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딸들이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루기를 바랐던 우리 엄마는 언니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한꺼번에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성격이 무던한 언니는 엄마의 바람대로 묵묵히 체르니 40번까지 마쳤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참 한결같이 끈기가 부족한 나는 체르니 30번을 치다 말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자식은 부모를 닮는지, 나도 아이들이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둘째는 체르니 30번까지만 치고 그만뒀지만, 첫째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첫째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언제부턴가 꽤 들을 만해지니 아마 그때부터 나도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게 재작년 이맘때쯤이던가. 안 친지가 워낙 오래라 체르니 100번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오랜만에 치는 피아노는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건반에 손을 댄 지 거의 30년이 넘었으니 처음에는 악보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손가락도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피아노 선생님께 자로 손등을 맞을 일도 없고, 진도에 쫓길 일도 누구와 비교당할 일도 없어서 그런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자체가 즐거웠다.
언젠가 쇼팽의 ‘녹턴 2번’을 치게 될 날을 꿈꾸며 한동안 꽤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넘었는데 사실 작년부터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다. 주 2회 가는 수업을 별다른 이유 없이 툭하면 빠지고, 집에 피아노가 있는데도 좀처럼 먼지 쌓인 뚜껑을 여는 일이 없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체르니 40번에 들어가면서 곡이 어려워지고 실력이 빨리 늘지 않으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있는 피아노 선율과 내가 치는 소리의 간극은 어쩌면 그렇게 멀기만 한지…….
악보를 봐도 계이름을 바로바로 모르겠고, 곡을 좀 외워야 매끄럽게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줄 외우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흥미도 자꾸만 떨어지고, 피아노 갈 시간이 되면 이 핑계 저 핑계 빠질 이유를 찾고 있다.
뭘 하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루함을 견디며, 뚜벅뚜벅 계속해 나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피아노 수업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나는 진짜 반성해야 할 것 같다. 60대(어쩌면 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바이엘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체르니를 치시고, 명곡집을 치신다.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내가 진도도 훨씬 빨리 나가는 것 같고, 금방 실력이 느는 것 같았는데 2년 넘게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다.
처음에 의지에 불타던 내가 주춤하는 사이 그분들은 지각도 결석도 별로 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레슨에 임하신다. 전날 늦게 잤다고 레슨을 빠지고, 노안이라 악보가 안 보인다고 툴툴댄 철없는 나를 땅에 묻어 버리고 싶어질 지경이다.
“시작보다 훨씬 어려운 건 유지하는 거야.”
“뭐든 처음에 아무리 잘해도 하다 말면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해.”
내가 애들한테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만 이렇게 하고 정작 나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지 못했다. 애들한테 내가 하는 말이 와닿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올가을부터는 나도 피아노 수업의 어른들이 나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신 것처럼 애들에게 모범적인 사례가 되어 보려고 한다.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한 그때 그 마음으로 새롭게 말이다. 말하자면 재재시작이랄까?
피아노 레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가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연습도 조금씩 할 계획이다. 나만의 목표도 세워 보았다. 첫 번째 목표는 내년 여름까지 체르니 40번을 끝내는 거다. 언젠가 쇼팽의 ‘녹턴 2번’을 임윤찬처럼 신들린 듯이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아자아자 파이팅!