별건가. 타이밍 맞는 게 운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