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손도 한다, 가죽 공예

by 한량

올해 내가 시도한 것 중에 스스로 생각해도 가장 의외인 건 가죽 공예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손으로 만드는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다. 바느질, 뜨개질, 도예, 요리 등 손으로 만드는 일에는 소질도 없을뿐더러, 나는 뭐든 반복을 싫어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두 번 보는 법이 없고, 인생 영화라 하면서도 다시 보지 않는다.

가죽 공예는 바느질, 붓칠 같이 손으로 하는 작업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뭐 하나 만들라치면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들고, 가죽값에 수업료에 돈도 많이 들며, 조그만 구멍에 바느질을 하다 보면 가뜩이나 노안인 눈도 더 나빠질 텐데, 내가 왜 가죽 공예를 시작했을까?


올해 4월에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고등학생인 첫째의 사춘기를 지나왔지만, 면역력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둘째는 아들이어서 그런지 더 버거웠고, 살가운 막내여서 그런지 더 애가 탔다. 왜 애가 사춘기가 되면 엄마가 텀블러에 소주를 담아 산책하고, 갑자기 새벽 등산을 시작하는지 나는 선배 엄마들이 했던 말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첫째는 이미 고등학생이어서 공부든 뭐든 시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둘째는 사춘기가 왔다 갔다 하니 당분간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그냥 나에게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예전에 해 보고 싶었던 것들도 다시 시도하고, 나답지 않은 것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다. 가죽 공예는 후자였다.


그쯤 내가 자주 가는 네이버 카페에 누군가 직접 만든 가죽 팔찌 사진을 올려놓은 걸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무작정 집 근처 가죽 공방을 검색한 게 내가 가죽 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공방마다 주인의 스타일이 보였다. 주로 만드는 품목도 달랐고, 디자인이나 가죽의 종류에도 차이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곳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공방이었다. 홈페이지에 실린 사진 중에 마침 딱 원하는 H사의 두 줄짜리 가죽 팔찌가 있길래 나는 바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내가 한 일은 목타를 치고(바느질을 하기 전에 가죽에 구멍을 내는 작업), 바느질을 하고, 가죽 옆면에 칠을 해서 마감하고, 장식을 다는 것까지였다. 원데이 클래스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제품 하나가 완성되어야 해서 선생님이 미리 재단과 밑 작업을 해 놓는다. 그래서 공정이 비교적 간단한 편인데도 웬걸 그날 팔찌를 완성하기까지 4시간이 꼬박 걸렸다.

4시간 내내 앉아 있었더니 눈도 침침하고, 어깨와 팔도 아팠다. 그래도 팔찌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넘고 애들 키우는 게 주 업무가 되고 나니, 요즘 나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아웃풋이 바로 나오는 경험은 흔치 않다. 오히려 내 노력에 대한 결과는 늘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그런데 4시간 만에 이렇게 결과물이 '짠' 하고 나타나니 어찌나 신통방통하던지…….

나는 그날 바로 정규 수업에 등록했다.


공방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곳의 정규 수업은 회당 3시간씩 진행된다. 팔찌든 지갑이든 가방이든 원하는 걸 만들면 된다. 수강료는 4회씩 내면 되고, 가죽이나 부자재 같은 재료는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 재단부터 시작해서 본드칠, 목타 치기, 단면 마감, 바느질, 크리저 작업(가죽 가장자리에 열로 선을 긋는 일) 등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야 해서 원데이 클래스에 비해 제품을 만드는 시간은 훨씬 길어진다.

지금까지 나는 정규 수업을 7회 정도 했고, 가방을 두 개째 만들고 있다. 가방 하나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과정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임하지 않으면 결과물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시간도 공도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새삼 가죽 가방이 왜 그렇게 비싼지 조금 이해가 갈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목타 친 구멍이 잘 안 보여 다초점 안경을 맞춰야 하나 싶을망정, 아직은 일주일에 한 번 공방에 가는 날이 너무너무 기다려진다.


조금은 충동적으로 시작한 가죽 공예는 의외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공방에서 마치지 못한 바느질을 집에서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어느 순간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좀 과장하면 물아일체의 경지랄까?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다 어느 순간,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강했었나?’ 하며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새벽 등산 대신 가죽 공예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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