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흥은 있는데, 불행하게도 몸치인 나는 가요톱10에서 박남정과 김완선 같은 댄스 가수들이 춤추는 걸 보면서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지만) 시절을 보냈다. 그때의 나는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마음은 들썩들썩해도, 대놓고 따라 하지는 못하는 소심한 아이였다.
결국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춤에 도전하게 되었다. 최종 목표는 K팝 댄스였지만, 일단은 학교 교양수업으로 스포츠댄스를 신청했다. 같은 과 친구 H와 둘이서 재즈댄스 학원에도 등록했다. 사실 나나 H나 마음은 이미 S.E.S.였지만, K팝 댄스를 하기 전에 일단 난이도가 낮은 장르부터 가볍게 정복할 생각이었다.
그나마 스포츠댄스는 몇 가지 패턴이 반복되는 춤이라 꽤 할 만했다. 그런데 이게 몇 가지 동작으로 돌려 막는 춤이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현란한 동작은 요원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재즈댄스는 더더욱 나와 안 맞았다는 거다. 유연성이 거의 로봇 수준인 나는 제대로 할 수 있는 동작이 별로 없었다. 더욱이 나는 유독 춤의 순서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금붕어나 다름없는 기억력의 소유자이지만, 그때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춤동작은 잘 외워지지 않았다.
내가 손동작 발동작이 동시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팔을 움직이면 스텝이 꼬이고, 스텝에 신경 쓰다 보면 손동작을 놓치니 춤이 될 리가…….
H는 나보다는 좀 나았지만, 여하튼 우리는 2주 만에 재즈댄스를 때려치웠고, 재즈댄스가 쉽다는 착각도 버렸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동네 친구 Y와 야심 차게 강남역에 있는 K팝 댄스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수업에 들어간 첫날, 우리에게 첫 수업인 그날, 동작 설명이고 뭐고 없이 수강생 전원이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알아서 착착 따라 하는데, 나와 Y는 그들 사이에서 우리가 버틸 재간이 없음을 단박에 알아버렸다.
결국 첫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나름대로 열정 넘치던 20대의 Y와 나는 포기하지 않고 강남역 일대를 뒤져 또 다른 댄스학원을 찾아냈다. 그 학원은 K팝 전문 학원은 아니었지만, 춤을 소규모로 수준에 맞춰 가르쳐 주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기본기부터 제대로 배우자며 그날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우리를 맡은 선생님은 그 학원에서 제일 어린(심지어 우리보다도 어렸다), 노란 머리에 그때 유행하던 힙합 스타일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선생님은 간단한 동작부터 몸치인 우리의 수준에 맞게 잘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서너 번 수업을 하고 드디어 엄정화의 '페스티벌' 안무 동작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학원에 나오지도 않고, 연락 두절이라나.
“우리는 춤이랑은 정말 인연이 없나 봐.”
이쯤 되니 Y와 나는 환불도 받지 않고 학원을 그만둬 버렸다. 그날 소주라도 한 잔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어느새 나도 운동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요가, 필라테스, 등산 등 이런저런 운동에 조금씩 발은 담가 봤지만, 어떤 것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춤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어느 날, 동네 문화센터에 다이어트 댄스 수업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나는 주 5회 수업이니까 아무 요일이나 적당히 주 2회쯤 갈 요량으로 별생각 없이 수업을 신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이어트 댄스가 에어로빅 같은 건 줄 알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파트 상가에서 에어로빅 좀 해 본, 나름 경력자인 나는 호기롭게 첫 수업을 기다렸다.
다이어트 댄스 첫날, 나는 운동복을 입고 민낯 가림 용으로 모자를 쓰고 수업에 갔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빠른 비트의 음악이 쿵쿵쿵 쉴 새 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샤이니의 '링딩동', 엑소의 '으르렁', 임영웅의 '원더풀라이프', '소다팝' 등등 최신가요부터 연식이 좀 된 가요까지…….
선생님은 백댄서 출신인가 싶게 춤을 잘 추셨다. 그리고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수강생들이 마치 강남역 댄스학원에서처럼 일제히 선생님과 똑같이 움직였다. 곡이 계속해서 바뀌는데도 다들 안무 동작을 다 외운 건지 혼연일체로 움직이는데, 나로서는 그저 경이로울 뿐. 그 옛날의 강남역 댄스 학원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보니 꼭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댄스 수업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랬다.
나는 수업 시간 내내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치지 않도록 촉각을 곤두세우고, 내 앞의 사람 바로 뒤에 그림자처럼 딱 붙어 서서 허우적대다 수업을 마쳐야 했다.
그날 오는 길에 바로 환불을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정신없이 그냥 집에 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이어트 댄스 카톡방에 초대받았다. 새로 오신 분 환영한다며 실명까지 자동 공개된 채로.
단톡방 분위기로 보아 회원들 대부분이 몇 년씩 수업을 들은 분들 같았다. 게다가 동네 주민들이 다니는 문화센터라서 그런지 단톡방이 무슨 동호회처럼 화기애애했다. 30명이나 되는 수강생들의 간식을 싸 오는 분도 계시고, 드레스코드가 있는 날에는 자진해서 옷을 빌려주는 분도 있다.
어쨌든 초대받은 이상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나도 어영부영 단톡방의 일원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2025년 9월부터 얼떨결에 K팝 댄스에 입문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참 한결같게도 춤동작도 못 외우고, 손과 발이 따로따로 놀고, 유연성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어떤 날은 너무 헤매는 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수업 중에 혼자 실소를 참지 못한 적도 있다. 남들은 춤을 추는데, 나만 체조를 하는 느낌이랄까?
이 와중에 다들 주 5회를 가는데 나는 주 2회를 가니 남들 눈에는 아마 제일 못하면서 제일 열심히 안 하는 걸로 보일 거다. 고백하건대, 정말 시간이 안 맞아서 주 2회 갈 뿐 나도 나름대로 진짜 열심히 하고 있다.
가끔 집에서 연습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딸이 그러긴 한다.
“엄마, 그냥 때려치워.”
때로는 내가 애를 쓸 땐 온 세상이 나를 방해라도 하는 것처럼 안 되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처럼 될 때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근 20여 년 만에 다시 춤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여전히 댄스 수업 때마다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칠까 봐 노심초사다.
그래도 나는 이번 주 화요일에도 댄스 교실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